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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앵커’ 천우희 또다른 변신

‘오싹한 장르’가 체질…첫 전문직 얼굴로 긴장감 쥐락펴락

  •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  |   입력 : 2022-04-19 19:39:15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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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차별 사회 시스템 민낯 담은
- 정지연 감독 미스터리 스릴러
- 의문의 제보 마주한 앵커 열연
- 내면 혼란과 일상의 공포 표현

- “발음·표정·헤어스타일 싹 바꿔
- 압박감과 쾌감 동시에 느꼈죠”

어떤 역할을 맡든 자신만의 색깔로 놀랍거나 신선한 연기를 선사하는 배우 천우희가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앵커’(개봉 20일)에서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녀는 진폭이 큰 캐릭터를 섬세하게 연기하며 영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든다.

여성 감독 정지연의 장편 데뷔작인 ‘앵커’는 방송국 간판 앵커 세라에게 누군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며 직접 취재해 달라는 제보 전화가 걸려오고, 이후 그녀에게 벌어지는 기묘한 일을 그렸다. 천우희는 성공을 향한 강박과 불안감을 가진 앵커 세라 역을 맡았다. 특히 죽음의 제보 전화 후 세라가 겪는 혼란과 뒤틀린 일상 속에서 느끼는 공포를 잘 표현했다.

최근 온라인 화상으로 만난 천우희는 자신이 연기한 첫 전문직 캐릭터라는 것과 오랜만에 스릴러 영화에 출연했다는 것이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중요한 이유가 됐다고 밝혔다. 그녀는 “제가 좋아했던 작품들을 보면 스릴러 장르의 밀도가 높았다. 이번 작품도 그런 장르적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자신이 선호하는 취향을 설명했다. 또한 “그간 제가 맡았던 역할들이 신입이거나 사회 초년생 느낌의 역할이었다. 예를 들어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도 보조작가였다. 저도 배우라는 직업인으로서 경력이 쌓여가고 있는데 한번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방송국 메인 뉴스의 앵커로서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세라에 끌리게 됐다”고 캐릭터적인 면에서도 ‘앵커’가 매력적이었음을 전했다. 물론 베테랑 앵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천우희, 앵커로 변신하다

죽음을 예고한 제보 전화를 받은 후 모든 것이 뒤흔들린 뉴스 메인 앵커 세라 역을 맡은 천우희. 그녀는 앵커 캐릭터를 위해 발성과 발음은 물론, 의상과 헤어 등도 완벽하게 준비했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우리는 생활 속에서 항상 TV 뉴스를 접하기 때문에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의 모습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막상 앵커처럼 말하려면 쉬운 일이 아니다. 예전에 영화 ‘그놈 목소리’와 ‘더 테러 라이브’에서 앵커 역을 맡았던 설경구나 하정우는 앵커 특유의 톤으로 대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연기에 지장 받기도 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천우희는 어땠을까? “생각보다 딕션이나 발성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자세와 표정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앵커가 되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천우희는 출연을 결정하고 진짜 앵커가 되기 위해 아나운서 지망생들이 6개월간 공부해야 하는 과정을 20일 만에 속성으로 마쳤다. 발음과 발성 연습도 매일 같이 서너 시간씩 했으며, 아나운서 특유의 자세와 표정까지 뉴스를 보며 공부하고 똑같이 묘사했다. “촬영장에 김민정 아나운서가 상주하며 도와줬다. 김 아나운서와 저를 비교하니 차이가 많이 났다. 수년간 앵커를 해온 분들의 것을 20여 일간 노력해서 표현한다는 것이 솔직히 욕심이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보면 천우희는 마치 실제 앵커처럼 자연스럽게 뉴스를 진행한다. 더 대단한 것은 뉴스를 진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후반에는 자신을 억누르는 불안과 긴장감을 뉴스를 진행하면서 함께 표현했다는 것이다. “제가 연기한 앵커로서의 세라는 아주 틀에 갇힌 인물로 보여야 했다. 그래서 뉴스 전달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됐다. 하지만 죽음의 제보 전화 이후 내면의 심리도 함께 표현해야 하는 것이 조금 어렵긴 했다.”

