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트곡·CM송 메들리로 박수 갈채
- 6촌형 윤동주 ‘별헤는 밤’시낭송도
1960~70년대를 풍미한 1세대 포크 가수의 대표 격인 윤형주 씨가 부산을 찾아 감동의 무대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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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크 가수 윤형주가 자신의 히트곡을 연주하고 있다. 류민수 프리랜서 |
지난 12일 오후 부산롯데호텔에서 열린 국제아카데미 19기 18주 차 강의 강연자로 나선 윤 씨는 ‘한류 문화와 꿈’이라는 주제로 미니콘서트를 곁들인 이색적인 강연을 진행했다.
1947년생으로 ‘쎄시봉 세대’인 윤 씨는 청바지 차림으로 등장해 원우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70대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그 시절 ‘젊은 오빠’의 모습 그대로였다. 1960년대 서울의 음악 감상실인 쎄시봉을 중심으로 활동한 그는 송창식과 1968년 한국 포크의 대중화에 공헌한 통기타 듀오 ‘트윈폴리오’를 결성해 쎄시봉 열풍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1970년부터 시작한 솔로 활동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윤 씨는 “통상 9~11월을 통기타 대목이라고 하는데 국제신문의 부름에 만사를 제쳐놓고 내려왔다”며 “벌써 활동한 지 56년이 됐다. 음악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 하나의 문화가 될지 정말 몰랐다. 내년이면 한국 통기타 문화 55주년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통기타 연주와 함께 히트곡 ‘조개껍질 묶어’ ‘하얀 손수건’ ‘웨딩케이크’ 등을 불러 떼창을 자아냈다.
그는 1976년 광고 회사 대표로 변신한 후에는 1400여 곡에 달하는 CM송을 제작했다. 국내 CM송계의 대부인 그는 “‘손이 가요. 손이 가’라는 농심 ‘새우깡’ CM송을 작곡해 과자 매출이 단숨에 늘었다”면서 “부산 도시철도를 타면 흘러나오는 ‘편안해서 좋아~ 빨라서 좋아~ 정확해서 좋아~ 알뜰해서 좋아~’라는 가사의 음악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윤 씨는 짧은 CM송 메들리로 추억을 소환했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윤동주의 시 ‘별헤는 밤’을 낭송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윤동주 시인은 그의 6촌형이다. 부친인 시인 겸 영문학자 고 윤영춘 교수는 조카 윤동주와 각별한 사이였다. 부친은 일본에서 유학하며 조카를 보살폈고 윤동주가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자 윤동주 의 아버지와 함께 시신을 수습하러 갈 정도였다. 집안에서 전해진 윤동주의 시는 윤형주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윤 씨는 “윤동주 시인의 별명은 ‘별의 시인’이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 ‘서시’에도 별이 두 번이나 나온다”며 “저도 별을 좋아해 별이 나오는 가사를 썼다”면서 자신의 노래 ‘두 개의 작은 별’을 들려줬다.
윤 씨는 한류 문화의 힘을 강조했다. 그는 “2010년 미국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전문가들이 모여 한류 열풍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를 놓고 논의했을 때 대부분 ‘5, 6년이면 끝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현재 어떤가. 12년이 흐른 지금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K팝 열풍은 물론 넷플릭스 랭킹 상위권의 상당수가 한국 드라마 가 차지한다”며 “한류 열풍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문화에 자부심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