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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인간극장] <16> 함안낙화놀이 - 이응주 이수자

농민이 되살린 불꽃송이 … 연못 위 수천 개 별무더기로 쏟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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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전통놀이
- 숯·한지·광목천 엮어낸 낙화봉
- 그 제작기간만 꼬박 3개월 걸려
- 뗏목 탄 작업자들 횃불로 점화
- 불똥 떨어져 환상적 경관 연출

- 일제 탄압과 농촌 공동화 등에
- 끊겼던 명맥, 주민 힘으로 복원

초파일인 지난 8일 아침, 경남 함안군 함안면 괴항마을의 연못 ‘이수정’에선 낙화봉을 매다는 작업이 한창이다. 조선시대부터 전해진 낙화놀이를 재현하기 위해 흰 저고리와 바지를 입은 일꾼들이 등장한다. 일꾼들은 뗏목을 타고 이수정을 이리저리 돌며 새끼줄처럼 꼰 낙화봉을 매단다. 코로나19로 3년 만에 다시 열리는 낙화놀이 축제를 위해서다. 낙화봉 수 천 개를 달아야 하는 고된 작업인데도 그들의 얼굴엔 엷은 미소가 가득했다.
뗏목을 타고 불꽃 사이로 낙화봉에 불을 붙이는 의용소방대원들의 모습. 이우정PD
해가 기울자 농악소리가 울려 퍼지며 구경꾼들이 모여든다. 오랜만의 축제에 남녀노소 모두 웃음꽃을 피워낸다. 여항산 자락 뒤로 해가 넘어가자 사회자가 “점화!”라고 외친다. 뗏목에 탄 작업자들은 다시 연못을 돌며 낙화봉 하나하나에 횃불을 갖다 댄다. 불꽃을 머금은 수천 개의 낙화봉은 이내 빛을 내뿜으며 연못을 붉게 수놓는다. 바람이 스치면 수없이 많은 불꽃송이 향연이 펼쳐진다. 지난해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과 최근 KBS 드라마 ‘붉은 단심’에서 낙화놀이를 배경으로 찍은 촬영분이 방영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취재팀은 지난달 26일 괴항마을을 찾았다. 경남 무형문화재 제33호인 함안낙화놀이 이응주(68) 이수자는 동료 6명과 마주앉아 낙화봉 제작에 한창이었다. 한지와 광목천에 숯가루를 뿌려 댕기처럼 꼬은 낙화봉(길이 약 40㎝)은 제법 손이 많이 간다.

먼저 숯가루를 뿌린 한지 위에 흰 광목천을 덧댄다. 다시 숯가루를 충분히 얹고 한지로 덮어 말아준다. 말아 놓은 숯가루 뭉치 두 개를 댕기처럼 꼬아 낙화봉 하나를 완성한다. 심지인 광목천에 불을 붙이면 숯가루가 불타 연못 아래로 불똥을 떨어뜨려 장관을 연출한다.

이 이수자는 “함안 낙화봉 제작방법이 특허로 등록돼 있다. 단순히 숯가루를 말아서 태우는 것처럼 보여도 미세한 수작업을 통해 환상적인 경관을 연출해 내기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소개했다. “숯가루를 만드는 데 3개월이 걸려요. 참나무를 벌목해 직접 만들기 때문이죠.”

이른 봄부터 함안낙화놀이보존회 회원들은 숯가루에 쓸 참나무를 찾아 나선다. 채취한 나무를 차곡차곡 쌓아 불을 붙인다. 이때 알맞은 불 세기를 조절하는 게 기능 보유자의 몫이다. “잘못 태우면 바싹 말라버리기 때문에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최소 10일이 걸리는 과정이에요.”

이제 태운 참나무를 갈 차례다. “방앗간에 있는 파쇄기와 비슷하게 생긴 기구를 이용해 나무를 갈아요. 분진이 장난이 아닙니다. 분쇄된 가루는 또 체에 걸러내죠. 이런 과정을 거쳐 거의 3개월 만에 완성됩니다.”