외모도 앵커로 보이기 위해 정 감독과 함께 노력했다. “정 감독님은 처음부터 세라의 감정 변화에 따른 의상의 색깔 변화에 대해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프리 프로덕션 때부터 의상, 분장, 헤어를 미리 잡아서 테스트를 했다.” 그런데 테스트 촬영 때 모두가 당황하는 일이 벌어졌다. 앵커 분장을 한 천우희가 생각보다 어려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화장도 조금 더 성숙하게 하고, 헤어스타일도 단발인데 더 베테랑 아나운서 느낌으로 잘랐다.”

■일하는 여성, 모녀 관계, 여성 영화

‘앵커’ 촬영장에서 방송국 간판 앵커 세라 역의 천우희를 도와준 김민정(오른쪽) 아나운서.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앵커’는 미혼모 여성의 죽음을 예고한 제보 전화를 파헤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스릴러이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간판 앵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세라의 강박과 그런 세라를 있게 한 어머니 소정과의 갈등으로 전이된다. 남편과 별거 중인 세라는 간판 앵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임신을 피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알고 보니 과거 유망한 아나운서였으나 임신으로 경력 단절이 된 과거지사가 있었다. 이렇듯 ‘앵커’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사회 시스템의 차별적 현실을 다룬다. “성공에 대한 욕망은 남성, 여성을 나누지 않아도 인간이면 다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일하는 여성들이 겪게 되는 고충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것이다.”

‘앵커’에서 다루는 모녀 관계도 애정으로 모든 문제를 감싸는 일반적인 영화와 다르다. “영화나 드라마 속 엄마의 모습은 항상 모성애가 넘치는 단편적인 면만 보여주는 것 같다. 엄마는 엄마로 태어난 게 아닌데 우리가 보고 싶은 모습만 표현되기를 바라는 것일 수 있다. ‘앵커’에서 딸에게 애증을 보이는 엄마의 모습은 무척 극적이기는 하지만 그 감정은 보편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 영화에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거나 여성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모자란 것이 현실이다. “여성 서사가 적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꼭 어떤 젠더 이슈로 나눠서 그 비중을 무조건 늘려야 된다는 생각은 아니다. 어느 분야든 완성도 있는 좋은 작품들을 내는 것 더 중요하다. 대신 여성 서사를 세밀하게 써줄 수 있고, 연출할 수 있는 분들이 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것을 개발하고 투자, 제작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점점 나아져야 될 것이다.” 천우희는 그간 ‘써니’, ‘한공주’, ‘버티고’에 이어 ‘앵커’까지 여성 서사의 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제가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은 좋은 선택을 하고, 완성도 있게 연기하는 것이다. 앞으로 나올 여성 영화들을 응원한다.”

■‘센 캐’ 전문 배우

천우희를 만나면 잘 웃고, 즐거운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상하게 영화에서는 강렬한 인상의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써니’에서는 불량소녀 본드 걸 상미, ‘한공주’에서는 집단 성폭행 피해자 공주, ‘곡성’에서는 불길함을 드리우는 미스터리한 존재 무명 등을 연기해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줬다. 그래서 ‘센 캐(센 캐릭터)’전문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는데, 이번 ‘앵커’의 세라도 만만치 않다. 죽음이 예고된 제보자를 찾아가거나 후반부 해리성 장애를 겪는 장면에서는 스릴러 영화임에도 어떤 장면에서는 공포 영화를 능가할 정도로 서늘함을 연출하기도 한다. “항상 양면적인 게 있다. 스스로 압박감을 부여해서 힘든 역경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 있는 반면 그래도 그것을 해냈다는 쾌감과 나름의 만족감이 있다. 그리고 꼭 ‘센 캐’라고 해서 혹은 즐겁고, 유쾌한 캐릭터라고 해서 어렵지 않은 건 아니다. 이번 세라는 그녀가 가진 복합적인 모습이 잘 어우러져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냉기, 열기, 광기’ 세 가지를 포인트로 생각하고 연기했다.”

다양한 역할을 해온 천우희에게 간판 앵커의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은 세라처럼 연기에 대한 열망과 욕심, 경쟁의식이 있을까? “이건 좀 결이 다른데, 어떤 자리나 작품을 맡기 위한 욕심이나 욕망은 없는 것 같다. 물론 좋은 작품들을 보면 되게 부럽지만, 누군가와 경쟁하고 기싸움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그럼에도 치열하게 연기하는 이유는 저 자신과의 경쟁 때문이다. 이전 연기보다는 좀 더 발전하고 싶으니까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가장 최근 연기한 작품이 가장 힘들고 가장 강도가 높은 연기”라며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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