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최원준의 음식 사람] <67> 진주 실비

뭘 시켜야 하나 고민하지 마세요…뭘 내놓을지는 주인장 맘이라오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10-11 19:15:51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제철 식재료로 푸짐한 한 상 차림
- 진주 대표하는 서민 음식 명성
- 통영다찌·마산통술과 같은 부류
- 현대식 오마카세의 원조인 셈

- 인근 삼천포 싱싱한 해산물로
- 생굴·멸치무침에 고랑치 생선회
- 전복 멍게 소라 낙지 갈치구이…
- 1인 안줏값 2만5000원이면 끝

한때 진주지역 시인들과 잦은 만남을 가졌던 적이 있다. ‘부산경남젊은시인회의’란 단체의 일을 맡으며 경남 각지의 시인과 더불어 그 지역의 사회 역사 문화를 배우며 박주일배(薄酒一杯)를 기울이곤 했던 것.

진주 서민의 음주문화를 대표하는 진주 실비의 가장 큰 특징은 정해진 상차림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주인이 주는 대로 술상을 받아야 한다. 일종의 ‘오마카세’인 셈이다. 매일 새롭고 맛깔스러운 안주를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
당시 진주에도 여러 문학 도반들이 있었는데, 멀리서 온 나그네를 박대하지 않고 늘 반겨 주었다. 모두들 주머니가 가벼운 시절이라 거방한 술자리는 언감생심이고 그럭저럭 가성비 좋은 단골 술집에서 권커니 잣거니 했었다.

그때 자주 찾았던 곳이 진주 서민의 음주문화를 대표하는 ‘실비집’이었다. 말 그대로 허름한 식당에서 실비(實費)로 술을 팔던 곳으로, 싸게 판다는 뜻의 ‘실비로 파는 집’을 뜻한다. 당시 안주는 정해진 것이 없이 주인장이 그날그날 장을 봐온 식재료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두었다가 술이 떨어지면 술과 함께 안주를 채워 주는 방식으로 영업을 했다. 요즘 유행하는 ‘오마카세’의 원조이기도 하다.

진주는 서부경남의 최대 도시로, 역사 경제 문화 교육의 도시이자 소비도시이기도 하다. 다양한 물산이 인근 지역에서 집산이 되기에 식재료가 풍성하다. 특히 당시 삼천포에서 싱싱한 해산물이 곧바로 진주로 직송되었기에, 언제나 풍성한 해산물의 안주로 술을 한잔할 수 있었던 곳 또한 진주이기도 했다.

진주 시인들과의 술자리는 늘 행복했던 것 같다. 술상을 삥 둘러 가며 술병을 세우고는 술병 놓을 자리가 없으면 옆 술상으로 옮겨 다시 술자리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추억이 있는 진주 실비집을 얼마 전에 찾았다. 감회가 새로웠다.

실비집. 진주 사람들이 말하는 ‘실비’는 원래 제철에 나는 값싼 재료로 밥반찬처럼 음식을 만들어 놓았다가 안줏값 없이 술값만을 받고 술을 팔던 술집을 통칭한다. 진주뿐만 아니라 사천 등 서부경남의 서민들이 즐겨 찾는 술집, 또는 음주 문화를 지칭하기도 한다.

지역 원로 문화인들에 의하면 “1970~80년대 시내 중심가인 중앙로터리 기업은행 뒷골목에 공짜로 안주를 제공하던 ‘옥이집’ ‘남이집’과 계동의 안주 값이 싼 ‘화랑집’ ‘신라집’ 등의 술집이 실비만 받고 술을 팔았다고 해서 ‘실비집’이라고 불렸다”고 전한다. 현재는 원도심 이외에도 대단지 아파트 밀집 지역인 신안동 인근에 10여 곳이 거리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진주 실비집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정해진 상차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차림표도 없고, 손님이 먹고 싶다고 특정한 안주를 시킬 수도 없다. 그냥 주인이 주는 대로 술상을 받아야 한다.

인근 시장에서 제철에 나는 것 중 싸고 많이 나는 싱싱한 식재료로 조물조물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매일매일 새롭고 맛깔스러운 안주를 사시사철에 걸쳐 먹을 수가 있다.

