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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46> 은방울 자매를 배출한 부산

“걸그룹 만들어 성공하자” 송도 바닷가서 결의했던 은방울 자매

  • 이동순 가요평론가
  •  |   입력 : 2022-04-03 19:35:57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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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이 출발인 한국 여성보컬史
- 첫 걸그룹은 50년대 ‘김시스터즈’

- 동갑인 박애경·김향미 의기투합
- 62년 은방울 자매로 첫 무대 올라
- ‘쌍고동 우는 항구’ 등으로 스타덤

한국 여성보컬의 첫 시작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아마도 20세기 초반 권번(券番) 기생들의 단체군무와 합창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그들은 뚜렷한 이름이 없이 권번이라는 무대에서 공연활동을 이어왔다. 그러다가 오케레코드사가 조선악극단을 조직하고 일본 공연을 떠났을 때 비로소 구체적 명칭을 가진 여성보컬그룹이 만들어졌다.

1958년 빅토리레코드사 소속 전속가수들. 앞줄 오른쪽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은방울자매’ 김향미와 박애경.
1935년에 조직된 ‘저고리시스터즈’가 그 주인공이다. 이난영 장세정 박향림 등 오케 전속가수들로 구성됐다. 그 뒤를 이어서 일제말 ‘신향악단시스터즈’가 등장했지만 그들은 식민지 조선이 아니라 중국의 일본군부대 위문공연 중심으로 활동했으니 전혀 다른 성격이다.

1945년 광복이 되자 김해송이 주도한 KPK악단에서도 여성보컬그룹 활동이 펼쳐지는데 이난영 장세정 신카나리아 옥잠화 나성녀 홍청자 백설희 등이 그 중심인물들이다. 그들의 주된 활동터전은 미8군 무대였고, 오로지 미군병사를 위문하는 공연이었다.

1950년대 중반에 이르러 드디어 본격적인 여성보컬그룹 ‘김시스터즈’가 등장한다. 김해송 이난영의 두 딸과 이봉룡의 딸로 구성된 숙자 애자 민자 셋은 미국 무대로 본격 진출해서 화려한 성공을 거둔다. 그들의 활동은 한국 최초의 공식적인 ‘걸그룹’으로 기록된다. 1957년에는 친자매로 구성된 ‘정시스터즈(정희숙·희정·희옥)’가 등장한다. 이후 맏언니가 빠지고 남은 쌍둥이자매가 ‘J시스터즈’로 이름을 바꿔서 활동을 이어갔다.

은방울자매의 대표곡 ‘삼천포아가씨’가 수록된 LP음반.
1960년대는 이른바 걸그룹 전성기라 할 만하다. 60년대 초반의 ‘김치캣(박양수 김영수)’이 첫 테이프를 끊었고, 1961년 슈퍼 걸그룹 ‘이시스터즈(김천숙 김명자 이정자)’와 이듬해에 9인조 걸밴드 ‘블루리본’이 그 뒤를 이어간다.

1962년에 등장한 ‘은방울자매(박애경 김향미)’는 가요팬들에게 커다란 공감과 위로를 주면서 다가갔다. 데뷔곡 ‘쌍고동 우는 항구’의 애절함은 노래로서 슬픔의 극치를 느끼게 하였다. 1963년에는 ‘마운틴시스터즈(고지연 권정자)’가 출현했고, 이듬해 ‘코리안 키튼즈(서미선 김미자 이정자)’가 등장했다. 1965년에는 ‘레이디버드(장미화 임종임 이은희)’가 활동을 이어갔으며, 후속 걸그룹들인 ‘제비시스터즈’ ‘허니비시스터즈’ ‘바니스비틀즈’ ‘체리시스터즈’ ‘비퀸스’ ‘준시스터즈’ ‘피너스시스터즈’ ‘봉숭아자매’가 출현해서 다채로운 활동을 펼쳤다.

1967년 ‘펄시스터즈(배인순 배인숙)’의 활동은 걸그룹의 위상을 한껏 올렸다.

