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35> 차영한 시인의 시집 ‘랄랑그에 질문’

현실을 잊게하는 마법같은 詩 … 자유로운 시·공간으로 떠나보길

  •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7-24 19:29:39
  •  |   본지 15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중학생 때부터 시 쓰고 문예활동
- 통영서 태어나 평생 공무원 재직
- 대학원서 초현실주의 이론 매료
- 시집 16권 낸 문학평론가이기도
- 2014년 한빛문학관 사재로 건립

하늘의 구름을 보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구름이 생기는 자연현상을 연구하느라 구름을 올려다보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 구름이 강아지를 닮았다느니, 고래를 닮았다느니 장난삼아 우겨보는 생명체는 인간 밖에 없을 것이다.
경남 통영 한빛문학관에서 만난 차영한 시인이 자신의 시 ‘학’에 청초 이석우 선생 글씨, 월천 진강백 선생의 그림으로 작업한 시화병풍을 소개하고 있다.
그 상상력이 우리를 살게 한다. 상상력이 없다면 어떤 일이든 해야 밥 먹고 살 수 있는 고단한 하루하루를 어떻게 견디겠는가. 현실을 견디게 하는 건 현실을 넘어서는, 혹은 잠깐 잊게 하는 초현실은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차영한 시인의 ‘랄랑그에 질문’을 읽었다. 시집 제목에서 말하는 ‘랄랑그’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런 걸 꼭 알아야 시를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표지를 넘겨 첫 번째 시를 만났다. ‘이집트 여행메모를 읽다’이다. 시를 읽기도 전에 가슴이 설렌다. 이집트 여행이라니. 한때 그 여행을 꿈꾸었고, 여건만 되면 당장 떠나고 싶다. 다시 목차부분으로 되돌아와 제목들을 훑어보았다. ‘노래하는 니제르 강’에서 이 강이 어디에 있는 강인지 모르겠으나, 강 이름이 근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카오스 날개 달린 지팡이의 마술사여’는 환상으로 가득 찬 신화와 마법의 세계를 떠올려준다. 차영한 시인이 품고 있는 세계가 궁금했다. 경남 통영에서 시인을 만났다.

■통영사랑 문학사랑

랄랑그에 질문- 차영한 지음 / 인문MnB / 2022
경남 통영에는 한여름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차영한 시인이 운영하는 한빛문학관을 향해 가는 차창 밖의 푸른 바다가 그 햇볕을 받아 더 반짝였다. 봉수1길에 접어들자 여행객 무리가 보였다. 어느 맛집을 찾아와 입장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다. 길가에 내놓은 의자에 앉거나 서성거리는 그들을 뒤로 하고 걸었다. 한빛문학관 주최, 한국문학관협회 주관, 문체부 후원으로 함께 하는 ‘통영 섬 사랑 시 공모전’을 알리는 현수막이 먼저 보인다. 통영 섬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참가해볼까 싶었는데, 지난 14일이 마감이었다니 아쉽다. 가을에 당선작품 전시회가 열릴 때 구경하러 와야겠다.

차영한 시인은 통영 사량도에서 태어났고, 통영을 떠난 적이 없다. 섬에서 초등학교를 보내고 중고교는 통영에서 다녔다. 통영중 2학년 때 학교신문에 ‘푸른 하늘’을 발표했다. 신현중 교장이 이 시에 관심을 보였는데, 그는 백석 시인의 친구였다. “교장 선생님과 사모님에게서 백석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차영한 시인에게 그 인연을 한참 들었다. 중학생 차영한에게 시가 찾아왔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고교 때도 시를 쓰며 문예반 활동을 했다.

차영한 시인은 통영에서 평생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고향을 사랑했고, 그 마음을 시에 담았다. 경상대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하면서 초현실주의 이론에 매료됐다. 그는 “초현실주의를 공부하면서 제 시가 좀 달라졌지요”라고 말했다. 1978년 ‘시문학’에 추천완료 되고, 평론 부분에서도 ‘청마 시의 심리적 메커니즘 분석’으로 우수작품상에 당선됐다. 이후 시와 문학평론 활동을 함께 해왔다. ‘랄랑그에 질문’까지 16권의 시집을 냈으며 ‘초현실주의 시와 시론’등 3권의 비평집, 수상록 ‘생명의 선율 그 그리운 날들’을 출간했다. 경남문학상을 비롯해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통영 사랑과 문학 활동은 한빛문학관으로 꽃을 피웠다. 한빛문학관은 차영한 시인이 사재를 털어 문화예술진흥법의 사립문학관 자격 조건을 갖추고 2014년에 건립했다. 문학관 1층과 전시실과에는 지역문학 잡지를 비롯해 한국문학 관련 서적들이 빼곡하고, 인문학 강의를 위한 시설도 갖추어졌다. 건립 이후 백일장, 전시회, 한글학교, 문학강연, 공모전 등을 계속 해왔으나 힘에 부칠 때도 있다. 지원이 더 확보되면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문학관 전시실에서 시화 병풍 하나를 보았다. 1975년 제작된 것으로 차영한 시 ‘학’에 글씨는 청초 이석우 선생, 그림은 월천 진강백 선생의 작품이다. 우리 예술의 멋이 느껴지는 멋진 병풍이다. 한빛문학관에는 차영한 시인의 마지막 열정이 오롯이 배어있다.

