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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33> 정훈 시집 ‘새들반점’

대청동 반점·부평시장 들목…부산 풍경들이 건네는 다정한 인사

  •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6-26 19:33:24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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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가 활동하며 첫 시집 출간
- 유년기 가정형편 탓 부산 정착
- “원도심 모습과 사람들 이야기
- 힘 빼고 느낀 것 그대로 담아”

‘다음 중 이 시집에 등장하지 않는 부산의 지명은 무엇인가요?’라는 독서퀴즈를 내고 싶은 시집을 만났다. 정훈의 시집 ‘새들반점’이다. 부산 중구 가톨릭센터 인근 새들맨션 일층에 있는 중국 음식점 이름인데 86번 시내버스를 타고 지나다닐 때 많이 봤던 그 새들반점이다. 궁금해서 확인도 해봤다. 어떤 시가 실려 있는지 궁금증이 와락 일어났다. 평론가로만 만났던 정훈 씨가 시집을 낸 이유보다 그것이 더 궁금했다. 정훈 시인을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만났다.

■풍경과 사람들에 대한 느낌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최근 시집 ‘새들반점’을 낸 정훈 시인을 만났다.
보수동 책방골목에 들어서자 외국인 가족 여행객이 보였다. 그들에게 한글은 낯선 문자이겠지만, 거리를 가득 메운 오래된 책방과 책들을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책을 사지는 않고 구경만 하고 있는 모습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책방골목이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많이 알려졌구나 싶어 흐뭇했다. 책방골목 한 쪽에서 책도 팔고 음료도 파는 서점에는 정훈 시인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평론가 겸 시인이 되셨네요” 라고 첫 인사를 건넸다.

“시집 이야기를 하려고 만난 지금은 평론가는 아니지요. 하지만, 시인 행세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시는 늘 혼자 써왔습니다. 마치 일기를 쓰듯 썼지요.”

고등학교 때 도인 같은 넉넉한 성품을 가진 짝에게만 시를 보여주었을 뿐, 대학 시절에도 문학 동아리에 든 적은 없었다. 홀로 묵묵히 시를 썼다는 말에서 그가 자신의 마음을 다듬는 시간이었음을 짐작해본다. 어찌되었거나, 이 글에서는 시인으로 부르기로 한다.

“시집을 보면 평론가로서의 이력이나 그동안 냈던 평론집에 대한 소개가 한 줄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평론집을 내게 된다면 그 책에는 시집에 대한 소개를 넣지 않을 겁니다.” 정훈 시인의 생각이다. 평론가인 정훈보다 시인 정훈이 더 소탈하고 밝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의 말에 공감하며 ‘새들반점’을 정훈 시인의 첫 시집으로 기억하기로 한다.

정훈 시인은 1971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형 넷과 누나 둘을 둔 막내였다. “큰 형이 군대에 있을 때 어머니가 갓난 저를 업고 면회를 갔는데, 형이 ‘이 아이가 누구냐?’며 깜짝 놀랐다고 해요. 형은 제가 태어난 줄도 몰랐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지요. 자개농방 집 막내였어요. 재료구입, 자개옻칠공방, 처음부터 마지막 공정까지를 전부 다 하는 공방이었어요. 집안에는 일하는 사람들로 늘 북적거렸습니다.”

그 시절 이야기는 드라마틱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돈을 빌리러 온 사람들이 집 앞에 줄을 서 있는 걸 보면서 학교로 갔지요.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사업이 무너졌을 때 이번에는 돈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줄을 섰고요. 하루아침에 집 앞 풍경이 달라진 거지요. 결국에는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어요. 형들은 이미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나이였는데, 문제는 저였지요. ‘막내는 우짜면 좋노’ 다들 걱정하셨대요. 큰 형, 작은 형 집에 살면서 학교에 다니기도 했답니다. 형수님들이 고생이 많으셨지요.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과 저는 부산으로 왔습니다.”

어렸다 해도 가족이 겪는 고난을 보았던 그는 성장기의 고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 고통이 세상을 보는 마음이 더 넓고 깊어지는 자산이 되어주었던 것은 아닐까. ‘새들반점’에서는 정훈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부산에 와서 제가 살았던 동네를 보면서, 영주동에 살면서, 원도심을 걸으면서 보았던 풍경과 사람들에 대한 느낌을 힘주지 않고 썼어요.” ‘새들반점’은 시인의 마음이 잔잔하게 독자의 마음으로 스며드는 시집이다.

■시인을 따라 걷는 길

새들반점- 정훈 지음 / 함향 / 2022
정훈 시인은 “곧 양산으로 이사를 간다”고 말했다. ‘새들반점’을 내놓고 다른 곳으로 간다니 왠지 서운하다. 새들반점도 사정이 있어 문을 닫았다. 시집 속 부산의 풍경이 다정하게 내미는 손을 잡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겠다. 시의 제목, 시의 구절에서 ‘여기도 가본 곳! 저기도 아는 동네!’를 발견한다.

‘동광동 멸치쌈밥집’은 중구 일대의 원도심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페이지부터 펼쳐보게 할 것 같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백산기념관 맞은편 멸치쌈밥집에 들어가면 이상개 시인의 시 ‘멸치쌈밥집’이 마치 사업등록증처럼 붙박혀 있음을 보게 된다. 괴정 순덕이네 시락국집엘 들어가면 류명선 시인의 ‘순덕이네 시락국’이 출입허가증처럼 벽의 전면을 장식한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다.’

가본 사람들은 “나도 그 시를 그 집에서 읽었지!”라고 말하고, 가보지 못한 사람들의 발길을 향하게 하는 시 구절이다. 여러 번 가 봤던 그 식당이 눈에 선하다. 이상개 시인의 시 ‘멸치쌈밥집’을 벌써 알고 있었다는 걸 주인에게 슬쩍 흘리기도 했던 식당을 생각하니 군침이 돈다.

필자는 이 시집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시인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굳이 따져보지 않았다. 시가 시인을 떠나 독자에게 시집으로 왔으니, 마음가는대로 읽기로 했다.

새들반점 말고 아는 곳이 또 있나 하는 호기심으로 읽었다. 시집 안에서 부산을 발견하는 맛이 쏠쏠하다. 재미삼아 아는 지명이 나올 때마다 포스트잇을 붙였다. 책갈피마다 온통 포스트잇이 장식하고 말았다. 시인과 같은 추억과 경험을 공유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제서야 왼쪽 페이지는 여백으로 두고 오른쪽 페이지에 시를 놓아둔 편집이 눈에 들어왔다. 시인의 시공간에서 느낀 추억과 경험을 여백에 적어두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시집의 목차는 가장 뒷 페이지에 있다. 제목을 읽다 다시 시를 찾아 펼친다. 독특한 편집이 시집을 더 재미있게 한다.

이야기를 마칠 때 쯤, 정훈 시인의 걸음을 따라 가보기로 했다. 책방골목을 나와 부평동 시장 쪽으로 향했다. ‘부산명태찌짐집’이라는 시가 태어난 작은 주점을 찾았다.

‘부평시장 들목에 자리 잡은 부산명태찌짐집에 쳐들어가 다짜고짜 명태포와 소주를 시키고 보니’라는 시의 첫 구절 그대로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시집 속에 들어 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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