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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익진의 무비셰프 <34> 탕웨이(湯唯)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높은 중화권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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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탕웨이가 왜 이제 생각났을까.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많이 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뭐였을까. ‘황금시대’(허안화 감독· 2014)였을까. 부산 영상위원회가 내는 ‘영화부산’이란 영화 잡지에 원고 청탁을 받아 영화 리뷰를 쓴 적이 있다. 그때 리뷰 대상 영화가 ‘황금시대’ 였다. 1930년대 정치 격변기의 중국, 오직 글을 쓸 수 있기만을 원했던 천재 작가 샤오홍(蕭紅)의 생애를 담아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허안화가 감독을, 탕웨이가 주연을 맡았다. 필자가 썼던 영화 리뷰의 몇 대목을 발췌해 다시 살펴본다.(부분 수정)

설효로 감독이 연출한 2016년 중국 영화 ‘북 오브 러브’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탕웨이 모습. ‘우리가 아는’ 탕웨이의 고혹적이고 우아한 이미지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1.

영화가 시작되고, 처음에는 샤오홍이 탕웨이인 줄 몰랐다. 영화 ‘색, 계’와 ‘만추’에서 느낀 섹슈얼하고 성숙한 여인 분위기와는 달랐다. 너무 얼굴이 갸름해져서였을까. 영화 줄거리만 미리 읽었을 뿐 출연진은 미처 보지 못했다. 탕웨이가 어려 보였고, 순수한 모습이었다. 영화 초반 샤오홍의 집안 배경 이야기가 나왔을 때, 프랑스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이 생각났다.

시대를 앞서가는 사상은 어느 시대건 힘겹다. 특히 전통적 보수 성향 집안에서 아버지의 사상이나 가치관에 반기를 드는 것은 배반이고 반역이다. 순종해야 한다. 샤오홍이나 카미유 클로델, 나혜석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에게서조차 버림받게 된다. 불행의 첫 단추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작품이다.

‘황금시대’(허안화 감독· 2014)에서 불꽃처럼 살다 비운에 속에 사라진 중국 여성 작가 샤오홍을 연기하는 탕웨이(가운데).
2.

영화는 샤오홍의 ‘황금시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잠시 샤오홍이 일본에 거주하며 새장 속에 갇혀 작품을 쓰고 있을 때, 내 인생의 황금시대였다고 회상한다. 작가로서 위치가 굳건해지고 안정된 생활 분위기 속에서 모든 작가가 염원하는 그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따뜻한 배려 속에서 샤오홍이 그들 가족과 함께 지낼 때, 그녀의 행복한 미소를 많이 볼 수 있었다.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루쉰 앞에 서서 샤오홍이 말한다. “제 옷이 예쁘죠?” 루쉰은 윗옷과 치마 색깔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빨간 윗옷에는 검은 치마가 어울린다고, 다정하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대부분 남자는 여자가 옷을 어울리냐고 물었을 때 패션쇼가 아닌 이상 예쁘다고 이야기해준다. 루쉰의 작가적인 정직함을 보여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것들은 루쉰에 대한 오마주로서, 중국이 얼마나 루쉰을 사랑하는지 담담한 문체로 보여준다. 루쉰이 운명하는 장면에서 나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는데, 아마 그에 대한 존경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3.

작가라는 종족은 불행한 가운데에서도 글을 쓴다. 글쓰기가 행복이고 구원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아무런 신경을 쓸 게 없는 안정된 분위기에서도 글을 쓰고, 불행을 견디기 위해서도 쓴다. 무조건 무작정 써야 한다. 그래야 작가다. 병들어 죽을 때까지 써야 작가다. 프랑스 영화 ‘몰리에르’에서 배우이자 극작가인 몰리에르는 자기 연극에 스스로 출현하여 연기하는 도중 무대 위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져 결국 죽는다.

샤오홍 역시 모진 병마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고 글을 쓴다. 주인공이 창백한 낯빛을 하고 담배를 피우며 글을 쓰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는 결국 샤오홍이 31세란 찬란한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한다.



4.

영화는 천재 작가 샤오홍의 면모를 아주 따뜻한 품성을 가진 작가(여성)로 묘사한다. 그녀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에게 배려와 인내심을 발휘하고, 심지어 연인 샤우쥔과 결별 장면에서도 단호하게 헤어지자고 말하지만 표독하거나 독살스럽지는 않았다. 샤오홍을 탁월하게 연기한 탕웨이 덕분인지 실제 샤오홍의 성격이 그러한지 알 수 없지만, 그것 때문에 더욱 감동이었다.

