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39> 박노욱 작가 수필집 ‘어머니의 배신’

농촌서 땅 일구며 글 쓰며, 파릇파릇 추억을 캐내다

  •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9-25 19:37:51
  •  |   본지 1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56년 경북 칠곡 시골마을 출생
- 주경야독하며 64세 늦깎이 등단
- 어릴 적 농사 경험 훌륭한 글감
- 진해웅천 농장 오가며 수필 완성

- 시든 꽃과 나무 곧잘 가꾸는 제주
- 아파트 이웃엔 ‘화분 아저씨’ 통해
- 수필로 부모님·친구 등 추억 소환

책을 읽으면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되고, 상상하게 되고, 비록 간접적이지만 새로운 경험을 맛보게 된다. 어떤 책은 추억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박노욱 작가의 수필집 ‘어머니의 배신’은 어릴 적에 살았던 시골마을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재미있게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수필집은 박노욱 작가가 시골에 텃밭을 만들고 농사를 지으며 쓴 글을 묶은 책이다. 흙을 만지면서, 씨앗을 심고 키우고 거두면서, 농막에 홀로 잠들면서, 그는 시시때때로 고향으로 되돌아간다.
박노욱 작가가 경남 진해 웅천골에 텃밭을 만들고 농사를 지으며 쓴 글을 묶은 책 ‘어머니의 배신’을 출간했다.
텃밭 가는 길에 논두렁을 지나며 벼꽃 냄새 맡은 장면을 쓴 글 한 대목을 보자. “벼꽃을 볼 때만은 배가 불렀다. 가을 황금들판을 보고도 부르지 않던 배였다.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 먹고 가을에 햅쌀로 갚는 장리(長利)는 꾼 곡식에 절반이나 되는 이자를 얹어 주어야 했다. 색갈이를 하는 부잣집들이 고리대금업자였다. 여름 내내 뙤약볕 아래 힘들게 농사일을 했던 부모님 생각을 하면 가슴이 저민다.”

‘색갈이’가 무슨 뜻인지 사전을 찾아보았다. ‘봄에 묵은 곡식을 꾸어주었다가 가을에 비싼 길미를 붙여서 햇곡식으로 받는 일’이란다. ‘길미’는 이자라는 뜻이겠지 짐작한다. 시골집 옆에 논이 있었지만, 필자는 벼꽃을 보지 못했다. 부지런한 농부의 눈에만 보인다는 귀한 꽃이다. 벼꽃 냄새를 맡으며, 기억 속 고향으로 달려가 부모님을 만나는 저자가 보인다. 문장 속에 박힌 우리말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박노욱 작가를 경남 진해 웅천골에서 만났다.

■화분 돌보는 아저씨

박노욱 작가는 1956년 경북 칠곡 이언마을에서 태어났다. 2019년에 ‘문학도시’ 수필로 등단했다. 등단은 늦었지만, 그는 그 이전에 국내 일간지에 600여 편의 글을 실었다. 한국전력에서 근무하는 25년 동안 그는 전기 관련 글을 300여 편, 나머지 절반은 세상사는 이야기를 썼다. 홍보실에서 정식으로 홍보업무를 맡으라는 요청이 있을 정도였다.

부산 동래 지하철역에서 작가의 차를 타고 진해로 이동했다. 만나자마자 “아파트에서 ‘화분 돌보는 아저씨’로 통하시는데, 너무 힘들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책에서 수필 ‘숨’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었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그는 아파트 화단을 자청해서 돌보았고, 시들어가는 화분을 들고 온 입주민들의 고민을 들어주었다. 죽어가는 화분을 살리는 사람이 있는데, 박노욱이 그런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입주민 한 둘이 오더니 슬슬 화분이 모여들었다. 화원에 보내야 할 큰 화분들까지 오는 지경이었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발령이 나면, 화분이 걱정됐어요. 이전 지점에서 화분이 말라 간다는 연락이 오기도 하고, 업무 때문에 갈 일이 생기면 함께 일했던 직원들보다 화분을 먼저 챙겨 봤지요. 군에 입대해서 논산훈련소에 있을 때 훈련 중 쉬는 시간 10분 동안 화단에 물을 줬지요.” 이쯤 되면 아무도 못 말리는 거다.

