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29> 이병순 장편소설 ‘죽림한풍을 찾아서’

한때는 클래식광 … “내 소설 속 고미술에 미친 인물들과 비슷했죠”

  •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4-24 19:19:02
  •  |   본지 1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성악가 꿈꾸다 문예창작 전공
- 고유의 말로 아름다움 설명한
- 미술사학자 혜곡의 글에 빠져
- 전국 박물관·미술관 곳곳 누벼
- 문화재 가치 담은 소설 펼쳐내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는 얼마나 많을까. 이 땅의 사기장들이 빚은 도자기, 화공의 그림, 책자 등 그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다. 수천만 점이라는 수치가 있다 해도 그것이 전부이겠는가. 수치 이상일 것이다. 빼앗긴 문화재 생각을 일상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일단 그 생각이 나면 화가 난다. 그렇다고 솔직히 말해 무사히 이 땅에 남아 있는 문화재와 미술품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마음으로 만들고 빚고 그렸을까, 누가 그 가치를 알아보았을까, 누가 지켰을까.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을 만났다. 이병순 소설가의 장편소설 ‘죽림한풍을 찾아서’이다. 대숲과 바람, 그것을 찾는다는 소설 제목부터 마음에 쏙 든다. 이병순 소설가를 부산 남구 대연동 수목원에서 만났다.
부산 남구 대연동 수목원에서 만난 이병순 작가는 고미술에 관한 소설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문화재와 골동품에 대한 관심

이병순은 부산 남구 문현동에서 태어나 대연동에서 계속 살았다. 대연동 수목원은 그에게 익숙하고 편한 곳이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머리도 식히고 마음도 채운다. 나무 그늘에서 쉬기도 한다. 수목원을 찾아온 시민도 그렇게 걷고, 쉬고 있었다.

문학에 뜻을 둔 것이 언제였는지 물었는데 대답은 의외였다.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요. 성악가를 꿈꾸었고, 음악을 좋아했답니다.”

글과의 인연을 물었더니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집’이라는 주제로 글을 쓸 때 다른 아이들은 적당히 꾸며서 썼는데, 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썼지요.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글은 이렇게 쓰는 거라며 칭찬도 해주시고, 학급 게시판에 제 글을 붙여 주셨답니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을 좋아해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시와 소설을 많이 읽게 됐지요. 그러면서도 제 꿈은 음대를 가는 것이었는데, 결국 음대는 못가고 문예창작과로 진학했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월급을 모아 제일 먼저 한 것이 오디오 시스템을 구비하는 것이었다. 소설 이야기는 언제 나오는 거지 싶을 정도로 음악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월급 받는 족족 클래식 음반을 사서 들었어요. 클래식 전문 라디오 채널을 맞추고 공테이프에 녹음도 했지요.” 골동품에 미친 소설 속 소장자들의 수집벽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30대로 접어든 어느 날 이병순은 어머니와 함께 서점에 들렀다가 미술사학자이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었던 혜곡 최순우의 글을 모은 5권 세트 책을 보았다. 혜곡은 그가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난 이름이었다. 중학교 1학년 국어책에서 본 혜곡의 수필, 그리고 중학교 수학여행 때 방문한 국립중앙박물관이 떠올랐다. 5권의 책에서 읽은 혜곡의 글은 이병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리 미술품을 대하는 마음도 깊었지만, 그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글에서 큰 감명을 받았지요. 우리 고유의 말로 이렇게 아름답고 정겹게 표현할 수 있구나! 실제로 느껴보고 싶어서 그때부터 전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아다녔습니다.”

이병순은 도자기 한 점, 그림 한 폭 앞에 서서 몇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부산에서 TV프로그램 ‘진품명품’ 촬영을 할 때 그 현장에도 갔다. 미술품 경매장에도 다녔다. 그 동안 문화재, 골동품과 관련한 이야기도 하나씩 쌓였다. 201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단편소설집 ‘끌’을 출간하고 작품활동을 하면서도 우리 미술품에 대한 관심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문화재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그렇게 태어났다. 오랜 시간 그의 마음속에 있었던 이야기였다.

