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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52> 진송남과 부산이라는 장소성

팔뚝에 펜으로 ‘가수’ 새기며 꿈 키워… 고향 테마곡엔 부산 사랑 가득

  • 이동순 가요평론가
  •  |   입력 : 2022-07-03 19:32:04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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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뒤 日서 돌아와 부산 정착
- 강남주 학원 다니며 음악공부
- MBC가수선발대회 통해 데뷔
- 제대 뒤 ‘고향처녀’ 제2 전성기

부산에서 태어났거나 부산을 터전으로 역량을 키워 가수나 작사가 작곡가가 된 대중음악인이 적지 않다. 그들은 하나같이 부산이라는 장소성에서 재능과 저력을 키우고 완전성을 향해 다가가려 했다.
부산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가수 진송남(왼쪽 사진)과 그의 음반 ‘덕수궁 돌담길’.
‘토포필리아(topophilia)’란 말이 있다. 캐나다의 인문지리학자 이푸 투안이 만든 용어인데, 특정한 공간과 장소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말이다. 공간을 의미하는 희랍어 ‘topos’와 사랑의 뜻을 담고 있는 ‘philia’가 합쳐진 합성어다.

부산에서 활동했던 예술가와 대중음악인은 부산에 대한 남다른 추억과 애환의 기억을 갖고 있으리라. 그 과정 속에서 부산은 그들에게 특별한 토포필리아가 된다. 부산이 머금고 있는 모든 요소가 그들의 예술작품 속으로 무르녹아 들어갔을 것이다. 부산에서의 출생과 학업 및 교우관계, 사랑과 가난, 눈물의 기억들, 여러 지인과의 인맥 등은 그들의 작품성 속에서 확인된다.

이런 점에서 부산학(釜山學)이라는 고유의 학문 분야가 형성되고, 그 내부에서 부산출신 대중예술가의 활동 내력은 관심의 초점이 된다. 얼마나 많은 대중음악인이 부산에서 살았고, 이 도시를 기반으로 저력을 키워서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던 것인가. 그러기에 그들은 떠나가서도 몽매간에 잊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부산이다. 그들을 품에 안고 키워준 부산을 어찌 잊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점에서 부산은 그들에게 마치 어머니와도 같다.

가수 진송남(1943~ )에게 있어서도 부산 토포필리아는 남다르다. 비록 그는 일본 구마모토 출생이긴 하지만 광복과 더불어 귀국한 부친을 따라 부산 동구 범일동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진송남은 불과 세 살이었다. 송남이라는 이름조차 ‘마쓰오(松男)’라는 일본식이었으니 식민지 체험은 진송남 가족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아픔이자 상처였다.

부산에서 성남초, 동아중, 수산고를 다녔으니 진송남은 완전한 부산사람으로 자랐다. 타고난 음악적 재질이 발동해서 중학교 시절에 극장 쇼를 보러 갔다. 그때 무대에 출연한 가수 현인 안다성 도미 최갑석 송민도 등의 노래를 들으며 열광했던 추억을 잊지 못한다. 특히 최갑석이 부르던 노래 ‘마도로스 순정’을 들을 때는 숨이 멎을 정도의 감동과 흥분 전율을 느꼈다.

진송남은 집에 돌아와서 팔뚝에다 볼펜으로 가수란 두 글자를 마치 문신처럼 꾹꾹 눌러서 썼다. 자신이 걸어갈 삶의 길과 방향성을 결정하고 다짐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진송남의 동아중 동기생 중에 남정일이란 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은 노래를 좋아하는 취미로 의기투합했고, 기어이 부산진 성곽이 있는 자성대 부근의 강남주음악학원에 등록해서 함께 다녔다. 원장 강남주 선생은 1941년 일제 말에 가수로 데뷔해서 활동했던 부산 출생 대중음악인이다. 데뷔곡 ‘울고 싶은 마음’ 등 13곡을 서울에서 발표하며 가수로 활동하다가 광복과 더불어 부산으로 돌아와 노래교실을 열었다. 이 노래교실에 진송남과 남정일이 원생으로 등록해서 제자가 되었다.

