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국립 인간극장] <17> 갓 - 정춘모 기능보유자

머리 위에 올린 선비의 자존심 … ‘K-모자’ 기품에 세계인 감탄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조선시대 신분 나타내는 관모
- 장인은 하위관직 맞먹는 대우
- 단발령·신분제 폐지로 수요 ↓
- 산업화 시작되면서 자취 감춰

- 정 보유자 통영서 갓일 이어와
- 양태·총모·입자 세 가지 과정
- 반년이나 걸리는 인고의 작업
- 아내·아들과 분업으로 감내

- 사극으로 우수성 알려졌지만
- 플라스틱 사용 작품은 아쉬워

조선시대 선비들의 필수템 ‘갓’. 햇빛과 바람을 막는 용도로 사용되다 재료·형태·제작법이 다양해지면서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관모로 자리 잡았다. 양반들에게 갓은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던 셈. 갓은 전립(무관이 쓰던 모자)이나 패랭이(천인들이 쓰는 모자)처럼 종류가 다양하다. 양반들이 외출할 때 쓴 것은 검은 흑립이다. 지난 8일 취재팀은 경남 통영의 삼도수군통제영 12공방에서 갓일(국가무형문화재 4호) 정춘모(83) 기능보유자를 만났다.
갓일 작업 중인 도국희(왼쪽) 이수자와 정춘모 보유자. 이우정PD
“갓 만드는 과정을 ‘갓일’이라고 합니다. 여러 사람이 다 같이 만든다는 의미가 담겨있죠.” 정 보유자는 대나무로 만든 검은 갓을 보여주면서 갓일 과정을 전했다. “조선시대 장인들은 하위 관직에 버금가는 기술자 대우를 받았어요. 선비들의 필수품인데 제작이 매우 까다로워 아무나 못 만들기 때문이죠. 그 당시 조정에서는 통영 갓을 대량으로 사들일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았습니다.”

갓일은 ▷총모자( 머리에 쓰는 원통 부분)를 만드는 총모자일 ▷양태(갓의 챙 부분)를 만드는 양태일 ▷양태와 총모자를 결합하는 입자일로 나뉜다. “총모자장·양태장·입자장이 3가지 과정을 나눠 맡습니다. 장인의 숙련도에 따라 작업 시간과 품질이 천차만별입니다. 보통 갓 하나 만드는데 반 년 이상 인고의 시간이 필요해요.”

정춘모 보유자가 만든 흑립(黑笠).
정 보유자의 아내인 도국희(67) 씨도 양태장 이수자다. 남편 일을 돕다가 양태일을 배웠다. 그가 갓의 챙 만드는 과정을 선보였다. 먼저 홀가죽을 오른쪽 무릎에 끼고 물에 삶은 대나무 피죽을 무릎에 올린다. “피죽을 홀가죽에 대고 대칼(대나무 칼)로 긁으면서 당겨요. 피죽을 종이처럼 얇게 만드는 거죠.” 이어 두 뼘 정도의 칼로 피죽의 끝부분에 금을 내더니 설주판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피죽을 문지른다. “얇은 피죽을 실처럼 가늘게 뽑아내야 합니다. 칼로 금을 낸 피죽을 설주판에 대고 문지르면서 머리카락처럼 가는 죽사(竹絲)를 만드는 거죠. 죽사는 서로 꼬이지 않게 한 가닥 한 가닥 빗으며 정리해야 합니다.” 바농대(끝이 고리처럼 휘어진 바늘)와 머럭(대나무 바늘)을 이용해 죽사를 대각선으로 엮는다. “죽사를 엮는 과정이 끝나면 먹칠을 한 다음 둥근 틀 위에다 올려 인두로 지져요. 양태에 완만한 곡선을 만드는 과정인데 ‘트집 잡기’라고 합니다. 트집 잡기가 끝나면 양태에 명주 천을 씌우고 인두로 지져 고정한 뒤 다시 먹칠을 합니다. 매우 미세한 과정이라 눈도 아프고 손도 떨릴 정도로 고됩니다. 갓일 중에 제일 어려운 게 양태일이에요.”

정 보유자의 아들 정한수(43) 전승교육사는 총모자일을 보여줬다. 먼저 둥근 원통 틀에 죽사를 이어 붙여 모양을 잡았다. 한 올씩 일일이 붙여줘야 해서 난도가 높다. 다음은 갓 뚜껑을 덮는 작업. 천을 올리고 그 위에 네쪽무늬(총모자의 맨 위에 올라가는 4개의 천 조각)를 붙인 다음 먹칠을 한다. 마지막으로 네쪽무늬를 붙인 모서리에 못태(대죽을 굵게 자른 것)를 이어 붙인 뒤 먹칠하면 총모자일이 끝난다.

