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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38> 이광 시인의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순탄키만 한 生 어디 있으랴…시인, 지친 이들 삶 보듬다

  •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9-04 19:23:39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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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6년 부산서 태어나 문학 활동
- 선박회사 직장인·사업·IMF파산…
- 녹녹하지 않은 삶 버텨온 경험
- 따뜻한 시로 이웃 위로하고 품어


- “노년 세대 지혜와 통찰력 매력
- 다음 시조집에 담아내고 싶어”

더위가 가시자 기다렸다는 듯 폭우가 내리고 태풍 소식이 들려왔다. 폭우로 인한 피해 현장을 전하는 보도를 보고 나면 비가 내리는 게 두렵기만 하다. 그럴 즈음 이광 시인의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를 읽었다. 첫 페이지를 여는 시조가 비가 두려운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옹벽’이라는 제목의 시조이다.

부산 수영강변 옆 APEC나루공원에서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를 발간한 이광 작가를 만났다.
‘비탈진 생을 안고 / 무너지지 말자, 우리 // 서로가 기대가며 / 하루하루 쌓은 다짐 // 무가내 퍼붓는 빗줄기 / 이 악물고 견딘다’.

이상기후, 수 십 년 만의 기록적 폭우, 초강력 태풍. 이런 것 만이 아니다, 우리네 인생 위에 무가내 퍼붓는 시련이 얼마나 많겠는가. 우리는 이 악물고 견디며 살아내 왔고, 앞으로도 이겨내며 살 것이다. 서로 기대고 있는 사람들에게 받는 위로가 힘이 되어준다. 문득 펼친 시집 한 권에서 힘을 받기도 한다. 이광 시인을 부산 수영강변 옆 APEC나루공원에서 만났다.

■사람 만나는 경험이 시조의 자양분

당신, 원본인가요- 이광 시조집 / 시와소금 / 2022
공원으로 들어서 강변 옆길을 걷는데 보슬비가 오락가락 했다.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이광 시인은 이 곳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이 길을 산책하면서 시상도 다듬고, 마음의 여유도 되찾곤 합니다, 장산에도 올라가고, 공원도 걷고, 이렇게 강도 바라보는 건 저한테 중요한 일상이랍니다.” 평일 오후에다 하늘이 흐려서인지 공원은 한적했다. “수영비행장이 있던 예전 이곳의 풍경이 선합니다. 친구들과 와서 갯벌에서 작은 게를 잡으며 놀던 곳이었는데, 이젠 좋아하는 산책길이 됐습니다.”

이광 시인은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문예반 활동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 시를 잘 쓰는 선배가 ‘너는 산문을 훨씬 잘 쓴다’고 하더군요. 교지에 희곡과 수필을 싣기도 했습니다. 소설 공부도 하고, 군대 가서도 쓰고, 신춘에 투고도 했어요. 최종심에 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낙선 후에 당선작을 보니 인정할 수밖에 없는 좋은 소설이더군요.”

문학에 마음 한 자락을 묶어 둔 채 그는 선박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선박회사라는 말을 들으니 시조집에서 비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연이어 보이던 것이 이해됐다. 날씨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해야 하는 생활을 했던 그의 시조에서 비는 낭만이 아니었다. 폭우나 태풍처럼 시련을 주는 거센 비를 맞고 견뎌내는 인간의 삶을 담아냈다.

“8년 만에 회사를 나와 사업을 몇 년간 하다가 IMF 영향으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막노동 일을 하면서 마루 시공을 배웠어요. 기능이 있었던 터라 후에 노후주택 재건사업현장에서 일도 했습니다. 자식에게 버림받고 낡은 집에서 홀로 쓸쓸히 살아가는 노인들과 궁핍한 생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내가 겪는 시련은 별 것 아니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고, 삶이라는 큰 운명의 흐름이 무언지 깊이 생각했습니다. 몸으로 일하는 현장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서 순수함, 성실성을 보았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감정이 교차했는데, 그 경험이 시조를 쓰는 자양분이 되어주었습니다.” 그의 시조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웅숭깊은 시선이 느껴지고, 위로를 받는다는 기분이 든 까닭을 이 말에서 알 수 있었다.

시조를 만난 시기는 조금 늦었을지 몰라도, 세상의 길을 오래 걷다가 비로소 만난 집이 되어주었다. “문학에 둔 마음은 저에게 또 다른 길이었습니다. 2000년부터 시조를 공부하기 시작했죠. 문학잡지를 읽으면서 시보다 시조가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제가 본 것과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담기에는 시조의 형식이 맞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광은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시조시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너다’ ‘바람이 사람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에 이어 2022년에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를 보탰다.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사회 현실을 드러내고 감싸다

‘당신, 원본인가요’는 이광 시인이 그동안 써왔던 시조 세계를 더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다. 첫 시집에서 보여준 사회적 약자의 현실을 드러내고 그를 감싸는 시선은 더 다양해지고 깊어졌다.

시조집 5부에는 사설시조를 엮었다. 그 중 한 편 ‘소중한 당신’을 읽어보자.

‘미화원 강순례씨 즐거운 점심시간 // 상가 내 휴게 공간 마땅한 데가 없어 화장실 변기에 앉아 도시락 꺼내든다 밥 한 술 떠 넣고서 깍두기 입에 물 때 황급히 들어서는 발자국 소리 앞에 살포시 다문 입술 손으로 가려본다 반찬 냄새 훅 끼칠까 도시락도 덮어둔다(하략)’.

미화원이 밥 먹고 잠시 쉴 곳조차 없다는 문제가 제기된 것은 오래 전이다. 그러나 아직도 열악한 환경은 개선되지 않았다. 건물을 멋지게 지어놓고 그곳의 청결이 유지되길 바라면서 미화원들이 마음 놓고 밥 먹을 곳도 없다는 건 부끄러운 현실이다. 똥냄새가 나지 않게 청소를 하는 사람이 밥 냄새 반찬 냄새 난다고 소리 들을까봐 주눅 든 모습에 속이 상한다. 그래서 이 시조를 곱씹어 읽어본다. 미화원 강순례씨를 소중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시인의 마음에서 다시 한 번 위로를 받는다.

연시조 ‘다듬잇돌’은 시조의 정형을 눈으로 볼 수 있다. 그 속에 옛 여인의 생활풍습이 단아하게 담겼다.

‘마님이 아씨 적에 동무 삼던 기억난다 / 홑청 빨아 얹어놓고 방망이로 풀던 속내 / 중모리 자진모리장단 마당 가득 채운 소리(하략)’.

정갈한 한옥 대청마루 한 편에 놓인 다듬잇돌이 떠오른다. 시조로 노래하니까 더 아름답다.

이광 시인은 노년세대의 생각과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분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툭 던지는 한 마디에 담긴 묘미를 느꼈습니다. 노년세대가 평생 닦아 온 인생의 지혜와 삶을 바라보는 통찰을 다음 시조집에 담아볼까 합니다.” 그 시조집에는 이광 시인이 더 깊어진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과 세상이 담겨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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