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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49> 부산 노래 발전 시킨 김용만

‘만요’ 되살려 독재 풍자…부산공연 기념해 ‘잘 있거라 부산항’ 만들어

  • 이동순 가요평론가
  •  |   입력 : 2022-05-15 19:04:13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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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울분 노래한 ‘만요’
- 해방뒤 ‘회전의자’로 전통 계승
- 폭력에 시달리던 민중들 위로

- 서러운 이별 담은 ‘잘 있거라 …’
- 백금녀 생일 이벤트로 만든 곡
- 지역 빛깔 담은 대중가요 우뚝

1930년대 일제강점기 가요사에는 ‘만요(漫謠)’라는 장르가 있었다. 그 독특한 양식에는 정치·사회적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냉소와 세태풍자가 담겨 있어 울분이나 답답함에 대한 심리적 여과나 해소 기능을 했다. 가사와 음률에는 대중의 일정한 욕망이나 방향성이 담보돼 있었으며 표현 방식은 대개 웃음을 유발시키는 익살과 해학이었다. 억압과 통제 속 만요의 기능은 비록 제한된 공간이긴 하지만, 정신적 해방구의 역할로 살아있었으리라.

젊은 시절의 가수 김용만.
그런 점에서 만요는 빛나는 문화적 도구로서 생동했다. 만요의 제작과 생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대중음악인은 김해송 김용환 김정구 등이다. 전문적 작사가나 작곡가들도 활동했지만 이 셋은 직접 작사, 작곡뿐만 아니라 가창까지도 담당했던 싱어송라이터였다.

당시 대표적인 만요 작품으로는 ‘왕서방 연서’ ‘명랑한 부부’ ‘세상은 요지경’ ‘오빠는 풍각쟁이’ ‘엉터리 대학생’ ‘유쾌한 시골영감’ ‘전화일기’ ‘개고기 주사’ ‘모던 기생 점고’ ‘나무아미타불’ ‘낙화유수 호텔’ 등을 손꼽을 수 있다. 김해송과 김용환의 만요를 들어보면 서민적 체취가 물씬 풍겨나는 발성법으로 넉살과 여유가 흥건히 넘실거리는 가락과 정취를 경험하게 된다.

일제말 암흑기로 접어들면서 만요 또한 위축과 소멸의 늪으로 빠져 들었다. 이 만요가 다시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된 것은 해방 이후 1960년대 중반에 출현한 노래 ‘회전의자’(신봉승 작사·하기송 작곡· 김용만 노래)가 기점이 됐다.

광복 시기의 혼돈과 자유당 독재정권의 폭력성에 시달린 민중은 자연스럽게 지난날 만요의 위로와 풍자를 그리워하게 되었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 후기 만요가 출현하게 된다. 이 시기에 전반기 만요가 이룩했던 품격을 유지 계승시키며 새로운 만요의 전통을 수립해간 인물이 있으니 그가 김용만(金用萬·1933~ )이다. 그의 창법을 주의 깊게 귀기울여 보면 민요가락이 지니는 서민적 흥취를 느끼게 된다. 부드럽게 굴려가는 기교와 가창력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

잘 있거라 부산항 LP앨범 재킷.
서울 출생의 김용만은 일찍이 경기민요를 하던 부친의 활동에서 자연스런 감화를 받았다. 그가 부른 ‘장기타령’ ‘국산연초 아리랑’ ‘왕대포 인생’ 등의 노래에서는 굴림의 창법을 주조로 하는 만요의 리듬이 강렬하게 느껴진다. 민중적 삶과 감각성에 친근하게 다가가는 통합의 정서가 김용만 창법의 주조를 이룬다.

이런 배경 속에서 만요 ‘회전의자’가 출현했고 그 위력은 적중했다. 대중은 현실에서 성취하지 못한 욕망을 가창이라는 상상력의 공간 속에서 경험하고 성취할 수 있었다. 일단 후련하고 청량감을 갖도록 했다. ‘억울하면 출세를 하라’란 유행어가 나온 것도 이 노래 덕분이었다.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김용만은 지방공연, 극장 쇼 공연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냈다. 대중은 김용만의 만요에 대해 폭발적으로 환호했다. 특히 부산은 김용만의 중심무대 중 하나였다. 부산의 여러 극장 쇼에 출연하느라 1개월 이상 여관에 머무는 경우가 잦았다.