이야기 하는 사이에 웅천골 텃밭에 도착했다. 농막 앞에 있는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친구들이 ‘눌언농장’이라고 이름을 붙여줬어요, 공자의 말씀 중에 ‘눌언만행’이 있습니다. 말은 조심하고 행동은 바르게 하는 것인데, 말솜씨가 없는 저를 친구들이 잘 봐 준거지요. 20년 전부터 텃밭 준비를 했고, 2016년에 퇴직한 이후부터는 한 주일의 절반은 이곳에서 보냅니다. 낮에는 농사일 하고, 밤에는 글 쓰고요. 주경야독이지요. 수필집도 이 곳에서 썼습니다.”

■흙에서 캐낸 마음

어머니의 배신- 박노욱 수필집 / 해암 / 2022
박노욱 작가는 아버지가 농사짓는 걸 보고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아버지, 삼촌과 함께 못자리 볍씨를 뿌렸는데, 제가 한 것이 더 가지런했어요. 이웃집 볍씨 뿌리는 날에 일꾼으로 뽑혀가기도 했죠. 학교도 빼먹고요. 어른들께 농사꾼 재능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요.” 그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마음껏 흙을 만지고 싶을 것이다. “식탁에 오르는 채소는 이 텃밭에서 길러 먹어요. 고추 배추 수확해서 김장도 담그죠. 힘들어도 재미있습니다.” 조경기능사 원예기능사 산림기능사 자연생태복원기사 자격증 등 농사일에 필요한 자격증 농사도 지었다.

수필 ‘여백’에서는 부지런한 농사꾼의 모습이 보인다. “농사일은 철따라 순서가 있다. 봄에는 여러 가지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는다. 고추를 비롯하여 가지 오이 토마토는 기본이다. 약효를 경험한 작두콩과 쥐눈이콩을 빠트리는 일은 없다. 유월에 마늘과 양파를 수확한 자리에는 참깨씨앗을 넣고 가을을 기다린다. 참깨를 털고 나면 김장 무와 배추씨앗을 뿌리는데 처서를 넘기면 수확량을 보장할 수 없어 서둘러야 한다.” 이렇게 일을 하다가 고향마을, 부모님, 친구와 동료들, 옛 추억과 만나는 것이다.

‘어머니의 배신’이라는 글에서는 돌아가신 작가 어머니의 곧은 성품이 느껴진다. 말년에 거동이 불편하고 정신이 맑지 않은 어머니를 좀 더 편안하게 모시려고 장애등급을 받으려 했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장애판정기관에서 직원이 나왔을 때 누워있던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사마 개안타. 나보다 더 아픈 늘그이들이 만타카이”라며 손사래를 친 것이다. 어머니의 성품을 알고는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어머니의 배신이었다.