가을 진주성의 아름다운 야경.
한때 실비집은 맥주를 중심으로 술값만 받고 안주는 무제한 공짜로 주는 방식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넉넉한 안주를 제공하는 대신 소주 만 원, 맥주 6000원 등 술값을 더 받는 형태로 변했다. 지금은 ‘통영 다찌’나 ‘마산 통술’처럼 1인당 일정액의 안줏값을 받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비교적 진주 술꾼들에게 잘 알려진 실비집에는 1인당 2만5000원의 안줏값을 받고 있는데, 제철 따라 나오는 스무 가지 안팎의 안주를 넉넉하게 받아볼 수가 있다. 실비 2인 술상의 안줏값이 부산의 생선회 작은 접시, 또는 평범한 일식집 점심 특선 수준이다. 그런데 가성비로 보자면 안줏값만 족히 10여만 원은 훌쩍 넘겨야 할 듯 싶다.

우선 상차림을 살펴본다. 전화로 예약할 때 안주 몇 가지가 떨어졌다고 주저하더니, 차려지는 모습을 보니 보통이 아니다. 자연산 생선회에 전복 멍게 소라회 낙지탕탕이 생굴 무침 멸치회 무침 꽃게찜 가리비 꼬막 숙회 대하찜 죽방렴 갈치구이 해물 빈대떡 새우튀김 조개 미역국 등이 줄을 지어 상에 오른다.

멸치회무침.
10월인데 벌써 햇굴이 나오는지 생굴 무침이 상에 올랐다. 한점 집어 먹어보니 갯냄새가 입 안에서 진동한다. 질릴 정도의 고소함과 맵싸한 양념에 짭조름한 젓갈 등이 어우러져 흔쾌하기 이를 데 없다. 꼬들꼬들 씹히는 고랑치를 비롯한 가을 생선회도 좋고, 전복 멍게 소라 낙지회도 달큰쌉쌀하고 살강살강하니 쫀든쫀득하다. 차례차례 하나씩 음미를 한다.

찬 음식을 먹었으니 조금 속을 데워야겠다. 새우튀김과 해물 빈대떡으로 술 한잔 한다. 적당히 기름지고 고소한 음식이 속과 입을 따듯하게 데워준다. 그리고는 다시 새로운 음식에 젓가락을 가져간다.

갓 쪄낸 가을 꽃게 속에는 뽀얀 살점이 꽉꽉 들어차 웅숭깊고, 가리비 숙회와 꼬막 숙회 또한 입 안에 바다의 짙은 맛이 물결치듯 넘쳐흐른다. 남해 죽방렴에서 건져낸 갈치구이는 부드럽고 고소함이 남다르다. 크지는 않지만, 살이 통통한 것이 진한 풍미를 내고 있어 참 좋다.

마지막으로 조개 미역국이 나온다. 대부분 경남의 비슷한 형태의 술집은 마지막에 술국이 나온다. 이 술국이 나오면 이제 안주가 다 나왔다는 뜻이다. 음식이 다 나왔으니 술국으로 시원하게 해장을 하라는 것이다.

조개는 대합을 썼다. 조갯국 중에 가장 시원하고 개운한 육수를 내는 조개다. 특히 진주를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 대부분이 이 대합으로 제사의 탕국이나 비빔밥 등과 곁들이는 국을 끓인다.

한술 뜬다. 뜨끈한 조개 국물이 속을 환하니 풀어준다. 미역 육수의 걸쭉함 또한 속을 다독여 준다. 자칫하면 이 진하고 시원한 조개 미역국이 오히려 해장이 되며 술을 더 부를 수도 있겠다.

‘진주 실비’는 ‘통영 다찌’와 창원 ‘마산 통술’과 함께 ‘경남의 3대 서민 음주문화의 공간’이다. 지금은 타지의 관광객이 지역의 음식문화를 체험하는 관광문화자원이 되었지만, 한때는 서민의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지인들과 하루의 피로를 술 한잔에 담소로 풀어내던 문화사랑방 같은 장소였다.

