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영화의 해방구로 기능하는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뉴 커런츠’ 섹션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비경쟁 영화제로 시작된 BIFF의 유일한 경쟁 섹션이기 때문이다. 올해 ‘지석’ 섹션이 신설되기는 했지만 제1회 영화제 때부터 아시아 신인 감독의 등용문으로 기능한 ‘뉴 커런츠’의 무게감은 여전하다. 아시아 신인감독의 첫 번째, 두 번째 영화를 대상으로 ‘뉴 커런츠’ 상 두 편을 선정한다. 올해 ‘뉴 커런츠’ 부문에 초청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화제작 두 편의 주인공, 허슈밍과 구보타 나오 감독을 각각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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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슈밍 감독. 여주연 기자(왼쪽), 구보타 나오 감독. 김미희 기자 |
■ ‘아줌마’ 허슈밍 감독
- 싱가포르 중년여성의 韓 여행기
- 한류스타 여진구 캐스팅해 화제
- “BIFF서 첫 장편영화 데뷔 영광”
“BIFF는 세 번째 참석인데, 첫 장편 데뷔작을 BIFF에서 처음 선보이게 돼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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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줌마’ 스틸컷. BIFF 제공 |
지난 7일 부산 영상산업센터에서 열린 영화 ‘아줌마’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허슈밍 감독은 상기된 모습으로 BIFF를 찾은 소감을 전했다.
‘아줌마’는 K-드라마에 빠진 싱가포르의 아줌마 안티가 아들과 함께 하기로 한 한국 여행을 홀로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한국 여행을 하던 안티는 아들과 통화하다가 관광버스에서 낙오가 되고,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은 헤매던 그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작품의 영감을 받았다는 허슈밍 감독은 “어머니가 K-드라마 열성 팬이다. 서너 편의 한국 드라마를 동시에 보신다. 전화 통화를 할 때 드라마에 나오는 캐릭터 이야기를 하곤 했다”고 말했다.
한국어인 ‘아줌마’를 영어 제목(‘Ajoomma’)으로도 그대로 사용한 것에 대해 그는 “싱가포르에서도 아줌마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가 비슷하다. 일정 부분 부정적인 의미도 있다. 싱가포르어로 아줌마와 비슷한 단어가 ‘안티’라서 주인공 이름도 ‘안티’로 정했다”며 “K-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어서 모두가 ‘아줌마’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겨울 한국에서 80% 이상 촬영한 ‘아줌마’에는 40년 넘게 연기를 해온 싱가포르의 ‘국민 배우’ 홍휘팡과 한국의 강형석 정동환 그리고 한류 배우 여진구가 특별출연한다. “홍휘팡 배우는 제가 어려서부터 봐온 배우여서 적역이었고, 그도 딸과 어머니 역할을 많이 했기 때문에 캐릭터를 깊이 있게 이해했다”며 홍휘팡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한국 배우의 경우 강형석은 중국어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진구는 실제 한류스타라는 점에서 너무 만족스러운 캐스팅이었다고 설명했다.
한국 배우, 스태프와 촬영을 진행했기 때문에 언어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허슈밍 감독은 “통역 과정에서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메시지가 있을 수 있는데, 문화적 뉘앙스를 잘 파악하고 조명하는데 신경 썼다. 한국 사람, 한국의 마음을 진정성 있게 알아내기 위해서 노력했다”면서 이해와 소통이 중요했던 촬영을 떠올렸다.
‘아줌마’에는 성인이 된 아들과 아들을 위해 살아온 어머니의 관계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단편영화를 만들 때도 여성, 모성 이야기를 많이 그렸다. 그래서 첫 장편영화도 자연스럽게 ‘엄마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했다”는 허슈밍 감독은 “성인이 되면 부모의 품을 떠나게 되는데, 나이 들어서 어머니와 저의 관계를 조명하고 돌아보고 싶었다”며 ‘아줌마’를 보는 중년 여성들이 희망의 메시지를 갖기 바랐다.
■ ‘천야일야’ 구보타 나오 감독
- 日 사회적 문제 ‘인간 증발’ 주목
- 실종된 남편 기다리는 여성 그려
- “사라지고 싶은 충동, 공감하길”
“62세 신인감독 구보타 나오입니다. 환갑이 되기 전에 장편영화 3편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는데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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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천야일야’ 스틸컷. BIFF 제공 |
그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뉴 커런츠’ 부문에 초청된 ‘천야일야’의 감독이다. 뉴 커런츠는 BIFF의 대표적인 경쟁부문으로 아시아의 보석 같은 작품을 발굴해내며 뛰어난 신예감독의 등용문이다.
1960년생인 구보타 나오 감독은 1987년부터 일본의 대표적인 공영방송 NHK 등 방송 프로그램 연출자로 경력을 쌓았다. 주로 휴먼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현재까지 100편이 넘는 방송 프로그램과 영상물을 연출했다. 2007년 다큐멘터리 콘텐츠 마켓인 ‘밉독’(MIPDoc)에서 트레이블레이저 상을 받았다. 장편 영화 데뷔작인 ‘집으로 간다’(2014)로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에 초청됐다. 천야일야는 두 번째 장편이다.
천야일야는 어떤 영화일까. 그는 “천일 밤을 기다린 여자의 하룻밤 이야기인데 진짜 천일이라는 뜻은 아니고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의미다. 30년 전 실종된 남편을 기다리는 한 여성의 이야기”라면서 “영화 기획 단계부터 완성까지 8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몸소 기다림을 체험했다. 여러 의미에서 심오하다”고 말했다. 영화 촬영은 일본 니가타현 앞바다의 사도섬에서 90%가 이뤄졌다.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원컷으로 길게 촬영된 장면이 주목할 만하다.
쇠락하는 어촌 마을에 살고 있는 중년 여성 도미코(다나카 유코)는 3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남편의 행방을 찾으며 혼자 살아간다. 그런 도미코 앞에 마찬가지로 2년 전 남편이 실종됐다는 여자 나미(오노 마치코)가 찾아온다. 나미는 납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사람인 ‘특별 실종자’ 명단에 실종된 남편을 올리고자 도미코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도미코는 나미의 남편을 찾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막상 서류 준비가 끝날 무렵 나미는 실종된 남편을 잊고 새 출발을 하겠다고 한다.
이 영화는 일본의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인간 증발’에 대해 다룬다. 그는 “20년 전 일본 전역에 실종자 300명의 증명사진이 실린 포스터가 붙었다. 납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사람들인데 이 포스터가 강렬한 인상에 남았다”면서 “실제로 실종자 중 몇 명은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내 의지로 증발했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굉장한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나도 가끔 사라지고 싶을 때가 있는데 관객들도 그런 감정을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보타 감독은 “일본과 포르투갈에 100세 영화감독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저도 그 나이까지 계속 작품 활동하고 싶다”면서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