흙은 식물을 키우면서, 작가의 마음도 키웠다. 흙에서 캐낸 마음은 글로 기록됐다. 박노욱의 텃밭에서 난 수확물만큼 그의 수필은 더없이 싱싱하고 푸르다. 그는 주경야독의 생활을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혼자 노는 데는 글쓰기만 한 게 없다. 먼 길 떠난 부모님을 만날 수 있고, 소꿉친구들도 불러 모을 수 있다. 텃밭에서는 들짐승 산짐승들과 대화도 한다. 지천에 저절로 자라는 잡초가 신기하고, 봄에 씨앗을 뿌리면 가을까지 친구가 되어주는 남새들도 고맙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건 덤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서 미분양 1군 브랜드 486가구 통째 전세로 공급(종합)
  2. 21만석으로 줄여라? BPA 초라한 아레나돔 고집
  3. 3가덕 첫삽 끝내 연내로 후퇴…당정 “공사비 8500억 증액”(종합)
  4. 4김해공항 10개월째 수장 공백…제2 출국장 부분 운영 여전
  5. 5면접 보고 그날 합격 통보…BIFC 채용행사
  6. 6선박 2척 버티기…수영만요트장 재개발 착수 해 넘기나
  7. 7단거리 최강馬 위너클리어 짜릿한 역전승…국제신문배 우승
  8. 8선거법 위반 혐의 양산시 특보 숨진 채 발견
  9. 9“실책·기복 없어야 강팀…거인 맞춤 훈련 강화할 것”
  10. 10[사설] 신세계타운, 센텀시티의 새 도약과 부산의 미래 이끌길
  1. 1주민자치회 정식 출범 원년…유럽 모범사례 현장을 가다
  2. 2박수영 ‘국쫌만’ 300회…888건 민원 풀어
  3. 3820조 예산전쟁 개막…여야 ‘3대 메가·미래기금’ 격돌 예고
  4. 4‘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5. 5“7개 정당 19명 치열하게 토론…대화·설득으로 의견 일치 봐”
  6. 6민주, 조희대 ‘계엄 동조’ 여부 정조준
  7. 7北 해커, 비트코인만 1만8270개(약 1조8701억원 ) 훔쳤다
  8. 8서범수 의원, 농지 훼손·환경오염 막는 강화 법률 개정안 발의
  9. 9이 대통령 '순방 외교' 공방, '돼지 눈엔 돼지" 표현 논란도
  10. 10사천 공군기지 훈련기 공중 충돌 뒤늦게 알려져…부상자 없어
  1. 1부산서 미분양 1군 브랜드 486가구 통째 전세로 공급(종합)
  2. 21만석으로 줄여라? BPA 초라한 아레나돔 고집
  3. 3가덕 첫삽 끝내 연내로 후퇴…당정 “공사비 8500억 증액”(종합)
  4. 4면접 보고 그날 합격 통보…BIFC 채용행사
  5. 5편의점 번진 요거트 인기…세븐일레븐 ‘요즘’과 맞손
  6. 6부산은행 김해공항점 계속 운영
  7. 7중산층 10명 중 4명 벌이 줄었다
  8. 8조선 빅3 공동납품망 완성…부산 기자재 플랫폼 안착(종합)
  9. 9롯백 편집숍 ‘시시호시’ 부산 감성 입었다
  10. 10캐릭터로 동심 공략하고, 어른 향수도 자극하고
  1. 1김해공항 10개월째 수장 공백…제2 출국장 부분 운영 여전
  2. 2선박 2척 버티기…수영만요트장 재개발 착수 해 넘기나
  3. 3선거법 위반 혐의 양산시 특보 숨진 채 발견
  4. 4“지광은 국제신문 떠나라” 직원 빗속 상경투쟁
  5. 5여전한 특수학교 님비 “주민체육시설 끼워 짓자” 고육책
  6. 6“국제신문 위기는 민의 위기” 지역사회 잇단 지지
  7. 7경비·미화 넘어 AI·관광 전문가로…은퇴 뒤 더 빛나는 삶
  8. 8국힘 과반 양산시의회, 민감한 3개 안건 부결 왜?
  9. 9대학·마을에 스며든 이전 기관…지자체는 정주지원 화답
  10. 10“부산형 상병수당, 고령노동자도 줘야”
  1. 1단거리 최강馬 위너클리어 짜릿한 역전승…국제신문배 우승
  2. 2“실책·기복 없어야 강팀…거인 맞춤 훈련 강화할 것”
  3. 3“좋은 젊은 피 많아…잠재력 극대화”
  4. 4삼성, KIA 6-1 꺾고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
  5. 5BNK, 여자농구 개막전 ‘디펜딩챔프’ KB 완파
  6. 6‘친정 팀 복귀’ 이동욱 감독, “기본기 다져 승리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7. 7“AG 환희 잊고…리그 첫 경기부터 승수쌓기 총력”
  8. 8마침내…밀워키, 월드시리즈 첫 우승(종합)
  9. 9괜찮을까…모레노호, ‘96라인’·손흥민 모두 품었다
  10. 10여자프로농구 절반이 女감독
우리은행
얼굴에 담긴 이야기
자연에는 길흉이 없다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비밀이 사라진 섬, 농담으로 건네는 회한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아이마다 다르게 자라는 이유 外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배미정-나무에 기대어
송현화-Magic Airs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곰 두 마리 /황인숙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설상수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누적 180만 넘긴 ‘극장판 치이카와’ 2주 연속 정상…예매율도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2일 (음 9월 23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9일 (음 9월 19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조선 중기 문신 김인후가 소쇄원 단풍을 읊은 시
이여가 가을 보름달을 바라보며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