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희의 옛 노래 ‘안개’가 처연하게 흐르며 영화 ‘헤어질 결심’의 엔딩 크레딧이 오르는 동안 다시 볼 결심을 했다. 굳이 비교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생각해 보면 나는 오래전부터 봉준호보단 박찬욱 편이었다. 무려,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고 ‘아가씨’ 이후 6년 만의 복귀작이다. 그리고 이안 감독의 영화 ‘색, 계’로 세계적인 배우로 각인된 탕웨이가 주연을 맡았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감상 전에 결심이 필요할 정도로 여러모로 ‘쎈’ 영화를 만들어왔다. 허나 ‘헤어질 결심’은 어떤 이유에선지 15세 이상 관람가다. 중학생도 관람할 수 있을 만큼 순한 맛의 박찬욱 영화라는 뜻일 것이다. 어느새 하얗게 센 머리에 편안한 웃음으로 관객이 기대하는 장면은 없을 거라고 인터뷰하는 박찬욱 감독을 보고 편안한 마음으로 극장 좌석에 앉았다. 말 그대로 상영 내내 딱히 자극적이거나 잔혹한 장면은 없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어떤 모호한 감정이 한순간에 붕괴되고 만다. 극장 안 어딘가 죄 없는 중학생이 함께 영화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어쩐지 배신감이 들지만, 만족스런 배신감이다.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맘껏 쓸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 이상한 이미지와 의미가 덧붙여져 가능한 피하거나 고민되는 표현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애국 어버이 태극기 같은 것들이다. 또 하나는 ‘표현의 자유’다. 예전엔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라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 나쁘고 이상한, 겸상할 수 없는 이들이 마치 자기들만의 전유물인 것처럼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빼앗겨버린 표현이다.
많은 창작자가 그러하듯, 긴 공백기 동안 박찬욱 감독 역시 깊이 고민하고 연구한 결과 표현 수위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강렬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고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영화는 박찬욱의 이전 영화가 그러했듯, 많은 대중에게 두루 사랑받는 영화는 아닐 것이다. 그 대신 다수 관객에게 n차 관람을 결심하게 한다. 이미 많은 이들이 n차 관람 행렬에 나섰다. 이 또한 감독의 치밀한 계산이 아닐까 의심은 되지만, 오랜만에 오래오래 곱씹으며 맛보고 싶은 영화라 마침내, 다시 볼 결심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