■현실에서 출발하는 초현실

시집 ‘랄랑그에 질문’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대개의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환상의 세계와 멀어지고, 현실에 발목을 잡히면서 환상을 잊어간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마술에 시선을 빼앗긴다. 현실이 아닌 것에 마음을 기울이는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이다.

차영한의 시집에서 고대 이집트 유적지, 히말라야, 스페인 몬주익 언덕, 파리 콩코르드 광장, 인도네시아 등의 이국 풍경을 만나는 동안 잠시 현실을 잊었다. 시집에는 현실처럼 경계가 없다. 아무 것에도 붙잡히지 않고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시간의 구분 없이 넘나드는 자유를 만끽했다. 언어로 그 자유로움을 표현하자면 시가 가장 어울리는 장르일 것이다. 독자가 이미지를 떠올려 상상하면 되니까. 그래서 복잡한 세상을 잠시나마 떠날 수 있었다.

다시 유행할 조짐을 보이는 코로나19, 마무리해야 할 일, 사람들과의 약속, 각종 고지서, 날선 주장과 악의적인 공격이 난무하는 세상, 통제가 힘든 욕망, 반복되는 일상…. 그런 것들로부터 잠시 떠났다. 그러나 현실을 떠났다고 해서 현실과 무관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시를 읽는 사람이 현실에 발을 딛고 살기에 현실을 떠나 상상의 세계에 닿을 수 있는 것이다. 시집을 덮으면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밀고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 힘을 시집에서 받았다.

문학관을 나서면서 현관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차영한 시 ‘떡갈나무 숲을 거닐면’을 한 번 더 읽어본다. ‘랄랑그에 질문’에도 수록돼 있는 시다.

‘떡갈나무 숲에 굽이치는 강물 / 그 사이로 헤엄치는 방어 송어 은어 떼 / 확확 풍겨주네 산 수박 향긋한 냄새 / 꼭다리에 닿아 익살 몇 걸음에도 / 숟가락 씻는 새소리 들려오네’.

