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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58> 경남 옛 쇠전 소고기국밥 (하)

의령 노포 구들방 들어앉은 국솥 … 합천 국밥 고기 눈녹듯 입안서 살살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5-24 18:54:13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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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령 국밥

- 소싸움 고장 의령 소시장도 커
- 큰 가마솥 구들방 화덕에 걸고
- 긴 청동국자로 토렴해 내던 국밥
- 덩어리 고기 뭉텅뭉텅 든든한 맛

# 합천 삼가 국밥

- 삼가장엔 국밥보단 구이집 많아
- ‘따로국밥’으로 나오는 합천국밥
- 의령과 달리 잘게 토막낸 고기
- 으스러질 듯 씹히는 연한 맛 일품

경남 함안에서 의령으로 가는 국도는 싱그럽다. 산들바람도, 햇볕조차 싱그럽다. 남강 정암교를 건너니 바로 의령군 읍내다.
종로식당의 곰탕.
큰 장시(場市)가 서는 곳은 쇠전도 크게 선다. 큰 쇠전이 있는 장시는 현금 거래도 많아 모든 것이 풍부하고 흥청망청 인심도 후했다.

“어느 장시든 쇠전골은 장터 맨 안쪽에 있었는데 그곳은 온종일 사람들로 북적였어요. 특히 쇠전골 주막에는 소를 판 사람도 소를 산 사람도, 소 팔아서 한 잔하고 소를 샀다고 한 잔 마시며 장터국밥 한 그릇씩 하는 거예요. 소간이나 천렵 등으로 술안주 삼기도 하고요.” 민속학자인 주경업 선생의 말이다.

“쇠전골 안에서 천막 치고 국밥을 말아주는 집은 대부분 돼지국밥을 팔았어요. 소고기국밥은 비싸다 보니 그래도 식당을 겸하는 집안에서 대접받듯 먹곤 했지요. 커다란 가마솥을 방 안 구들 옆 화덕에 걸어놓고 주인장이 기다란 청동 국자로 한 그릇씩 토렴해 손님들에게 먹이곤 했습니다.”

의령 또한 우시장이 큰데다 전통적으로 민속 소싸움도 열리는 소의 고장. 의령장 뒤편 의령군청 인근 골목에는 의령 한우로 소고기 국밥을 끓여내는 장터국밥 골목이 있다. 이곳 국밥 집 대부분이 60, 70년이 훌쩍 넘어가는 노포(老鋪)들이다. 한국전쟁 전후로 장터에서 국밥을 말아왔는데, 모두가 큼지막한 가마솥에서 푹 끓여내 국물이 진하고 얼큰한 맛이 특징이다.

큰 가마솥 앞에 소고기국밥이 놓여있다.
그 중 종로식당은 1940년대 후반부터 의령 오일장에서 국밥 장사를 시작했다. 남해고속도로 건설이 한창일 때는 순시를 나온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 집 국밥을 먹고 갔고, 전두환 전 대통령도 고향 합천에 들를 때마다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이 집 국밥을 ‘대통령 국밥’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집 상호에 관한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사회 전반의 질서가 잡힐 무렵, 읍사무소에서 ‘국밥집을 계속하려면 영업 신고를 하라’고 통지가 왔다. 영업 신고를 하려니 정작 상호조차 없던 상황. 읍장이 “예를 들어 ‘종로식당’이라든지 이런 식으로 지으면 됩니다”고 알려주었는데, 주인장인 고 이봉순 할머니가 그대로 ‘종로식당’이라 상호를 써낸 것이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의령 소고기 국밥 집은 대부분 가마솥이 방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때 1대 할머니들이 뜨뜻한 구들방 가마솥 앞에서 한 그릇, 두 그릇 주문에 따라 따끈하게 소고기국밥을 말아냈단다. 지금은 2대, 3대가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의령 소고기 국밥이 뚝배기에 한 그릇 그득하게 담겨 나온다. 소고기 콩나물 무 대파로만 국을 끓여냈는데도 국물이 시원하면서도 진하기 이를 데 없다. 소고기가 뭉텅뭉텅 큰 덩어리로 들어가 있는데, 아마도 덩어리 고기가 진한 국 맛을 내는 것 같다. 무와 콩나물이 내는 시원한 맛과도 조화롭다.