1970년대는 ‘리리시스터즈(김금자·금희)’ ‘바니걸스’(고정숙 고재숙)’ ‘현경과 영애’ ‘쿨시스터즈’ ‘숙자매(김희숙 김재숙)’ ‘희자매(인순이 김영숙 김재희)’ 등의 활동시대였다. 이러한 활동과 성과들이 축적된 바탕 위에서 1990년대 ‘국보자매’(임성희 임경희)’가 그 전통을 이어갔다.

이들 걸그룹 중 ‘은방울자매’의 활동은 부산과 연관이 깊다. 부산은 ‘은방울자매’를 탄생시킨 비옥한 토양이었다. 은방울자매가 결성된 곳은 부산이고 이곳에서 레코드사 전속으로 활동하면서 가수로서의 자생력을 키워갔다.

박애경과 김향미 두 사람은 경남 밀양 출생으로 1937년생 동갑이다. 어린 시절에 부산과 창원으로 각각 이주했다.

흔히 ‘큰방울’로 불리는 박애경(본명 박세말)은 부산 동광초를 졸업했고, 부산여상 재학시절에 국제신문사가 주최한 가요콩쿠르에 출전해서 입상했다. 그날 심사위원은 진주 출신의 작곡가 이재호 선생이다. 이재호는 박애경을 즉시 제자로 받아들여 1956년 ‘한 많은 아리랑’으로 데뷔시켰다. 이후 박애경은 작곡가 백영호 선생이 이끌던 빅토리레코드사 전속가수로 옮겨가서 30여 곡의 노래를 발표했다. 박애경은 여기서 영화주제가 ‘재수와 분이의 노래’를 가수 방운아와 혼성듀엣으로 취입하기도 했다.

‘작은 방울’ 김향미(본명 김영희)는 어린 시절 밀양에서 창원으로 이사하여 대산중과 진영의 한얼고를 졸업했다. 가창을 몹시 즐기던 소녀 김영희는 고향친구 박세말과 어울리며 노래연습을 함께 했고 가수의 꿈을 키웠다. 그들은 작곡가 백영호 선생을 찾아가서 오디션을 받았는데 잠재적 실력을 인정받아 빅토리레코드 전속이 되었다. 김영희는 1959년에 백영호 작곡의 노래 ‘기타의 슬픔’을 받아서 이때 김향미란 예명으로 데뷔했다. 미도파, 빅토리레코드 전속으로 도합 20여 곡의 노래를 취입했다.

당시 일본가요계에는 쌍둥이 자매가수 ‘고마도리(こまどり)’가 큰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 박애경과 김향미도 부산 송도 바닷가를 거닐며 일본처럼 여성그룹을 만들어 큰 무대로 진출하자고 결의했다.

1962년 두 사람은 드디어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프린스 쇼에 ‘은방울자매’란 이름으로 첫 무대에 올랐다.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무대감독은 그들을 작곡가 송운선에게 소개했다. 이 인연을 바탕으로 ‘은방울자매’는 결성 초기 크라운레코드회사에서 송운선과 콤비가 되어 다수의 곡을 발표했다. ‘쌍고동 우는 항구’(1963) ‘삼천포아가씨’(1964) 등의 히트곡은 모두 이 때 나온 것이다.

‘은방울자매’의 대표곡으로는 ‘무정한 그 사람’ ‘삭발의 모정’ ‘언니 울지 말아요’ ‘항구의 눈물’ ‘방울 아가씨’ ‘하동포구 아가씨’ ‘눈물 젖은 두 자매’ ‘조각달 부르스’ ‘님이 우는 양산도’ 등이 있다. 이후 지구레코드로 소속을 옮겨 박춘석과 콤비가 되었다. 지금도 유명한 ‘마포종점’ ‘밤비는 눈물’ ‘잊으려 해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캠핑의 노래’ ‘찔레꽃’ ‘노을 진 삼천포’ ‘팔도하구’ 등은 그 무렵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은방울자매’의 멤버 김향미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자 홀로 남은 박애경은 오숙남과 ‘은방울자매’를 다시 결성했다. 하지만 2003년 박애경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는 듯한’ 고유성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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