어느 날 저녁, 여러 출연진이 합숙하는 여관에서 조촐한 생일파티가 열렸다. 마침 그날이 코미디언 백금녀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김용만은 여러 동료와 함께 특별 이벤트를 준비했다. 그것은 부산 공연 중이니 부산을 기념하는 노래를 하나 만들어보자는 기획이었다. 여기에 적극 찬동하고 힘을 실어준 사람은 코미디언 배삼룡, 서영춘이다. 이제 며칠 뒤면 부산 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일정이라 정들었던 부산과도 아쉬운 작별이라 세 사람은 즉시 머리를 맞대고 가사를 다듬어 완성했다.

아, 잘 있거라 부산 항구야 / 미스 김도 잘 있어요 미스 리도 안녕히 / 온다는 기약이야 잊으랴마는 / 기다리는 순정만은 버리지 마라 버리지 마라 / 아, 또다시 찾아오마 부산 항구야 (‘잘 있거라 부산항’ 1절)

이 가사에 곡을 붙인 사람이 김용만이다. 흥겨움과 구성진 느낌, 곧 눈물이 날 것 같은 서러운 이별정서가 소절마다 흥건하다. 가사도 좋았지만 멋진 작곡과 배합을 이루니 폭발적 효과로 되살아났다.

이날 부산 중구의 한 여관방에서 열린 코미디언 백금녀의 생일파티는 이 노래 덕분에 광란의 상태가 되었다. 모두들 손뼉을 치며 ‘잘 있거라 부산항’을 합창으로 부르고 또 불렀다. 이 노래의 대중적 성공을 미리 예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김용만은 이 노래가사의 2절과 3절을 작사가 손로원 선생에게 부탁해서 완성했다. 1절에서는 부산 여인의 순정, 2절에서는 만날 때의 반가움, 3절에서는 재회의 약속과 다짐이 들어있다. 김용만은 ‘잘 있거라 부산항’을 동료가수 백야성에게 취입하도록 했다. 앨범 재킷에는 마도로스 복장을 갖춘 가수의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이후로 백야성은 ‘마도로스 가수’란 별명이 붙었다.

이 노래가 발표되자 부산시민은 열광했다. 어찌 이토록 아름답고도 슬픈 노래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부산항의 온갖 역사와 애환, 구구절절한 사연이 이 노래가 발단이 되어 쏟아지기 시작했다. 공연마다 관중의 앙코르 요청이 쏟아지고 방송 전파를 타면서 삽시간에 최고의 히트곡으로 떠올랐다.

김용만은 이 노래 외에도 ‘마도로스 도돔바’ ‘항구의 영번지’ ‘부산의 연정’ ‘부산 마도로스’ 등 부산 테마 노래를 다수 발표할 정도로 부산과 인연이 깊다.

‘잘 있거라 부산항’ 덕분에 부산 항구는 한층 분위기와 용모를 갖춘 세계적 미항(美港)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부산항에서 세계 여러 나라로 떠나는 이민선에서도 이 노래는 울려 퍼졌다. 부산항에서 수 없이 떠나고 돌아오는 원양어선들에서도 이 노래가 들려왔다. 미군수송선을 타고 부산항 제3부두에서 베트남으로 떠나는 참전병사들을 위해 부산의 여고생 연합합창단도 이 노래를 레퍼토리로 준비했다. 병사들은 울면서 함께 합창했다.

어디 그 뿐인가. 밤 깊은 부산 남포동, 광복동 거리거리의 술집마다 이 노래가 들려오곤 했다. 다른 나라로 떠나기 위해 부산 항구를 떠나는 순간 갑판에서 바라보는 부산항의 야경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황홀하다. 이러한 때 입에서는 저절로 ‘잘 있거라 부산항’이 흥얼거려진다.

이제 이 노래는 필수적인 부산 주제가 중의 하나로 확실히 자리매김을 했다. 한 도시의 총체적 개성과 빛깔을 담아내는 대중가요가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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