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구서 나들목에서 해운대 방면으로 번영로를 달리다 보면 수영강변대로로 접어든다. 해운대 센텀과 광안대교로 연결되기에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늘 자동차로 붐비는 도로로 인식되어 있다. 고가도로라 확인하기가 쉽지 않지만, 시선을 조금만 오른쪽 아래로 돌려보면 지금 우리는 수영강변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서 도로명의 유래도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게 된다. 수영강은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함께 유유히 흐르다가 수영만을 거쳐 바다로 합류된다.
 |
| 붉은 간토기. 부산박물관 제공 |
강은 오래전부터 우리 인류가 머물면서 다양한 문명과 문화를 만들고 전개했던 곳이었다. 양산 천성산에서 발원하여 부산을 북에서 남으로 가로질러 수영만으로 흘러드는 수영강은 오래전부터 부산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터전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수영강과 그 지류, 특히 온천천 일대에 부산에서 가장 많은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수영강은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용이한 곳이자, 강변에 형성된 충적평야는 청동기시대부터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마을을 형성한 곳이었다. 특히 수영강을 중심으로 온천천이 합류하는 동래 일대의 충적지는 낙동강 동쪽의 부산에서 가장 넓게 평평한 지대가 형성된 지역이다.
2018년 8월 동래 온천동 청동기시대 돌널무덤의 한편에서 붉은 간토기가 출토됐다. ‘적색마연토기(赤色磨硏土器)’ 또는 ‘홍도(紅陶)’라고도 불리는 이 유물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 유물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선명한 붉은 색에 높이가 30㎝에 달하는 크고 당당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왔다.
목을 꼿꼿하게 바로 세운 항아리 형태로 아가리 아래쪽에는 문양을 찍듯이 토기 벽의 반만 둥근 구멍을 돌려가며 뚫었고, 바닥은 평평하게 만들었다. 토기 표면의 빛나는 광택은 토기 전면에 칠한 붉은 안료의 표면을 문질러 반질반질하게 만든 후 구워낸 결과물이다. 청동기시대에 주로 사용된 민무늬토기는 거친 바탕흙으로 빚어 구워낸 다소 투박한 형태인 데 반해, 붉은 간토기는 질 좋은 바탕흙으로 공들여 만들어 특별한 용도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온천동 출토품과 같은 형태의 붉은 간토기는 크기가 크고, 안정적으로 설 수 있다는 점에서 청동기시대에 저장 용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부산지역에서는 무덤의 부장품으로만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붉은 간토기는 두구동 석대동 망미동 괴정동 연지동에서도 출토됐다. 청동기시대 부산지역만의 독자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붉은 간토기를 통해 당시 온천동을 중심으로 수영강 일대가 동일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해양 수도’이기 이전 부산의 ‘수영강 문화’에 대한 흔적은 현재 부산박물관 동래관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