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최원준의 음식 사람] <57> 경남 옛 쇠전 소고기국밥 (상)

소시장 낀 장터에 꼭 있는 국밥 … 개운칼칼한 국물엔 찬도 필요없네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5-10 19:43:51
  •  |   본지 1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장 크게 섰던 함안 의령 삼가
- 큰 장에는 반드시 ‘쇠전’ 형성
- 쇠전서 나온 양질의 소고기에
- 무 콩나물 파 등 넣고 끓인 국밥
- 얼큰 시원 깔끔하면서 진한 맛
- 경상도식 소고기 국밥의 전형

봄날 장터에는 모든 생명이 푸릇푸릇하다. 싱그럽고 활기차다. 이런 장날이면 인근 마을 사람은 거의 다 장에 모인다.
경남 함안 소고기국밥. 콩나물과 무 등을 넣어 끓인 후 매운 양념을 입혀 국밥으로 말아낸다.
구경거리가 변변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장날이 곧 축제날이었다. 온갖 물건을 다 구경하고 필요한 생필품도 한 손 가득이다. 이참에 반가운 사람과도 만나 서로 안부를 묻는다. 그러다 배가 출출해지면 주막에서 장터국밥에 막걸리 한 잔 넉넉하게 걸치는 것이다. 따뜻한 봄날, 장터 주막에서 한 잔 술에 기분은 도도해지고 불콰한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예부터 ‘장날에는 장터국밥’이란 말이 있다. 5일마다 장이 서기에 장날만큼은 꼭 장을 봐야 하고, 장에 간 김에 ‘장터국밥’ 한 그릇으로 나름 외식을 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장터국밥은 ‘장날, 장터에서 먹어야 제 맛’이라는 것이다.

장이 서면 장터에 천막을 치고 큰 가마솥을 걸고 국밥을 끓여내는데, 그 구수하고 얼큰한 고깃국 냄새에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요령이다. 그중에서도 쇠전(우시장)이 크게 열리는 장터에는 소고기 사태나 양지, 소머리와 사골 부위 등으로 푹 끓여내는 ‘소고기 국밥’이나 ‘소머리 국밥’이 일품이다.

봄볕 화창한 날, 자주 보는 술친구 셋이서 장터국밥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마음이 동했다. 이 봄날, 가마솥에서 슬슬 끓는 장터국밥에 막걸리 한 잔 마시러 가자는 것이다. 부산의 서부, 일명 서부 경남의 유명한 장터국밥, 그 중에서도 심심찮게 들렀던 ‘내공 있는 소고기국밥 노포(老鋪·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를 찾아가기로 했다.

함안의 옛 함안장터에 있는 ‘한우 국밥촌’, 의령장 뒤편의 ‘소고기 국밥 골목’, 합천 삼가장의 ‘삼가 한우거리’ 등이 그곳이다. 한때 모두 큰 쇠전이 열리던 장터의 오래된 소고기 국밥 집들이다.

예부터 함안 의령 삼가는 경남에서 가장 큰 장시(場市)를 형성했던 지역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경남의 중앙에 위치해 동부 경남과 서부 경남의 교통요충지이자, 동서 물류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큰 장시에는 당연히 큰 쇠전이 선다. 이곳 지역 역시 큰 쇠전으로 유명했다.
경남 함안의 옛 함안장터에 있는 ‘한우 국밥촌’. 소고기 사태나 양지, 소머리와 사골 부위 등으로 푹 끓여내는 한우 국밥이 일품이다.
큰 쇠전이 있던 지역은 신선한 소고기로 끓여내는 맛있는 국밥으로 유명했는데, 전국적으로 경기도 안성, 충청도 공주, 전라도 나주, 경상도 영천과 함께 함안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영천은 소머리로 국을 내기에 ‘소고기 국밥’으로는 함안이 그 대표격이라 할 수 있겠다.

부산에서 1시간도 채 되기 전 함안에 도착한다. 함안은 경남의 중앙에 위치하면서 경남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였다. 수 많은 사람이 함안을 거쳐 가며 출출한 속을 채웠는데 그 대표적인 음식이 소고기국밥이다.

함안 쇠전을 통해 공급받은 양질의 소고기와 무 콩나물 파 등 채소를 넉넉히 넣고 고춧가루로 벌겋게 끓여내는 함안 소고기 국밥은, 국물이 얼큰하면서도 시원하고 진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경상도식 소고기 국밥’의 전형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함안면사무소 뒤편 옛 함안장터에는 ‘한우국밥촌’이란 이름으로 ‘대구식당’ ‘한성식당’ ‘시장 한우국밥’ 등 소고기 국밥 전문식당 세 곳이 영업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소고기 국밥 집은 대구식당. 60여 년째 영업 중인 곳이다.

