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도, 태풍도 어느 순간 물러가고 드높은 하늘과 함께 이제 정말 가을이 왔다. 가을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미와 추억을 갖지만, 박물관 종사자에게는 정말 답사하기 좋은 계절이다. 그리고 답사의 백미는 옛 절터를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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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비사명 암키와. 부산박물관 제공 |
부산은 일찍부터 도시화가 진행되어 많은 유적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문화유산을 답사하면서 역사를 공부하기에 적당한 여러 곳 있다. 그중 하나가 만덕사지이다.
만덕사지는 부산 북구 만덕동에 위치하며, 부산시기념물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그리고 부산박물관에서 진행한 발굴조사를 통해 가람배치와 존속기간 등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밝혀졌으나 사찰명에 대해서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발굴조사 결과, 만덕사라고 증명할 수 있는 근거 자료가 확인되지 않고 오히려 사찰명을 알려주는 기비사 명문기와가 다량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기비사에 대한 기록은 문헌에서 찾을 수 없으나 일본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금산사명향완의 명문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명문은 금산사 향완을 주조하는데 기비사 주지 삼중대사 혜거가 동량으로 참여하였다는 것이다. 이 향완은 고려시대 때 삼중대사 혜거가 주지로 주석하였던 기비사가 실재하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다. 기비에 관한 내용은 조선시대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 지금의 만덕고개를 기비현(其比峴)이라고 부르는 지명이 있으며, 기비사의 영향으로 만덕고개를 기비현으로 불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만덕사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나오며, 고려 충혜왕의 서자 석기가 머물렀던 사찰이다. 고려 시기에는 만덕사가 전국에 여러 곳 있었기 때문에 어느 지역의 만덕사가 석기가 있었던 만덕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만덕에 대한 기록은 1740년에 편찬된 ‘동래부지’에 ‘서면 만덕리는 관문으로부터 12리 떨어져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동래지방에서 만덕이라는 지명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최초의 기록이다. 부산 만덕사의 호칭은 만덕동에 있는 사찰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연구자는 만덕사지를 만덕동사지라고 부른다. 이렇듯 고려 초기에 건립되어 조선 초기까지 존속하면서 고려 왕실 사찰에 버금가는 위상을 지녔던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시대 대사찰이 아직도 자기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어째 씁쓸하기만 하다. 이번 가을에는 만덕사지를 둘러보면서 만덕사인지 기비사인지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 만덕사지 발굴유물과 3층 석탑은 현재 부산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