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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인간극장] <13> 나전칠기 - 장철영 나전장

수만 개의 자개 한 땀 한 땀 … 보석보다 찬란한 광채 수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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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복 껍데기 갈아 가구·함 장식
- 고려시대 대표하는 공예품

- 국보급 ‘나전모란당초문경함’
- 日이 소장해 구경도 힘든 실정
- 끊음질 줄음질로 정교한 무늬
- 장씨 오랜 연구 끝에 재현 성공

- 통영12공방서 디자이너 협업
- “현대기술 접목해 새로운 실험”

지난해 10월 서울 용산구 삼성미술관 리움 상설전. 1층 국보장에 등장한 높이 8㎝ 폭 16㎝의 팔각합에 이목이 집중됐다. 작품명은 나전 국화당초문 팔각합. 2014년 일본 아이치현 도자미술관 특별전에서 처음 공개됐다. 제작 시기는 고려 말엽으로 추정. 흑칠 바탕에 촘촘한 국화당초무늬가 새겨져 있다. 첫 공개 당시 고고미술사학계에선 “소름 돋을 만큼 정교한 자개 무늬가 돋보이는 수작”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리움 측은 이듬해 팔각합을 포함해 전 세계에 흩어진 고려 나전 공예품 8점을 빌려다 한 차례 특별전을 열었다. 자개가 내뿜는 백색과 청색의 신비로운 어우러짐은 수백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관람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리움 측은 나전 공예품의 소장 필요성을 절감해 특별전을 연 지 6년 만인 지난해 어렵사리 나전 국화당초문 팔각합을 사들여 국보장에 모신 것으로 알려졌다.
죽(竹)나전 벽걸이를 끊음질 기법으로 제작하고 있는 장철영 나전장.
■국보 재현을 위한 고집

나전(螺鈿)은 전복 껍데기를 갈아 가구나 함 등에 상감해 장식하는 전통 기예다. 우리말로는 ‘자개’라고 한다. 중국 당나라에서 기원해 삼국시대 한반도에 유입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고려시대 나전이 크게 발달해 고려를 대표하는 예술품인 청자·탱화(불화)와 어깨를 견줬다. 12세기에는 당나라풍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고려양식을 일군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2015년 리움 특별전이 일본이나 서구권 국가에서 ‘빌려온’ 작품을 통해 성사된 데서 드러나듯 고려시대 나전 공예품 대부분은 제국주의 열강의 손에 떨어졌다.

장철영 나전장.
고려 나전칠기 공예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국보급 문화재 ‘나전모란당초문경함’(경문을 넣어 보관하는 함) 또한 일본 기타무라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국가 무형문화재 10호 나전장 이수자 장철영(61·경상남도 최고장인) 장인은 경함의 매력에 빠져 오랜 연구 끝에 재현에 성공한 장본인이다. 나전칠기 공예로 이름을 떨쳤던 통제영12공방이 있는 경남 통영 작업장에서 그를 만나 경함 재현과 나전 제작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장 장인이 기타무라 미술관의 경함에 대해 알게 된 시기는 한국전통문화대 문화재 수리 복원 과정을 밟던 2010년. 사진으로 일견한 경함의 모란당초무늬는 수만 개의 자개를 일일이 손으로 붙이며 피워낸 걸작이었다. 수 백년 전 고려 시대에 끊음질(자개를 가늘게 잘라낸 후 붙여 무늬를 만드는 기법)과 줄음질(자개를 무늬대로 오려내는 기법)만으로 이런 무늬를 만들었다는 데 충격 받았다. 그는 “작품의 정교함에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당시까지 현존하는 것으로 확인된 고려 나전 경함 8점 가운데 단 한 점도 국내에 보존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이를 재현이라도 해보자고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반년간 고려시대 나전과 경함에 대한 연구서·논문을 파헤친 끝에 장 장인은 ‘실측’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겉면은 어떻게든 재현하더라도 함의 내부가 어떤 형태로 제작됐는지를 짐작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기타무라 미술관 측은 이를 거절했다. “전통문화대 총장 명의로 실측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문화재청의 협조도 구해봤지만 미술관 측에서는 동의해주지 않았어요. 한국의 장인이 미술관의 보물을 열어보려는 의도를 그들도 짐작했던 듯합니다.”