대구식당 사장이 국밥을 토렴하고 있다.
대구에서 시집을 온 여인이 장터 근처, 살고 있던 집 한쪽을 빌려 국밥을 말아 팔았던 것이 시작이다. 고향 대구를 식당 이름으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옥을 개조해 만든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 입구에 큰 가마솥이 걸려있고, 솥 안에는 벌건 소고기국이 슬슬 끓고 있다.

가마솥 앞에서 주인장이 국밥 토렴하랴, 수육 썰어내랴 무척 분주하게 몸을 움직인다. 어릴 적 기억하고 있던 장터국밥 집 풍경 그대로이다. 이곳 소고기 국밥은 사태와 양지 홍두깨살 갈빗살 등을 푹 곤 육수에 콩나물 무 등을 넣어 끓인 후 다시 매운 양념을 해서 국밥으로 말아낸다.

오로지 소고기로만 국을 끓여내기에 메뉴 이름조차도 그냥 ‘국밥’이다. 당연히 소고기로 끓여내는데 새삼스레 소 국밥이니 소고기 국밥이니 요란스레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장터국밥’이라는 것이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세 가지 형식으로 국밥을 제공한다. 밥으로 말아낸 일반 ‘국밥’과 국수를 넣어 말아낸 ‘국수’, 밥과 국수를 함께 말아서 내오는 ‘짬뽕’이 그것이다. 손님의 취향에 따라 선택해서 먹으라는 배려가 돋보인다. 모두 뜨끈하게 토렴하여 상에 올린다.

방안으로 들어가니 좌석에 따라 우리 전통 소반(小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마치 옛 장터 주막에서나 봄 직한 소반이다. 세월의 더께가 묻은 소반 위로 소고기 국밥이 오르는데 꽤 그럴싸하다. 국밥 위에 화룡점정처럼 후춧가루가 솔솔 뿌려져 있다.

반찬은 단출하다. 김치와 고추 양파 그리고 찍어 먹을 된장이 전부다. 늘 봐왔던 경남 소고기 국밥의 기본 찬이다. 그래, 맛있는 장터국밥에 반찬이 무에 대수인가. 온전한 국밥 한 그릇이면 그것으로 오롯한 것을.

국물 한 숟가락 뜬다. 조선간장으로 간을 했는지 개운하면서도 맛이 진하고 깊다. 칼칼한 뒤끝도 좋다. 얼큰하니 속이 확 풀린다. 두툼한 고기 한 점 집어 먹는다. 오래 삶아서인지 부드럽고 연하다. 결따라 씹히는 식감도 좋다. 가끔 씹히는 지방 부위는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참 흔쾌하다.

국밥을 휘휘 저어 한 술 떠먹는다. 아삭한 콩나물이 씹히고 야들야들한 고기가 뒤이어 씹힌다. 국물이 잘 밴 밥알이 혀 안에서 감돌고, 진하고 매콤한 국물은 이들을 감싸 안고 잘 어우러진다. 한 술 두 술 허벅허벅 정신없이 떠먹는다.

김치 한 점 맛을 보니 갓 담근 아삭아삭한 싱싱함이 괜찮다. 국밥 한 술에 한 점 얹어 먹으니 구수한 국밥에 파릇한 배추 맛이 곁들여져 잘 어울린다. 과연 국밥에는 맛있는 김치가 제짝이다.

이러구러 국밥에 코를 박고 먹다 보니 바닥이 서서히 보인다. 콧등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청양고추 몇 개 먹은 입술은 얼얼하다. 국밥 한 그릇 뚝딱하고 부른 배를 두드리고 있자니, 어린 시절 집안 어른과 함께 장터국밥을 먹던 추억이 새록새록 하다.