강남주는 두 사람의 재능을 발견하고 특별한 사랑으로 가르쳤다. 친구 남정일은 가수가 되려는 꿈을 갖고 첫 음반까지 내었지만 결국 진로를 바꾸어 남국인이라는 이름의 작곡가가 되었다. 남국인의 대표곡에는 ‘사랑은 눈물의 씨앗’(나훈아) ‘님과 함께’(남진) ‘잃어버린 30년’(설운도) ‘비 내리는 영동교’(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주현미) ‘사랑의 거리’(문희옥) 등 다수가 있다.

이때 진송남은 학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늘 자성대 부근 언덕을 혼자 쓸쓸히 맴돌았다. 이렇게 힘든 시절을 보낸 진송남에게 기회가 온 것은 부산MBC가 주최한 가요콩쿠르 입상이다. 이 대회에는 현재 작곡가로 활동하는 정풍송이 밀양 대표 가수로 출전했다. 진송남은 영도 대표 가수 자격이었다. 당시 심사위원은 작곡가 백영호와 작사가 천봉이다. 직장대항가요대전이 열렸을 때 진송남은 동산유지 멤버로 출전했다. 작사가 한산도의 동생 한무웅과 가수 남상규도 현역군인 신분으로 출전했었다. 1962년 부산MBC주최 전속가수선발대회에 출전해서 진송남은 정풍송 등과 함께 당당한 가수가 되었다. 이후 이 대회를 통해 배출된 신인가수가 후랑크백 남상규 정훈희 문주란 캐리브룩 신행일 설운도 등이다. 그야말로 부산지역 신인가수 등용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진송남은 이 대회의 예심을 보았는데 하얀 여고생 교복을 입은 소녀가 출전해서 최종 결선까지 통과했다. 그녀가 바로 가수 문주란이다.

진송남은 1964년 백영호의 제의로 부산을 떠나 서울로 근거를 옮겼다. 서울에서 ‘유랑항구’ ‘서울의 춘희’를 거쳐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진송남은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65년 작품)에 잠시 출연해서 밤무대 가수 배역으로 노래를 불렀다. 부친은 아들이 출연하는 이 영화를 동네사람들과 함께 부산극장에서 무려 세 번이나 연속으로 보았다고 한다. 이후 지구레코드로 전속을 옮긴 뒤로 ‘덕수궁 돌담길’ ‘바보처럼 울었다’ ‘밤하늘의 블루스’ ‘잘 있거라 공항이여’ 등 히트곡을 계속 이어가는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다.

‘덕수궁 돌담길’은 작사가 정두수와 부산의 작곡가 한산도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기막힌 절창이다. 1965년 최고로 품위 있고 격조 높은 서정가요로 선정됐다.

이 무렵 진송남은 남진 박일남 태원 등과 함께 해병대 연예대에 입대했다. 이것은 예정에 없던 베트남 참전으로 이어지고 가수의 삶에서 활동의 단절이자 깊은 침잠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제대 후에 발표한 ‘고향처녀’가 히트하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열긴 했지만 가요계의 현황과 판도는 많이 바뀌었다.

진송남이 불렀던 노래 중 부산 관련 가요는 그리 많지 않다. ‘부산항 제3부두’(남길현 작사 작곡)와 ‘부산 가시내’(김병걸 작사 김다양 작곡)가 대표적이고 특히 부산 토포필리아로 짐작되는 고향 테마 노래를 다수 발표했다.

남포동 뒷골목에 비는 오는데/ 터벅터벅 걸어가는 무거운 발길/ 움켜잡은 한잔 술에 얼룩진 사연들을/ 단숨에 비워 버리고 다시는 울지 말자/ 다짐을 해 보건만 그래도 그립구나/ 부산 가시내(‘부산 가시내’ 1절)

2절에서는 해운대가 등장한다. 그의 발표곡 중 고향 관련 노래는 대개 부산이라는 공간성, 장소성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작품으로 보인다. ‘고향처녀’ ‘고향의 어머니’ ‘향수의 별’ ‘부두에 왔소’ ‘고향 달’ ‘꿈속의 고향’ ‘두고 온 항구’ ‘고향’ ‘그리운 고향’ ‘귀향’ ‘사나이 향수’ ‘정든 항구’ ‘물새 우는 내 고향’ ‘석양의 고향 길’ ‘연락선 나그네’ ‘항구의 눈물’ ‘향수의 밤’ ‘향수에 울었소’ 등도 이 계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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