‘알랭의 행복론’을 인용한다. “불행해지고 불만스러워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즐겁게 해주길 기다리는 왕자처럼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행복하게 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 분명한 것은 행복해지길 원치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자기가 행복해지길 원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리안 감독의 2007년 영화 ‘색, 계’ 속의 탕웨이. 이 영화에서 탕웨이는 세계 영화팬에게 배우로서 자신의 탄생과 출발을 충격적으로 알렸다.


탕웨이(湯唯·979년생)는 중국의 배우이다. 2004년 중앙희극학원을 연출과를 졸업했다. 같은 해 미스 월드 베이징 대회에 나간다. 이후 리안 감독의 ‘색, 계’(2007년 개봉) 오디션에서 약 1만 명 중에서 주연으로 캐스팅된다. 정보부 대장 ‘이’(양조위 분)를 암살하려는 여자 스파이 ‘왕치아즈 역’을 연기한다. 탕웨이의 파격적인 연기는 큰 화제가 된다. 이 작품이 제64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탕웨이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했다. 대만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제44회 대만 금마상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받는다.

2008년 탕웨이가 출연하는 텔레비전 광고가 중국 당국의 지시로 방영 금지되었다. 당시 중국에서 ‘색, 계’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농도 짙은 정사 장면과 일제의 침략 시기 상하이 친일정부와 변절자 미화가 논란의 핵심이었다. 탕웨이는 홍콩 정부의 우수 인재 영입계획에 따라 홍콩 영주권을 취득했다.

2009년 11월, 한국 영화 ‘만추’ 리메이크판(김태용 감독)에서 수감된 지 7년 만에 특별 휴가를 나온 여자 ‘애나’ 역을 맡는다. 상대역 현빈과 미국 시애틀에서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했다. 오리지널은 이만희 감독의 1966년 영화 ‘만추’이다. ‘만추’는 큰 상처로 마음을 닫은 여자 애나와 그 여자가 만난 선물 같은 남자, 훈의 이야기다. 애나(탕웨이 분)는 미국에서 남편을 죽인 죄로 7년째 복역 중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사흘간 장례식 참석을 허락받는다. 교도소 문을 나서는 탕웨이의 모습은 빗물에 젖은 낙엽 같다. 회색빛이 감돌고 안개가 피어나는 그런 칙칙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영상미가 돋보인다.

김태용 감독의 2008년 영화 ‘만추’에서 주연을 맡은 탕웨이 모습. 마치 영화 ‘만추’에 맞춰 또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 듯한 새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김태용 감독의 섬세함이 느껴졌다. 이 영화는 서정적인 영상에 잔잔한 감성을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저 멀리 애잔한 불빛을 한참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떠오른다. 미국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국적(한국과 중국)의 남녀가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하며 제한된 시간 내에 사랑에 빠지는 상황이 긴장감을 준다. 깜짝 등장하는 한국어와 중국어 대사도 재미있었다.

배역상으로 제비족으로 등장하는 현빈의 모습보다는 말 못 할 슬픔과 고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죄수 탕웨이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는다. 영화 내내 탕웨이가 매우 아름답게 포착된다. 표정이나 감정 표현에 대해 김태용 감독은 특별히 많은 주문을 하지 않았고 배우에게 많이 맡겼다고 전한다.

탕웨이는 ‘만추’ 개봉 뒤, 삼성전자와 코오롱 스포츠 등 한국 광고에 출연한다. 2012년 제17회 부산 국제영화제(BIFF)에서 배우 안성기와 개막식 사회를 맡는 등 탕웨이는 날개를 단 듯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중화권 스타로 자리매김한다.

탕웨이가 워낙 유명해서 그런 걸까. 그의 영화를 많이 본 듯한데 사실 몇 작품 안 된다. ‘북 오브 러브’(설효로 감독·중국·2016)를 보았다. 탕웨이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 영화다. 상큼발랄한 이미지가 돋보였다. 제목에서도 예상할 수 있듯 책이 인연이 되어 사랑을 찾게 된다는 이야기다. 책 한 권이 빌미가 되어 생판 알지도 못 한 사람들끼리 서로 책을 되돌려주는 과정에서 간단하게 사연을 동봉한 것인데 나중에 서로 편지를 주고받게 되는 사이로 발전한다.

매개가 된 그 책의 제목은 ‘채링크로스 84번지’이다. 미국 작가 헬렌 한프와 영국 서점 주인 프랭크 도엘이 20년간 편지를 주고받은 것을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었다. 이 책은 그들의 편지를 모아서 출판한 것이다. 책을 통한 인간적 교감이라는 영화의 설정이 괜찮아 보인다. 탕웨이가 막 웃고 큰 소리로 말하고 톡톡 튀는 이미지여서 좀 색달랐다. ‘만추’의 회색빛 뒷모습과 달라서 그런지 영화 속 탕웨이도 사랑을 갈구하는 보통 여자로 다가왔다. 젊은 나이에 몇 번쯤 사랑의 기회를 맞이해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고민하는 모습으로 공감을 자아낸다.

