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세상을 떠났다. 여왕이 없는 영국이라니, 어쩐지 한 시대가 끝나버린 것만 같다. 여왕과 관련된 뉴스를 보다 보니 자연스레 머릿속에서 맴도는 노래가 있다. 무지막지한 기행과 난동으로 악명이 자자했던 영국의 펑크 밴드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가 1977년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25주년 기념일에 맞춰 발표한 노래 ‘god save the queen’은 대영제국의 상징과 같은 여왕을 대놓고 조롱하며 국가적 잔치상을 뒤엎는 수준의 만행이었다.
 |
| '피스톨' 포스터. |
그 결과, 밴드는 방송과 공연이 금지됐고 우파 청년에게 테러도 당했다. 한편 엄청난 물가 상승과 높은 실업률로 잔뜩 화가 나있던 수많은 영국 젊은이는 자신들을 대신해 기성세대에 거침없이 분노 어린 욕설과 조롱을 쏟아내는 막 나가는 펑크밴드에 열광했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볼 수 있는 ‘피스톨’은 섹스 피스톨즈의 기타리스트 스티브 존스의 회고록인 ‘Lonely Boy :Tales From A Sex Pistol’을 바탕으로 만든 6부작 미니시리즈. ‘슬럼독 밀리어네어’, ‘127시간’의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했다. 희망 없는 뒷골목 청춘의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그린 그의 1997년 작 ‘트레인 스포팅’이 연상되는 작품이다.
섹스 피스톨즈는 1977년 데뷔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인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한 장과 짧은 활동 기간 수많은 사건사고와 구설수를 남기고 사라졌다.
허나 섹스 피스톨즈 등장 이후의 세상은 분명히 달라졌다. 90년대 말 홍대 앞은 물론 부산 라이브 클럽에서도 수많은 펑크 밴드가 관객과 엉키며 날뛰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도 노래방 애창곡으로 사랑받는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은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사이드카, 소음발광 같은 밴드가 한국 펑크록의 명맥을 훌륭히 잇고 있다.
무정부주의자를 자처하며 분노를 쏟아낸 섹스 피스톨즈의 옛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지금의 어수선하고 답답한 대한민국 상황이 펑크록이 다시 무럭무럭 자라나기 딱 좋은 환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끄러운 분노와 조롱도 어쩌면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