조선 고종 때 함안에 부임한 오횡묵 군수는 낙화놀이를 보며 한 구절 시를 지을 정도로 감탄했다. 오 군수가 기록한 ‘함안총쇄록’에서 그 시조를 볼 수 있다. ‘붉은 빛은 꽃이 피어 봄이 머무는 듯하고(紅疑花發如春住) 밝음은 별무더기 같아 밤은 돌아오지 않네(明若星堆不夜回)’.

유구한 전통을 지닌 함안낙화놀이는 외세 침략과 함께 멈춰버렸다. 일제 강점기 조선전통 말살 정책에 따라 더 이상 낙화놀이를 할 수도, 볼 수도 없게 되었다. 광복 이후에도 6·25 전쟁으로 인해 그 명맥은 깨어날 수 없었다.

그러다 1960년대 들어 괴항마을 농민들이 낙화놀이 복원을 시도한다. 지역의 전통을 잇고자 사비를 들여 재료를 구해 작으나마 낙화놀이 재현에 나섰다. 줄곧 함안에서 자란 이 이수자는 “제가 어릴 때 마을 어른들이 나무 사이에 새끼줄을 연결하고 거기다 낙화봉을 매달던 기억이 난다. 청년회를 중심으로 축제가 열렸다”고 회상했다.

이응주 이수자
1980년대에는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면서 낙화놀이 전통이 다시 끊긴다. “젊은 사람이 다들 떠나니 낙화봉 만들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다 2000년대 함안면이랑 우리 마을 주민 30여 명이 지금의 함안낙화놀이보존회를 설립해 축제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보존회의 노력으로 2008년 10월 함안낙화놀이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현재는 보존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숯가루 제작부터 낙화봉 매달기까지의 과정을 교육한다.

보존회 회원들은 다들 낙화놀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농사꾼이다. “우리는 함안낙화놀이 공연으로 수익을 올리는 게 아닙니다. 다 농사 짓고 있어요. 낙화놀이 할 때 쯤이면 다같이 모여 축제를 준비하죠.” 이 이수자도 벼농사와 곶감농사를 한다.

축제가 다가오면 회원들은 농사일을 제쳐두고 낙화봉 제작에 나선다. 이 이수자는 “아무래도 각자 생계가 있다 보니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아 축제를 준비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언제 가장 보람을 느낄까. “낙화놀이 축제를 할 때 직접 낙화봉을 다는 체험 프로그램이 있어요. 소원을 적어서 같이 매달아요. 어린 아이들이 자기가 만든 낙화봉에 ‘우리가족 건강하게 해주세요’ ‘시험 잘 치게 해주세요’ 같은 소원을 적는 걸 보면 흐뭇합니다.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뻐요.”

이 이수자는 최근까지도 작년·재작년에 이어 축제 취소를 고민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올해도 못 할 뻔 했습니다. 워낙 민감한 문제다 보니 올해도 그냥 넘길 뻔 했죠.” 다행히 3년 만에 축제를 재개하자 많은 관객이 찾아 박수를 보냈다. 함안화천농악과 함안국악관현악단·함안읍성민속선양회 농악 공연까지 어우러지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함안낙화놀이가 세계적인 축제가 됐으면 좋겠어요.” 함안낙화놀이 보존회 이사이기도 한 이 이수자는 오랫동안 간직한 소망을 꺼냈다. “올해 낙화놀이의 국가무형문화재 등재 신청을 할 계획입니다. 오랜 전통을 가진 축제가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가 즐기는 축제가 되길 바랍니다.”

함안군은 2020년부터 추진한 무진정(경남도 유형 제158호, 이수정 옆에 자리잡은 정자)의 문화관광자원 개발과 함안낙화놀이 전수교육관 건립을 마무리했다. 경남의 ‘모네의 정원’으로 불리는 무진정의 경관적 요소와 함께 생육신 어계 조려 선생 손자인 조삼 선생과 700년 전 고려시대 연꽃 씨가 출토된 곳인 성산산성의 스토리가 더해져 무진정 일대가 역사문화 관광 거점이 될 것으로 함안군은 기대한다.

※ 제작지원 B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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