■ 죽림한풍의 주인은 누구일까

죽림한풍을 찾아서- 이병순 지음 / 실천문학사 / 2021
‘죽림한풍을 찾아서’는 일제 강점기 때 미술품을 경매하던 ‘경성미술구락부’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한 서사로 풀어냈다. 병신년에 태어났기에 ‘강병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명 화공, 골동품에 미쳐 전 재산을 바쳤다 해서 ‘동치’라고 불리는 인물의 만남이 긴 이야기의 시작이다.

병신은 동치의 주문을 받고 대숲에 부는 바람을 담은 ‘죽림한풍’을 그렸다. 4년에 걸쳐 혼신을 바친 그림이었다. 그 그림을 알아본 동치에게 돈 한 푼 받지 않고 주었다. 병신이 그림을 그릴 때 손자 강석초는 먹을 갈았고, 죽음을 기다리며 누워있던 동치는 ‘죽림한풍’에 빠진 손자 김종하에게 그림을 물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동치의 집안이 무너져 그 아들이 부친의 소장품을 팔며 이사 설거지를 할 때, 병신은 불쏘시개가 되기 직전의 그림을 가까스로 되찾아왔다. 그러나 동치와 병신이 연이어 세상을 뜬 후 그림은 사라졌다. 훗날 김종하는 그림의 가치를 알기에 찾고, 강석초는 조부의 그림을 모두 찾아 미술관을 만들려 한다.

김종하와 강석초를 따라가면 당시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볼 수 있다. 고적탐사라는 이유를 대고 조선의 땅과 무덤을 파헤치는 일본인들, 경성미술구락부에서 거금을 뿌리며 미술품을 사는 일본 소장자들, 그 사이에는 조선의 소장자들도 있다. 소설이지만 실제 사실이나 실존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누가 ‘죽림한풍’의 최종 소장자가 될 것인가 하는 게 가장 흥미진진하다. 소설 마지막은 경성미술구락부 ‘죽림한풍’의 경매현장에서 마주한 김종하와 강석초의 긴장으로 끝난다. 무명 화공의 알려지지 않은 그림이기에 처음부터 무관심인 사람들 속에서 두 사람은 그림을 갖고 싶은 열망으로 절박하다. 누가 그림을 가졌으면 좋을까. 소설을 읽은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하고 싶다.