다시 국도를 따라 의령장으로 길을 향한다. 구불구불 국도가 이리 돌고 저리 돌며 길을 낸다. 살랑살랑 바람 좋은 봄날, 술친구들과 장터국밥 먹으러 가는 길. 이 길이 참으로 기껍고도 기껍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2. 2국감 출석 거부한 지광(국제신문 대주주)에 국회 ‘동행명령’(종합)
  3. 3가덕 공사비 2000억 증액 목표…市 ‘국비확보’ 국회 상주반 가동
  4. 4“인구 급증 강서, 교통혁신 필수…생곡소각장 대체부지 검토 건의”
  5. 5올해 딱 한 번 지고 66번 이겼다
  6. 6자갈치축제에 늘어선 바비큐·통닭…취지 두고 갑론을박
  7. 7지광, 신문을 사업 수단화…380억 땅 있으면서 102억 체불
  8. 8갈맷길 36코스로 전면 개편
  9. 9[국제칼럼]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10. 10양산도시철 시운전에 소음 민원 빗발…방음터널 설치 요구
  1. 1국감 출석 거부한 지광(국제신문 대주주)에 국회 ‘동행명령’(종합)
  2. 2시설공단 이사장 후보 자진사퇴…田 인사 첫 낙마
  3. 3중수청장 “한동훈 딸 의혹 규명 필요”(종합)
  4. 4지광, 국감 출석 거부…“해결의지 있다면서 책임 회피”(종합)
  5. 5주진우 "김혜경, 유명 프로골퍼와 황제골프" 민주 "황당무계 소설" (종합)
  6. 62심 무죄 오세훈, 장동혁·한동훈과 보수 재편 주도권 경쟁(종합)
  7. 7‘YS 영원한 오른팔’ 최형우 전 장관 별세…향년 91세(종합)
  8. 8전재수 "지광 스님에게 국제신문 정상화 촉구 서한문 보낼 것"
  9. 9막판까지 조희대·김현지 정국…쇼츠 경쟁 오명도
  10. 10[속보] 이 대통령 지지율 다시 하락해 35.3%…민주 36.0%·국힘 42.6%
  1. 1부산경실련 “산은 이전 없다는 금융위원장 발언 유감”
  2. 2전기료 밀린 홈플러스…한전 ‘단전 예고’(종합)
  3. 3“관광수익 주민에 환원해야 지역활력”…글로벌 20개 도시 리더들 한목소리
  4. 4음악 들으며 북항친수공원 걸어요
  5. 5[한 손 뉴스] S/W 실행 환경 ‘Node.js’, 서버 해킹 보안 취약 경고
  6. 6BNK금융 3분기 누적순익, 작년보다 19% 감소
  7. 7부산 온 세계 해사인 “안전·친환경 실천”
  8. 8국민은행 해킹 정보유출 119명→2210명 확대(종합)
  9. 9국내 위성기술로 인니 해양환경 관리역량 키운다
  10. 10부산신보 ‘민생안심 협약보증’ 한 달 만에 1000억 돌파
  1. 1가덕 공사비 2000억 증액 목표…市 ‘국비확보’ 국회 상주반 가동
  2. 2“인구 급증 강서, 교통혁신 필수…생곡소각장 대체부지 검토 건의”
  3. 3자갈치축제에 늘어선 바비큐·통닭…취지 두고 갑론을박
  4. 4지광, 신문을 사업 수단화…380억 땅 있으면서 102억 체불
  5. 5갈맷길 36코스로 전면 개편
  6. 6양산도시철 시운전에 소음 민원 빗발…방음터널 설치 요구
  7. 7관객 춤췄다고 영업정지 ‘오방가르드’ 두 달만에 재개장(종합)
  8. 8시민단체 ‘국제신문 지키기’ 연대 나섰다…부울경 넘어 수도권 언론도 조명
  9. 9日 주 20시간法 만들자 알바앱 급성장…편법 단기고용 판쳐
  10. 10철새도래지 길냥이 급식소 분쟁, 항소심도 “추가 설치 불허 적법”(종합)
  1. 1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2. 2올해 딱 한 번 지고 66번 이겼다
  3. 3똑똑한 ‘데이터 야구’와 수비 강화…개혁의 칼 뽑은 롯데
  4. 4차준환 계보 잇는 피겨 왕자 서민규
  5. 5김태형 결국 롯데 떠난다…구단 늑장대처 도마
  6. 6롯데자이언츠 새 사령탑 ‘NC 우승 감독’ 이동욱…단장에는 이택근 선임
  7. 7‘올림픽 3연패 주역·AG 金6’ 펜싱 구본길 칼 내려놓다
  8. 8불가능을 가능케…亞패러게임 5위
  9. 9은퇴 앞둔 최민정, 시작부터 금빛질주
  10. 10태풍 ‘참피’영향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1차전 취소
우리은행
한국문학관 기행
바람처럼 자유로운 김홍신 문학을 ‘건축언어’로 표현한 공간
최진숙의 유네스코 세계 유적지 이야기
보리수가 휘감아 지킨 불두, 몰락왕조 영광의 기억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일상 언어에서 찾은 삶의 방향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지나-마음
남인목-웃는 나무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설상수
경비원 /박필상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누적 180만 넘긴 ‘극장판 치이카와’ 2주 연속 정상…예매율도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7일 (음 9월 17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6일 (음 9월 16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지리산 연곡사를 찾아 시 읊은 매천 황현
겸재 정선은 금강산의 참모습을 어떻게 그렸을까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