순간 시원한 녹음이 우거진 숲속에 들어온 듯하다. 차가운 강에 발을 담그고, 물고기가 헤엄치는 걸 구경하는 기분이다. 가슴 속 까지 시원하다. 시를 읽고 나니 햇살 눈부신 길이 더 이상 무덥지 않았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뉴스 분석] 서부산 ‘쇼핑몰 삼각편대(롯데·신세계·현대百)’ 시너지…유통상권 팽창 예고
  2. 2일본 신칸센 멈추고 주민 대피령…삿포로·아오모리 등 혼비백산
  3. 3부산대 여자기숙사 드론 알고 보니 외주업체 야간 촬영
  4. 4“원전 밀집 부울경, 전력 다소비 수도권…전기료 차등 마땅”
  5. 5잦은 흥망성쇠, 척박한 생존환경…음모·술수가 판쳤다
  6. 6'3金 낚시론''이게 뭡니까' 김동길 교수 별세
  7. 7영화의 바다 별들 다시 뜬다…BIFF, 10일간의 항해 시작
  8. 8“전력 열세에도 적 심장부 돌진…충무공 정신이 난제 풀 열쇠”
  9. 9한미 북 추가 도발 억제용 미사일 발사...낙탄에 주민 '화들짝'
  10. 10‘역대 최대’ 부산미술제 14일 개막…직거래 아트페어도
  1. 1“원전 밀집 부울경, 전력 다소비 수도권…전기료 차등 마땅”
  2. 2한미 북 추가 도발 억제용 미사일 발사...낙탄에 주민 '화들짝'
  3. 3최인호 "HUG 권형택 사장 사의, 국토부 압박 탓"
  4. 4국감 첫날 파행 자정 넘겨 마쳐...둘째날 '부자감세' 논란 예고
  5. 5외신 “북한 풍계리 주변 활동 증가”
  6. 6[뉴스 분석] “지금 임금으론 생활 어렵다” vs “매일 출근도 아니면서…”
  7. 7메가시티 합의 못 했지만, 부울경 초광역 사업 첫삽은 뜬다
  8. 8부산시의회, 박형준 핵심 공약 '영어상용도시' 사업 제동
  9. 9尹 대통령 "北 4000㎞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결연한 대응 직면"
  10. 10"엑스포 득표전, 사우디에 안 밀린다"
  1. 1[뉴스 분석] 서부산 ‘쇼핑몰 삼각편대(롯데·신세계·현대百)’ 시너지…유통상권 팽창 예고
  2. 28년째 이용객 1위… 에어부산 김해공항 활성화 일등공신
  3. 35년 간 부산지역 중고차 관련 위법 행위 412건… 전국 2위
  4. 4"애플 일방적 앱가격 인상에 韓이용자 3500억 추가 부담"
  5. 5주가지수- 2022년 10월 4일
  6. 6잡히지 않는 부산 '생활물가'…무 119%·돼지갈비 14%↑
  7. 7농식품부 “김장철 배추대란은 없을 것으로 본다”
  8. 8월급쟁이 소득세 9% 늘 때 기업 법인세 4% 증가 그쳐
  9. 9올해 4분기 수출전망 더 나빠졌다…"환율 변동성 확대"
  10. 10메타버스에서 르노車 꾸미면 NFT가 보상으로
  1. 1부산대 여자기숙사 드론 알고 보니 외주업체 야간 촬영
  2. 2'3金 낚시론''이게 뭡니까' 김동길 교수 별세
  3. 3"학교용지부담금 분양 시점 학생수 고려해야"
  4. 4김해시 의생명산업 중심 도시로
  5. 5부울경 5~20㎜ 강우...낮 바람 불어 쌀쌀
  6. 6‘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순천 할머니 부산 전시
  7. 7코로나 위중증 58일 만에 최저…해외유입도 감소세 뚜렷
  8. 8“해외동포 등 전국체전 참가선수 불편없게 도울 것”
  9. 9오늘의 날씨- 2022년 10월 5일
  10. 10울산시교육청 내년 중등교사 등 임용후보자 채용계획 공고
  1. 1거포 가뭄 한국, 홈런 펑펑 미·일 부럽기만 하네
  2. 2권순우, 세계 23위 꺾고 일본오픈 16강
  3. 3필라델피아 막차 합류…MLB 가을야구 12개팀 확정
  4. 4처량한 벤치 신세 호날두, 내년 1월엔 맨유 떠나나
  5. 5김수지 ‘3주 연속 우승’ 도전…상금 1위까지 두 토끼 잡는다
  6. 6이대호 고군분투했지만…가을의 기적은 없었다
  7. 7손흥민, UCL 첫골 쏘고 토트넘 조 1위 이끈다
  8. 8‘또 해트트릭’ EPL 홀린 괴물 홀란
  9. 9국내 넘어 세계무대서 맹활약, 한국 에어로빅계 차세대 스타
  10. 10김하성, MLB 첫 가을야구 진출 축포 ‘쾅’
우리은행
부산형 오페라하우스 만들자
풀어야 할 과제는
최원준의 음식 사람
백두대간 송이버섯
문화현장 톡톡 [전체보기]
예술로 승화시킨 동물의 세계…라이온킹, 이유있는 1억 관객몰이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유불선 사상 아우른 ‘열자’ 外
관용 가치 입힌 독서와 토론 外
서상균의 그림으로 책 보기 [전체보기]
인간의 순리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어린이를 위한 ‘진짜’ 놀이터
청력 잃고 겪게 된 차별의 벽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가로등 /전용신
초원은 말한다-사자 /설상수
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전체보기]
‘수리남’의 하정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박은빈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공조2: 인터내셔날’의 현빈
‘비상선언’ 이병헌·송강호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건강한 모습으로 연기하는 안성기를 기다리며
한국 영화 대표로 아카데미 가는 ‘헤어질 결심’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치솟는 영화 표값 타당한가
'군함도 감독판' 길이가 아닌 완성도 높은 감독판을 허하라
뭐 볼까…오늘의 TV- [전체보기]
뭐 볼까…오늘의 TV- 2022년 10월 5일
뭐 볼까…오늘의 TV- 2022년 10월 4일
방호정의 컬쳐 쇼크 & 조크 [전체보기]
힙합 시대의 뮤지컬 ‘해밀턴 Hamilton‘
미역수염 첫 번째 정규앨범 ‘Bombora’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2년 10월 5일(음력 9월 10일)
오늘의 운세- 2022년 10월 4일(음력 9월 9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산속 가을비 풍경을 시로 읊은 유희경
최익현이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쓴 글
  • 2022골프대회
  • 맘 편한 부산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