고기를 한 점 씹어먹어 본다. 덩어리 고기인데도 연하고 부드럽다. 뒤 끝에 단맛이 기분 좋게 감돈다. 김치와 함께 먹어본다. 경상도 시골 김치 특유의 짭짤한 맛이 뒤따른다. 국밥 서너 술 떠먹고 김치 한 점 먹으니 입 안이 개운해진다.

종로식당은 소고기 국밥과 더불어 곰탕도 낸다. 점심시간에만 한정해 입에 쩍쩍 달라붙는 뽀얀 국물의 곰탕을 맛볼 수 있다. 소고기 편육이 수북하게 들어가 있는데, 소금에 살짝 찍어 먹으면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하고 진한 맛의 소고기 수육을 맛볼 수 있다.

그 옆의 수정식당은 현지인이 추천하는 70년 세월의 소고기 국밥 집으로, 3대에 걸쳐 예전 장터국밥 맛 그대로 말아내고 있다. 새벽부터 사골과 소고기를 넣고 반나절 가까이 끓여낸 진한 육수에 밥을 말아 제공하고 있다.

합천 삼가 소고기국밥.
합천군 ‘삼가면’은 공기가 맑고 주변 산지가 잘 형성되어 오래전부터 소를 많이 키웠다. 특히 삼가장은 미곡장과 우시장이 크게 섰었기에 식육식당이 많았다. 이런 이유로 장터국밥이 자연스럽게 발달하여 소고기 국밥은 장터를 찾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먹거리이다.

지금도 삼가장 곳곳의 식육식당에는 한 곳에선 소고기를 직접 잡아 정육으로 팔고, 다른 한 곳에선 소고기 구이와 장터국밥을 제공하고 있다.특히 황토를 먹여 한우를 사육하기에 고기 맛과 영양성분이 좋아 외지인들에게도 큰 인기다.

그러나 삼가장은 함안·의령장과 달리 한우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거리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 1987년 대가식육식당이 정육한 소고기를 직접 구워 먹을 수 있게 하면서 이러한 식당이 하나둘 늘어난 것. 현재 약 20여 개의 한우식당이 상품의 한우를 싸게 제공하고 있다.

장날을 맞아 삼가장 일대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곳곳의 한우 고기집들은 자리가 없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바쁜 시간에는 소고기 국밥을 팔지 않는 곳이 많다. 몇몇 식당을 돌아 어렵사리 점심으로 소고기 국밥을 시켰다.

얼마지 않아 국밥이 상에 오른다. 국과 밥이 따로 나오는 ‘따로국밥’ 형태다. 소고기국은 뚝배기에서 파르르 끓어대고 있다. 가마솥에서 따로 들어내 뚝배기에서 다시 한번 끓여내는 것 같다.

국을 휘저어 보니 콩나물과 무 파 등과 함께 토란 줄기도 들어가 있다. 언뜻 보면 육개장 느낌이다. 국물이 진하면서도 슴슴하다. 그래서인지 계속 떠먹으니 개운하다. 함안, 의령과는 달리 뭉텅이 고기가 아닌 자잘하게 토막 낸 고기들이 제법 많은 양으로 들어가 있다. 아마도 소고기를 부위 별로 정형하면서 남은 고기를 챙겨두었다가 아낌없이 넣고 끓여내는 듯하다.

소고기 한 점 씹으니 부드럽다. 이가 부실한 사람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살살 으스러지듯 씹힌다. 그리고 고소함이 입 안을 감돈다. 뜨끈한 소고기국에 밥을 만다. 그리고 깻잎장아찌를 국밥에 올려 먹는다. 구수한 국밥에 짭조름한 깻잎장아찌가 잘 어우러진다. 이렇게 허벅허벅 금세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만다.

든든한 하루 세끼의 경남 옛 쇠전 소고기 국밥 기행. 그것도 좋은 친구들과의 여행이라 여유롭고도 흔쾌하다. 길을 가다 우연히 들른 은진 송씨 종택에서 맛본 종가 술 ‘고가 약주’와 손두부 또한 가히 선비놀음의 제일 윗자리 일미였다.

아! 또 하나. 저물 무렵 친구 시골집 가마솥에서 소나무 화목으로 푹 끓여낸 고기 수육도 근래에 들어 가장 기꺼운 음식이었다. 이렇게 좋은 동행과 좋은 음식, 세월을 따라 휘돌아 드는 넉넉한 시간이 참으로 좋다. 멀리 개 짖는 시골집 푸른 밤하늘이 서서히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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