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신보 국장 시절 회상한 작품
- 암울한 시대 꿰뚫던 통찰 돋보여
- 나림의 부친 돌아가신 날과 겹친
- 진보정치인 조봉암 사형집행일
- 주필로서 “담담하게 써라” 지침
- 신문 제작과정도 세세하게 담겨
“어떤 날 또는 어떤 일을 기록하기 위해선 얼음장처럼 차가운 말을 찾아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도 냉장고에서 언 그런 얼음이 아니라 북빙양(北氷洋) 깊숙이 천만 년 침묵과 한기로써 동결된 얼음처럼 차가운 말이라야 한다. 기억의 부패를 막기 위해서는 그 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
“7월 31일, 아버지의 휘일(諱日)이 돌아오면 나는 칸나 꽃이 담뿍 꽂힌 항아리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항아리가 깨진 후, 그 처참감과 더불어 조봉암 씨에의 감회가 서리는 것인데 이래저래 1959년 7월 31일의 기록만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말로 새겨져야 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칸나·X·타나토스’는 1959년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 시절을 회상한 소설이다. 기자의 언어로 쓴 소설이자 나림의 일기다.
■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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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9년 8월 1일 자 국제신보(현 국제신문) 3면 톱 기사로 게재된 조봉암(1899~1959) 진보당 당수의 사형 집행 기사. 그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형당한 뒤 2011년 1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복권됐다. 국제신문 자료 |
내 책상 위에 칸나의 꽃을 담뿍 담아놓은 청자풍의 꽃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어제의 기사에 감동했다면서 항아리와 그 꽃을 가져왔더라는 것이다.
“어떤 기사라고 하더냐?”
기자들은 묘한 눈초리로 그 꽃에 시선을 보냈다.
편집국장의 아침은 의욕에 차 있다. 하얀 백지를 세계의 뉴스로 꽉 채워 멋진 신문을 만들자는 의욕으로써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다. 신문처럼 무한한 기능을 가진 것은 없다. 아침마다 의욕은 언제나 새롭다. 아침엔 호랑이라도 잡을 듯이 서둘러야 하고 그만큼 아침의 편집회의는 활발해야 하는데 칸나에 마음을 빼앗겨 그날 아침의 회의는 흐지부지 끝냈다.
팔꿈치 근처를 칸나의 잎사귀가 스친 기분이더니 항아리가 책상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병은 거짓말처럼 깨어졌다. 쏟아진 물을 뒤집어쓰고 콘크리트 바닥에 쓰러지듯 누운 칸나는 능욕으로 유린된 요부의 여체처럼 처참했다. 왈칵 피 내음까지 났다.
나는 칸나의 추락을 부친 사망과 다가올 감옥살이의 전조로 읽었다.
■조봉암
그다음 순간에 있은 일이다. 무전실의 K기자가 달려왔다.
“조봉암 씨의 사형 집행을 했답니더.”
“조봉암의 사진을 죄다 꺼내라.”
사람을 사형 집행했다는 슬픈 사건도 신문사에 들어오면 이런 꼴이 된다. 무슨 면에 몇 단으로 제목은 어떻게 뽑고 사진은? 최근 사진이라야 해, 하는 식으로 어떤 사건이건 신문 기자의 손에 걸리기만 하면 생선이 요리사의 손에 걸린 거나 마찬가지로 된다.
“집행 시간은 언제라고 하던가?”
“오전 11시 반쯤이라던데요.”
“그런데 조봉암 씨의 마지막 말은 없었는가?”
“술을 한 잔 주었으면 했더랩니다.”
“그래 술을 주었는가?”
“안 준 모양입니다.”
■아버지
“내 좀 고향엘 갔다 와야 하겠소.”
“부친이 병중에 계셨어.”
“내일 아침 사설은 K위원이 쓰시오. 조봉암은 죽어도 진보 사상은 살아 있다. 이런 골자로 쓰시오. 재판이나 기타 문제엔 일절 언급하지 말고 하나의 인간이 당한 비운에 중점을 두고 담담하게 쓰도록 하시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조봉암(1899~1959)은 실존 정치인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정적이었다. 1958년 1월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진보당원 16명과 함께 검거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민주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그 희생물로 내가 마지막이 되길 바란다.” 사형 집행장에서 조봉암이 남긴 말이다.
2007년 9월 27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조봉암 진보당 사건을 이승만 정권의 반인권적 정치 탄압으로 결론 내렸다. 2011년 1월 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국가변란과 간첩 혐의에 대해 전원 일치로 무죄를 선고했다. 조봉암은 사형 집행 52년 만에 복권됐다.
■죽음
나는 ‘칸나·X·타나토스’를 읽으면서 33, 34세의 학자 나림을 생각했다. 소설에서 해인대(경남대) 교수 나림과 정치인 조봉암의 통일 논쟁이 나온다. 1953년 말 또는 1954년 초 ‘은행나무집’ 첫 만남과 성낙준 3만 원 여비 사건은 나림의 운명을 흔들었다.
조봉암이 사형 집행을 당한 날이 부친의 사망일과 겹치고, 편집국장으로서 ‘조봉암 사형 집행’을 국제신보 8월 1일 자 3면 톱으로 뽑았다고 하니, 한편의 운명 드라마 같다.
나림은 2년 후 1961년 12월 2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제자 조용수의 사형집행 소식을 듣는다. 이후 평생을 사형제도 공포 속에서 살았다. 맹수가 날뛰는 세상에서 생매장됐고 그의 작품은 무덤이자 묘비명이 됐다. 나림은 기록자를 넘어선 통찰자였다.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그린다.” 나림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광경을 보았다.
‘칸나·X·타나토스’는 국가권력이 정치인에게 사형을 집행한 법률소설이다. 1959년 7월 31일 신문사 풍경·편집회의·신문 1면이 탄생하는 과정·사설·조봉암과 만남·진보당원으로 얽힌 이야기·정치 사찰·부친 사망 등 세세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회고·자전·언론·법률·기록문학이다. 1974년. 문학사상. 54세. 단편 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