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 앞에 엎드려 꼼짝도 하기 싫은 무더운 날씨에도 기어코 보러 가야 할 공연이 있다. 경성대 앞 라이브 클럽 오방가르드에서 지난 9,10일 이어진 ‘모임 별’의 공연이 내겐 그랬다. 밴드라기보단 ‘창작집단’ 또는 말 그대로 ‘모임’에 가까운 ‘모임 별’은 열심히 공연 활동을 이어가는 편은 아니다. 부산 공연은 10년 만이다. 그때, 게릴라 공연처럼 무료 공연 공지가 당일에 뜬 바람에 허겁지겁 공연장으로 달려간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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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임 별 공연 사진. 경성대 앞 오방가르드. |
2000년 결성돼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OST에 참여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모임 별은 CD가 포함된 잡지 형태 비정기 간행물 ‘월간 뱀파이어’로 팬과 소통해왔다. 이들의 음악은 몽환적이고 실험적이고 시적이며, 나른하고 난해했고, 굳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세기말 감성이 짙었다. 세기말에 청춘을 보낸 나는 모임 별 노랫말에 관통당할 때가 종종 있었다. 때론 ‘비에 젖은 들쥐처럼 지쳐있을 때’(‘푸른 전구빛’)도 있었고, ‘전기가 끊긴 선실 안에 갇혀’(‘83’)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관객은 가득 찼고, 보드카 럼 위스키 데낄라 등 다양한 술과 음료가 무제한으로 제공돼 신나는 파티 분위기였다. 어쩐지 관객은 내 동년배보다 MZ세대라 부르는 20대 남녀가 대부분이었다. 새로운 멤버 황소윤의 인기가 한몫했는지 모르겠다. 황소윤은 밴드 새소년과 솔로 활동을 해왔고 TV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남다른 축구 실력으로 걸크러쉬한 매력을 선보이며 인기몰이 중이다.
세기말적인 모임 별의 감성이 20대에게 큰 울림을 주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번화가에선 마치 타임 슬립을 한 듯 90년대 댄스·발라드가 흐르니까. 어쨌든 세대를 넘어 같은 음악에 깊이 공감하고 즐길 수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MZ들 역시 세기말 청춘들처럼 막막하고 외롭고 비에 젖은 들쥐처럼 지쳐있는 게 아닐까?
공연이 끝나고 한참 디제잉 파티가 이어졌다. 오랜만에 온 스탠딩 공연에 지쳐 구석 자리에 앉아 쉬던 중이었는데, 동년배 아저씨가 다가와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계속 술 마셔야죠.” 모임 별의 리더 조태상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일어나 계속 술을 마셨다. 어쨌든 오랜만에 돌아온 세기말의 밤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