아름답고 순박한 우리말이 소설 속에 보석처럼 박혀 있어 읽는 재미 또한 각별하다. 책의 첫 장이며 병신의 회고록인 ‘병신유고’는 소설 속 소설이다. 그 중 병신이 대숲을 보는 장면을 보자. “동치 그림 주문을 받은 그날로 나는 대숲을 더 살뜰하게 맴돌았다. 안적사 비탈에 무너질 듯 사선으로 뻗은 대숲을 종일 바라보고 왔다. 사락사락, 바삭바삭, 시비적시비적, 홀싹홀싹, 파그작파그작, 노작노작, 휘리릭휘리릭, 쏴쏴쏴, 화락화락. 대바람소리는 갖추갖추였다.” 그 소리를 담아내는 말이 이렇게 ‘갖추갖추’이다. 대숲의 바람이 보인다. 죽림한풍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지광, 국감 출석 거부…“해결의지 있다면서 책임 회피”(종합)
  2. 2부산 동물원(옛 삼정더파크) 정비 착수…안전 등 꼼꼼히 챙겨 2029년 개장
  3. 3간부 줄이고 예산 반납 미루고…사하구 힘겨운 적자 경영
  4. 4가덕 내달초 착공 여부, 이번주가 최대 분수령
  5. 55월 3.84대 1 이었는데…부산 청약경쟁률 사상 첫 미달
  6. 6김태형 결국 롯데 떠난다…구단 늑장대처 도마
  7. 7김해 국제선 지난해 대비 석달 빠른 1000만…외신도 부산 조명(종합)
  8. 8‘YS 영원한 오른팔’ 최형우 전 장관 별세…향년 91세(종합)
  9. 9막판까지 조희대·김현지 정국…쇼츠 경쟁 오명도
  10. 10시내버스·우유팩·유튜브로…양보·배려운전 동참 호소
  1. 1지광, 국감 출석 거부…“해결의지 있다면서 책임 회피”(종합)
  2. 2‘YS 영원한 오른팔’ 최형우 전 장관 별세…향년 91세(종합)
  3. 3막판까지 조희대·김현지 정국…쇼츠 경쟁 오명도
  4. 42심 무죄 오세훈, 장동혁·한동훈과 보수 재편 주도권 경쟁(종합)
  5. 5부산시의회 회의일수 연장 추진…김태효 “충분한 심의 시간 필요”
  6. 6與, 국감 이후 ‘조작기소 특검법’ 본격화
  7. 7北도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서한…“지뢰 폭발 사건은 한국 자작극”
  8. 8[속보] 한동훈 “오세훈 무죄 판결에 참 다행스럽다 생각”
  9. 9법무장관 박균택·양부남 유력, 野 "李 죄 지우기 인선이냐"(종합)
  10. 10‘YS 오른팔’ 故최형우 빈소 조문한 김민석 “여야 넘어 성찰”
  1. 1가덕 내달초 착공 여부, 이번주가 최대 분수령
  2. 25월 3.84대 1 이었는데…부산 청약경쟁률 사상 첫 미달
  3. 3“SMR 제작·운영·인재양성 부산허브 구축 속도를”
  4. 4스마트링부터 부산 새 패션 브랜드까지…백화점 신수요 공략
  5. 5해상풍력 육성, 정부·동남권 공조가 ‘키’
  6. 6FOMC에 반도체 실적까지…널뛰기 장세에 이벤트 촉각
  7. 7청년 55% “조건 맞으면 지역 중소기업 갈 것”
  8. 8도로정보 실시간 공유, 운전석 없는 車…교통올림픽 달군 국내기술
  9. 9견과류 한 봉지에 980원
  10. 10김창수 위스키 마리골드 52.2도, 롯데마트 268병 한정 단독 판매
  1. 1부산 동물원(옛 삼정더파크) 정비 착수…안전 등 꼼꼼히 챙겨 2029년 개장
  2. 2간부 줄이고 예산 반납 미루고…사하구 힘겨운 적자 경영
  3. 3김해 국제선 지난해 대비 석달 빠른 1000만…외신도 부산 조명(종합)
  4. 4시내버스·우유팩·유튜브로…양보·배려운전 동참 호소
  5. 5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26일
  6. 6해양·양자 미래산업 닻 올린 부산…청년 인재 끌어당긴다
  7. 7생굴의 계절…통영굴수협 초매식
  8. 8[한 손 뉴스] ‘부캉이 이모티콘’ 나왔다…부산시, 선착순 무료배포
  9. 9수로입구서 사라졌던 부캉이, 국제여객터미널 인근서 관측(종합)
  10. 10부산도시철 현장안전인력 산정 TF 구성 잠정합의(종합)
  1. 1김태형 결국 롯데 떠난다…구단 늑장대처 도마
  2. 2불가능을 가능케…亞패러게임 5위
  3. 3‘올림픽 3연패 주역·AG 金6’ 펜싱 구본길 칼 내려놓다
  4. 4은퇴 앞둔 최민정, 시작부터 금빛질주
  5. 5태풍 ‘참피’영향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1차전 취소
  6. 6안세영, 시즌 10번째 우승…프랑스오픈 3연패
  7. 7종합 6위 부산, 고른 활약에도 아쉬움
  8. 8만년 꼴찌 삼성 선두 ‘파란’…前 챔프 KCC 최하위 ‘수모’
  9. 9쇼트트랙 전설 최민정의 마지막 질주
  10. 10‘성폭행 의혹 제기’ 초교후배…기성용에 1억 배상해야
우리은행
한국문학관 기행
바람처럼 자유로운 김홍신 문학을 ‘건축언어’로 표현한 공간
최진숙의 유네스코 세계 유적지 이야기
보리수가 휘감아 지킨 불두, 몰락왕조 영광의 기억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일상 언어에서 찾은 삶의 방향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지나-마음
남인목-웃는 나무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설상수
경비원 /박필상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누적 180만 넘긴 ‘극장판 치이카와’ 2주 연속 정상…예매율도 1위
팬덤의 힘 ‘극장판 치이카와’ 1위로…암살자(들) 근소한 차 2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6일 (음 9월 16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2일 (음 9월 12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지리산 연곡사를 찾아 시 읊은 매천 황현
겸재 정선은 금강산의 참모습을 어떻게 그렸을까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