이제 총모자와 양태를 결합하는 입자일 차례. 정 보유자는 아내와 아들이 만든 양태와 총모자를 겹쳐서 하나로 합친다. “양태 구멍에 총모자를 넣는데 다 넣지 않고 갓끈 구멍을 뚫을  부분을 남겨놔요. 어느 정도 위치를 맞추면 인두로 고정을 해줍니다. 갓끈을 넣을 구멍을 양쪽에 뚫고 마지막으로 끈을 달면 드디어 갓이 완성됩니다.”

갓이 사용되기 시작한 건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에서 갓이 쓰이기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7세기 고구려 ‘감신총 벽화’에 보면 갓을 쓰고 사냥하는 장면을 볼 수 있어요. 삼국유사에 ‘신라 원성왕이 꿈에 복두(頭·각이 지고 위가 평평한 관모)를 벗고 소립(素笠·흰 빛깔의 갓)을 썼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공민왕이 갓 착용에 대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면서 거의 모든 양인이 쓰기 시작했죠.”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갓은 그 종류가 훨씬 다양해졌다. 정 보유자는 “갓 중에서도 최고라 하는 진사립은 만드는 데만 1년이 걸려요. 갓에 명주실을 촘촘히 덧대는 게 특징인데 주로 왕과 고위층이 애용했죠. 이 밖에도 베와 모시로 감싼 포립, 육품 이상의 관리만 사용한 음양립(양태에 실을 감싼 것) 등 신분과 직위에 따라 다양합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조선 후기 단발령과 신분제 폐지로 갓의 수요는 점차 줄어들었다. 이후 한국전쟁을 거쳐 산업화가 시작되자 갓은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된다. “우여곡절이 참 많은 게 갓입니다. 필수품으로 사용되다 일제 강점기에 단발령을 명목으로 상투를 다 잘라버리니 갓 수요가 줄었죠. 산업화 이후에는 갓의 필요성이 없어지니까 자연스럽게 도태됐습니다.”

그가 갓일을 해온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제가 경북 예천에 살다가 대구에서 일을 했어요. 대구 도매상 가운데 통영에서 갓일 하셨던 장인 대여섯 분이 계셨어요. 당시 그 장인분들이 은퇴할 나이가 다 되어 가는데 나 말고는 배우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나 혼자 총모자일·양태일·입자일을 모두 배웠어요. 반 년 넘게 걸리는 일을 혼자 하려니 정말 고통스러웠어요. 그러다 아내에게 조금씩 도움을 받았죠. 내 옆에서 일을 돕던 아내가 지금은 양태장 이수자가 됐습니다.”

정 보유자는 “통영에 와서 이 일을 할 때 정말 괴로운 시간들이었지만 부인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면서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어 “아들도 제 옆에서 일을 돕더니 지금은 전승교육사가 됐다”고 덧붙였다. 온 가족이 갓일을 위해 인생을 바친 셈이다. 

생활필수품에서 문화재처럼 변해버린 갓은 현대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 “이제 갓을 찾는 사람도 거의 없고 전통 예능인 몇 분만이 갓을 찾고 있어요. 실제 갓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데 드라마나 사극에서는 3~4만 원짜리 플라스틱 갓을 쓰기 때문에 수요가 없죠.문화재청이나 지자체에서 일부 지원을 해주지만 생계를 이어나가기 곤란한 순간이 꽤 있었습니다.”

정 보유자는 “다만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 같은 사극을 통해 세계에 갓이 알려지게 돼 기뻐요. 현대에 와서 갓은 우리 문화의 고유함과 우수성을 알리는 수단이 된 것 같아요”라며 현대사회에서 갓이 가지는 의미를 강조했다. “재작년에는 ‘예올’이라는 문화재청 산하 법인과 갓을 활용한 전등을 만들기도 했어요. 현대인들을 위한 새로운 시도였죠. 올해는 제작하지 않지만 앞으로도 갓을 활용한 다양한 시도를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홀로 갓일의 모든 과정을 감내해 온 정 보유자, 그에게 갓은 어떤 의미일까. “처음 갓일을 이어 온 과정은 힘든 시간이었지만 도망칠 생각은 없었습니다. 갓일을 잇자는 마음 하나로 지금까지 온 제 자신과 우리 가족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문화의 우수한 가치를 알리는데 갓일 보유자로서 역할을 다 하고 싶습니다.”

