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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36> 이달균의 시조평론집 ‘시조, 원심력과 구심력의 경계’

수백 년 그렇듯 이어오지 않았나…꿋꿋하리라 시조의 명맥

  •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8-07 19:27:04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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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양차 머물렀던 함안 시골마을
- 어르신들 넋두리가 글감의 밑천
- 시조 자리 줄어듦에 대한 경각심
- 18명의 작품 감상·비평에 담아
- 사설시조 맥 잇고픈 진심 가득

시조가 고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 분에게 장순하 시조시인의 동시조 ‘자갈치 시장’부터 소개한다. “전어, 갈치, 소라, 굴이 늘어앉았습니다/ 고구마, 옥수수도 간간이 끼였습니다/ 이 근처 바다에는 이런 것도 잡나봐요.” 재미있는 시조이다. 이달균 시인의 시조평론집 ‘시조, 원심력과 구심력의 경계’에서 장순하 시조시인을 처음 알았다. 이달균 시인은 위의 시조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이 시조를 읽고 미소를 짓지 않을 이는 없으리라.” 이 말이 맞다. 읽자마자 빙그레 웃음이 나왔으니까.
경남 통영의 한 카페에서 이달균 시인이 시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에 소개된 시조시인을 만나는 동안, 우리 시조가 이렇게 재미있고 가슴을 울리는 장르였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다. 이달균 시인에게 시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경남 통영에서 이달균 시인을 만났다.

■ 마을 어르신 찾아다니던 시절

시조, 원심력과 구심력의 경계- 이달균 지음 /작가 /2022
이달균 시인은 1957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1987년 시집 ‘남해행’과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다. 1995년 ‘시조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시조 창작을 병행해 왔다. 시집 ‘열도의 등뼈’ 사설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 시·사진집 ‘탑, 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 영화에세이집 ‘영화, 포장마차에서의 즐거운 수다’ 등 다수의 책을 냈고, 2022년 4월에 시조평론집 ‘시조, 원심력과 구심력의 경계’를 보탰다.

이달균 시인과 통영 용남면의 카페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창문 너머 바다가 보이고, 푸른 녹음이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이 평화롭고 한적했다. 책을 읽은 감상을 시인에게 먼저 털어놓았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시조를 배웠을 뿐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시조를 읽을 기회조차 없었다, 이 책에 소개된 시조를 읽으면서 그동안 시조를 제대로 읽지 않았던 것이 억울할 만큼 재미있었다….”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직도 학창시절 배웠던 그 시조를 외울 수 있다고 했더니 이달균 시인은 이렇게 답했다. “단 한 수! 고수들이 단시조로 쓴 그 작품 안에 한 사람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방원과 정몽주의 시조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어요,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이방원이 ‘하여가’를 읊었을 때, 무너져가는 고려를 붙잡아 되살리려는 정몽주는 ‘단심가’로 답합니다. 500여년을 이어온 고려와 그 만큼의 세월을 이어갈 조선이 만나는 순간, 천년의 세월이 그 두 편의 시조에 실려 있는 게 아닐까요.” 천년의 세월이 담긴 두 편의 시조. 그 말을 듣고 보니 우리 시조의 멋이 묵직하게 와 닿았다. 당시에 시조는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는 장르로 신분고하를 떠나 많은 백성이 사랑했다는 것도 느껴졌다.

이달균 시인은 1970년대, 몸이 아파서 함안 시골집에 잠시 머물렀던 시절을 들려주었다. “마을마다 초입에는 큰 나무들이 있고, 그 그늘아래 평상이 있고, 어르신들이 앉아계시곤 했죠. 젊은 날 풍물 잡던 이야기도 하고, 사설시조도 흥얼거리고, 내키면 상여소리도 하는 모습을 몇 번 뵙다가 빠져들었습니다. 슬며시 끼어 앉아 귀동냥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다 소주 두어 병에 새우깡 같은 걸 들고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는 말씀도 없으시던 분들인데, 뭔가 와서 툭 건드리면 갑자기 작동하기 시작하는 축음기처럼 소리와 이야기가 줄줄 흘러나왔습니다. 받아쓰면 모두가 작품이 되겠다 싶을 정도였지요. 그 시절이 후에 저의 시와 시조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긴 세월 마을을 지켜온 나무 아래 어르신들이 시조도 읊고 지난 시절의 풍류를 들려주는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 시조가 살아갈 수 있기를

시조평론집에서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는 문청이었던 이달균 시인이 보인다. 장순하, 윤금초, 박시교 등 18명의 시조시인들 작품에 대한 비평과 감상이 담긴 책이다. 시조에 대한 이달균의 생각도 읽을 수 있다. 책을 읽는 기분이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시조 읽기 숙제’라도 하는 것 같았다.

윤금초의 사설 시조 ‘인본주의 눈높이’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목 모르몬 뉘 집 거이든 단감 하나 따묵고 가 잉!// 담장 그 너머가 보이면서도 개릴 것 다 개려주는 오묘한 눈높이로 쌓은 흙 담, 너머 노프믄 이웃끼리 속 모르고 살고 너머 야차우문 아녀자들 활동하는 거 다 보이니께 뭣이다 쪼깐 거북하제. 지내감서 지신가 안 지신가 짐작할 만허고, 안팎으로 내다봄서 이야기할 만허고, 그 뭣이다…, 담 너머로 떡 접시 반찬 접시 오갈 만허고 그라제.// 그랑께. 요로코롬 넉넉한 것이 인본주의 아니겄어?”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사설시조의 맛이 이런 거구나 싶다.

이달균 시인은 윤금초의 사설시조에 대해 이렇게 썼다. “사설시조의 명맥이 면면히 이어져야 하겠지만 시조단에서 사설시조 창작인은 줄어들고 있다. 사설시조 계승을 위한 모임도 있긴 하나 산문시를 흉내 낸 작품도 많다. 물이랑이 끝없이 밀려오듯 앞말이 뒷말을 주워섬기고 넝쿨이 넝쿨을 넘는 넌출거림을 구사하는 시조인이 늘어난다면 사설시조의 맥은 이어지리라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의 의미는 크다고 하겠다.” 사설시조는 우리말에 대한 깊은 사랑과 우리 삶에 대한 넓은 이해 위에서 태어나는 귀한 문학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시조는 700년 전통과 고유한 형식을 가졌다. 세월이 흐르고 모든 것이 변하는 동안 시조의 자리가 줄어든 게 사실이다. 어떻게 해야 시조가 살아갈 수 있을까. 이달균 시인은 책의 머리말에서 “시조는 늘 경계 위에서 꿈틀대며 살아 있다. 끝없이 일탈하려는 자유의지가 원심력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정형이 구심력이다. 결국 이 원형의 팽팽한 경계 위에서 끝없이 실험하고 소통해 왔다”고 썼다. 그는 시조가 교과서에 더 많이 수록되고, 세련된 장치로 시조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팽팽한 경계 위에 있는 시조에 힘이 되는 중요한 조건 중에서 독자의 역할이 빠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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