모쪼록 진주의 실비집을 비롯한 경남의 이 모든 서민 술집들이 좋은 사람과 허물없이 하루의 일상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계속 남기를,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묻히지 않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오늘이슈

 많이 본 뉴스RSS

  1. 1[도청도설] if, 손아섭
  2. 2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3. 3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4. 4[포토에세이] 가을의 꽃 코스모스
  5. 5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6. 6되돌아와 수로 출구 앞에서 맴도는 부캉이
  7. 7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8. 8공공 건설현장인데…추락 안전망 없고 감독 태만 부지기수
  9. 9[시사난장] 중국 굴기와 한국 외교의 ‘새판’
  10. 10가덕 공사비 증액 ‘강제’ 아닌 ‘권고’…법개정 정부 초안 논란
  1. 1가덕 공사비 증액 ‘강제’ 아닌 ‘권고’…법개정 정부 초안 논란
  2. 2北 “국경선 확성기 외 새 대응수단 대기” 연일 대남 협박(종합)
  3. 3최길수 특별감찰관 청문보고서 채택
  4. 4공소청 첫 국감 ‘李 공소 취소’ 공방…檢 총장 대행 “검토·지시 한 바 없어”
  5. 5李대통령 지지율 소폭 상승해 40% 회복…부정평가는 50%
  6. 6이 대통령, 최길수 특별검찰관 임명
  7. 7금융위원장 "산은 부산 이전 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 파장
  8. 8더 밀릴 수 없다…지지율 위기에 정면돌파 택한 당청
  9. 9이 대통령 "중수청 지휘감독 포기하는건 탄핵사유" 野 "국무회의 참석하면 밀실지휘 없어지나"
  10. 10김용범·김현지 국감 증인채택 무산
  1. 1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2. 2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3. 3로그인 없이 서버장악 가능…전 세계 ‘PHP’ 보안 비상
  4. 4부산시대 연 HMM, 올해만 6조원 투자
  5. 5[한 손 뉴스] 낙상·실종 막는 ‘스마트신발’…부산TP, 노약자 지원 확대
  6. 6서낙동강 수변입지에 4Bay 구조…실속 갖춘 59㎡ 단일평형 차별화
  7. 7부산 온 인도 구자라트주 대표단, 지역기업과 조선·금융 협력 모색
  8. 8부산건설사·대기업, 상생협력 머리 맞댄다
  9. 9한은 기준금리 3% 동결…긴축 유지, 속도조절 속 내달 다시 인상 가능성(종합)
  10. 10흑백요리사 셰프, 국내산 수산물 해외 홍보 나섰다
  1. 1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2. 2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3. 3되돌아와 수로 출구 앞에서 맴도는 부캉이
  4. 4공공 건설현장인데…추락 안전망 없고 감독 태만 부지기수
  5. 5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23일
  6. 6구조하다 놓친 익수자 숨진 채 발견
  7. 7부산 다문화 고교생 5년새 2배…정작 한국어학급 ‘0’
  8. 8[속보] 여전히 수로 주변 배회하는 ‘부캉이’…“환경 적응하면 바다로 간다”
  9. 9취임하자마자…도시철 파업 막기 숙제
  10. 10특검팀, 마산합포구선관위 등 투표자수 허위 입력 6곳 추가 확인
  1. 1종합 6위 부산, 고른 활약에도 아쉬움
  2. 2만년 꼴찌 삼성 선두 ‘파란’…前 챔프 KCC 최하위 ‘수모’
  3. 3쇼트트랙 전설 최민정의 마지막 질주
  4. 4‘높이’ 키운 BNK썸, 2년 전 영광 재현 노린다
  5. 5호랑이 발톱 세운 김도영…돌아온 사자 포효 최형우
  6. 6축구협회장 선거, 12월 18일 추진
  7. 7요트 하지민, 레이저급 정상…전국체전 16연패 역사 쓰다
  8. 8부산시설공단 여자핸드볼팀 전국체전 2년 연속 금메달
  9. 9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10. 10유럽 강호 맞서는 김시우·임성재
우리은행
최진숙의 유네스코 세계 유적지 이야기
보리수가 휘감아 지킨 불두, 몰락왕조 영광의 기억
얼굴에 담긴 이야기
물극필반(物極必反)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일상 언어에서 찾은 삶의 방향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남인목-웃는 나무
강동윤-Pixelated Oasis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설상수
경비원 /박필상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누적 180만 넘긴 ‘극장판 치이카와’ 2주 연속 정상…예매율도 1위
팬덤의 힘 ‘극장판 치이카와’ 1위로…암살자(들) 근소한 차 2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2일 (음 9월 12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1일 (음 9월 11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겸재 정선은 금강산의 참모습을 어떻게 그렸을까
유배객 자암 김구의 눈에 비친 남해의 가을 바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