다른 경로를 찾던 그는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일본 문화재연구위원이자 교수가 실측한 데이터와 사진을 받을 수 있었다. 놀라웠던 사실 중 하나는 경함 내부에 베를 붙이는 방식이 전통기법으로 전해지던 것과는 다른 형식을 띠었던 점이라고 한다. 나전칠기는 소목 작업 이후 옻을 칠해 베를 붙인 뒤 편편하게 고르고, 베 위에 다시 칠죽을 발라 자개를 붙이는 순서로 제작된다. 장 장인은 “베는 사각형 모양에 맞춰 반듯하게 가로로 붙이는 방식을 취했다. 그런데 엑스레이 사진을 통해 경함 내부를 들여다 보니 베를 비스듬이 기울여 대각선으로 붙인 형태였다”며 “실제 이런 방식으로 붙여보니 베가 백골(白骨·가구 제작에서 베·옻칠의 바탕이 되는 나무면)을 더 단단히 고정해 뒤틀림이나 부러짐을 막는 기능이 뛰어났다”고 설명했다.

실측 자료를 쥐는 데 6개월, 이를 바탕으로 경함 재현에 성공하는 데는 2년이 걸렸다. 제작에 필요한 나무가 국내에는 있지 않아 일본 문화재 장인으로부터 60년 이상 건조된 자단목판을 사들여 작업했다. 당시 가로·세로 1.5m 규격 목판 3장 가격이 2000만 원에 달했다고 한다.
그가 복원한 고려나전모란당초문경함.
■통제영12공방의 디자이너

임진왜란 때 통영에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됐다. ‘통영’이라는 지칭 자체가 삼도수군통제영의 준말이다. 경상 전라 충청의 수군을 지휘한 본영인 이곳에는 군수품을 비롯해 궁궐에 진상하는 물품을 생산하는 공방이 밀집했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문화동 일대를 중심으로 공방이 조성됐는데, ‘많다’는 의미의 12를 붙여 ‘통제영12공방’이라고 불렸다.

나전은 이중 패부방(자개를 붙여 나전 공예품을 만드는 공방)에서 도맡았다. 여러 공방 가운데 패부방은 소목방(나무로 가구·문방구를 제작)·주석방(놋쇠와 백동 등으로 각종 두석·장석을 제작)과 짝을 이뤘다. 장 장인은 “나전칠기는 이들 3개 공방 장인들이 협업해 제작한다. 나전장은 전체 칠기의 디자인을 담당했다. 나전장의 구상에 따라 소목장이 백골을 만든다. 나전장이 이를 넘겨받아 옻칠하고 베를 붙여 나전 작업을 한다. 마지막에 경첩과 고리 등에 장석을 붙여야 마무리 되는데 작은 함은 3개월, 큰 장롱은 1년까지도 기간이 걸렸다. 통영 나전공예가 고도로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런 협업 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거도를 이용해 자개의 끝을 가늘게, 가운데를 굵게 잘라내는 통제영 12공방의 ‘산수끊음질’ 기법은 작품의 원근감을 더해 통영의 나전칠기가 이름을 떨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나전칠기가 흥하면서 1980년대까지는 횟집마다 흥미로운 풍경이 연출됐다고 한다. 장 장인은 “지역 어르신들이 포대 하나를 들고 횟집을 돌며 전복 껍데기를 모아 공방마다 날랐다. 각자 일정한 구역 범위가 있었고, 공방들도 어르신들이 공급하는 전복 껍데기를 우선적으로 사들였다”고 회상했다. 자개를 만들기 위해 전복 껍데기를 물에 담가 소금기를 빼고 뒷면을 화강암에 갈아 반으로 가르는 작업을 ‘따낸다’고 표현한다. 평면이 편편한 암컷의 껍질을 높게 쳐줬다. 이 같은 전통기법으로는 하루 8시간을 작업해도 4, 5장의 전복 껍데기만을 갈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장 장인은 전통을 현대기술과 접목해 발전시키는 방향을 추구한다. “평생 자개를 연구하고 만들면서도 그 아름다움에 감탄합니다. 그런데 자개의 아름다움도 나이에 따라, 보는 이의 눈에 따라 달리 보이는 모양입니다. 언젠가 제 작품을 본 아이들이 ‘자개의 빛이 별처럼 아름다워요’라고 말해 놀랐습니다. 저는 자개와 별빛을 연관지어 생각해본 적은 없거든요. 비록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아이들의 눈에도 자개가 아름다워 보였다면 앞으로 나전이 새롭게 주목받게 될 날도 오지 않을까요? 그날까지 나전을 만드는 일에 매진하고 싶습니다.”

※ 제작지원 B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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