이 영화는 편지의 가치를 잘 대변한다. 질투는 힘이 세다고 어느 시인이 말했지만, 편지는 정말 힘이 세다. 일본 영화 ‘러브레터’만 봐도 편지가 사람 마음을 얼마나 크게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

탕웨이 주연 영화 ‘북 오브 러브’ 포스터.
의사 전달 수단으로서 편지는 요즘 거의 무용지물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손편지는 보낸 이의 손글씨가 그대로 드러나고 실시간으로 대화가 불가능한 대신 인간의 감성을 깊이 담을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편지의 속성을 잘 나타내는 말로 천리면목(千里面目)이 있다. 천리 밖에서도 얼굴 보는 듯하다는 뜻이다. 지금은 잘 쓰이지 않지만, 순우리말로 ‘글월’이라 하기도 한다. “친애하는 당신에게 글월을 올립니다”는 표현이 있다. 영화 ‘북 오브 러브’에서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다가 사랑에 빠지면 어쩌죠?” “가장 힘든 순간에 당신이 떠올랐어요. 당신, 대체 누구죠?” 이런 대사들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 ‘색, 계’(2007년 Lust, Caution, 色,戒)에서 탕웨이를 처음 봤다. 당연하다. 탕웨이의 데뷔작이니까. 탕웨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폭발할듯한 도발적인 매력을 마음껏 발산했다. 워낙 많이 말려진 영화라 이 지면에서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지만, 몇 가지 언급해본다. 제목 ‘색, 계’는 불교와 관련된 용어라 그런지 사전을 봐도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사전의 풀이를 그대로 옮기면, 아래와 같다.

1. 색계(色界)에서 색(色)은 물질을 뜻한다. 불교에서 물질은 변괴성(變壞性)과 대애성(對애性)을 가진 법, 즉, 변하고 허물어지는 성질[變壞性]과 공간을 점유하고 있을 때 동일 유형의 다른 사물이 그 공간을 점유하는 것을 장애하는 성질[對애性]을 가진 사물이라고 정의된다. 대애성은 질애성(質애性)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문자 그대로 뜻으로는 색계는 물질[色]로 이루어진 세계를 뜻한다. 그런데 3계 가운데 욕계도 물질[色]로 이루어진 세계, 이런 점에서 색계와 욕계를 구분할 경우 색계는 욕계의 물질보다 더 정묘한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 즉 기세간(器世間)과 이러한 정묘한 물질로 이루어진 소의신을 가지고서 이 세계에서 거주하고 있는 유정들을 통칭한다.

2. 여색의 세계.

3. (불교) 삼계의 하나. 욕계에서는 벗어났으나 탐욕이 조금 남아 있어 색심을 벗지 못한 세계.

2022년 6월 제75회 칸 영화제 현장의 배우 탕웨이. 탕웨이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헤어질 결심’은 이 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에게 감독상을 안겼다.
탕웨이의 2022년 최근작 ‘헤어질 결심’(박찬욱 감독)이 현재 우리나라의 영화계에 최대 화제작으로 급부상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6월 29일 개봉 예정이다. ‘아가씨’ 뒤로 6년 만에 나오는 박찬욱 감독의 11번째 장편영화다.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박해일 분)가 사망자의 아내(탕웨이 분)를 만난 뒤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제75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으로, 황금종려상 수상이 거론되었으나 감독상을 받았다.

‘헤어질 결심’을 포함해 네 차례나 칸 경쟁 부문에 진출한 박찬욱 감독은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월드프리미어 뒤 터져 나온 8분여 동안의 기립박수에 감격했다. “이렇게 올드하고 지루한 영화를 봐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박 감독이 겸양의 인사를 건넸다고 언론 보도는 전했다.

<추신>

탕웨이라는 이름에서 고탄력성이 느껴져서일까. 잘 잊히지 않는 이름이다. 어느 시인의 시에서 장만옥이라는 이름을 거론하며 장만옥의 ‘만’에서 중국식 야끼만두 냄새가 난다고 언급했듯이, 탕웨이의 탕에서는 중국식 탕수육이 떠오른다. 만약에, 만약에 탕웨이라는 이름을 가진 요리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조리법은 어떠하고 그 요리의 재료는 무엇일까 자못 궁금해진다. 정익진 시인 ij07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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