※ 제작지원 BNK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니가 치면 나도 친다…프로야구 막판에 안타왕 쟁탈전
  2. 2양산선 개통 코앞인데…인력 충원 없다
  3. 3조경태, 9일 봉하마을서 盧 참배…與 사하을 기초의원들 “복당 반대”
  4. 4전재수 “2028년 G20 정상회의 유치 도전”(종합)
  5. 5부산 복덩이 ‘부캉이’ 대선소주 모델됐다(종합)
  6. 6성장이냐 쇠퇴냐…부산이란 도시 운명은 이것에 달렸다
  7. 7동백전 캐시백 상향해 상권 온기…부산형 청년사다리 박차
  8. 8골목길 외국어로만 채운 간판 15개…위법입니다
  9. 9부산 기관장 후보 김태호·김명수, 시의회 인사청문서 부적격 판정(종합)
  10. 10부산이 대륙 끝? 지도 돌려보면 북극항로 시작점
  1. 1조경태, 9일 봉하마을서 盧 참배…與 사하을 기초의원들 “복당 반대”
  2. 2부산 기관장 후보 김태호·김명수, 시의회 인사청문서 부적격 판정(종합)
  3. 3김희정 의원 ‘대주주 회생동의 촉구’ 국제신문 농성장 찾아 응원
  4. 4“여야 협치로 市 조직개편·추경 성과…다음은 민생·PK 초광역”
  5. 5박형준, 퇴임 후 첫 공개 행보… 총선엔 “아직 생각 없다”
  6. 6부산시의회, 교통공사·시설공단 대표 후보 ‘부적격’ 의견
  7. 7인천 해수욕장서 北유실지뢰 54일만에 또 발견.. "안전 유의"
  8. 8‘빈총경계’ 前 1군단장, 국감장서 “대비태세 문제 없었다” 주장
  9. 9[속보] 진영승 합참의장 “MDL 지뢰 폭발 사건은 ‘도발’…北 정권 행위 강력 규탄”
  10. 10암살자(들)·北 지뢰 여야 충돌…JYP ‘K-팝 축제 특혜’ 반박(종합)
  1. 1부산 복덩이 ‘부캉이’ 대선소주 모델됐다(종합)
  2. 2산은 회장 “통합 LCC 본사 부산행 결정 땐 적극 지원”
  3. 3전재수 “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조속 통과…소급적용도 추진”
  4. 4부산 찾은 외국인 올 1~8월 343만 명 돌파…프랑스 관광객 작년보다 111%↑
  5. 5[뉴스 분석] 수도권, 가덕신공항 또 트집…국책사업 발목 자성 촉구 목소리(종합)
  6. 6태웅, 1년 갈등 ‘봉합’…노사정 상생협약 체결
  7. 7부산항 오는 배 위치 실시간 확인
  8. 8지자체 ‘비상금’ 3년새 반토막…국고사업 매칭비는 23% 늘어(종합)
  9. 9[증시와이드] 실적 유지·턴어라운드 종목 선별 접근을
  10. 10“AI 해킹범은 中 광둥성 26세” 글로벌보안기업 보고서 추정(종합)
  1. 1양산선 개통 코앞인데…인력 충원 없다
  2. 2전재수 “2028년 G20 정상회의 유치 도전”(종합)
  3. 3동백전 캐시백 상향해 상권 온기…부산형 청년사다리 박차
  4. 4골목길 외국어로만 채운 간판 15개…위법입니다
  5. 5김척수 구청장 후보자 수사 7개월째 표류
  6. 6특혜 논란에도…엘시티 투자이민제 13년 실적 고작 2건
  7. 7“크루즈 관광객 동선, 부산항서 이바구길까지 넓힐 것”
  8. 8박완수, 우주항공·SMR 기반 메가 특구 공들여
  9. 9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9일
  10. 10부산 동백중 교사와 학생 “우리는 와플처럼 달콤한 사이”
  1. 1니가 치면 나도 친다…프로야구 막판에 안타왕 쟁탈전
  2. 2AG 4개의 金 호령한 바다의 왕자…“다음은 올림픽 포디움”
  3. 3막 오른 ‘HJ중공업·동부건설 챔피언십’…최예본·한아름 공동 선두
  4. 4“핸드볼 8년 만의 아시안게임 金…맏언니로서 기뻐”
  5. 5하현승, 계약금 16억에 키움 입단
  6. 6SON A매치 최다골 대기록에도…뒤숭숭한 韓축구
  7. 7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8. 8롯데, KIA에 4-12 패…8회 7실점 ‘와르르’
  9. 9롯데, 6위 탈환 사활…3위 싸움 변수로
  10. 10조코비치, 올 첫 우승 눈앞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스타 만나려면 첫 3일·여유롭게 영화 즐기려면 둘째주 공략
얼굴에 담긴 이야기
코 성형과 마음 성형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쉽게 따라 배우는 걷기명상 外
약학박사 연륜이 깃든 시조집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김지효-우리
박세연-Find Your Brave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자화상 /최은지
기다림의 미학 /윤종순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역사 왜곡 논란에도 ‘암살자(들)’ 정상…애니 ‘극장판 치이카와’ 예매 1위
추석 연휴 ‘암살자(들)’ 정상…2위 ‘타짜: 벨제붑의 노래’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8일 (음 8월 28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7일 (음 8월 27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주말의 BIFF- 2026년 10월 9~11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8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아름답게 억새 핀 모습 읊은 조선 중기 문신 이정형
조선 중기 문신 택당 이식이 가을의 찬 기운을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