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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1> 김밥으로 들여다본 부산

김밥에 성게알·명란·생선회…부산사람처럼 뭔들 못 품으랴

  • 최원준 시인 · 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11-08 19:18:25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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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들여다보면 한 국가의 역사와 그 민족의 정체성을 읽을 수가 있다. 풍습과 생활상, 사람들의 기질 또한 파악할 수가 있다. 흔하고 소소한 식재료, 투박한 음식 한 그릇이지만, 이들이 한 시대를 너끈히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점에서 소홀하거나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음식은 소소하지만 대단하고, 잡다하지만 중요한 인문적 텍스트이다. 음식에 담긴 시대적 담론을 풀어내다 보면 문화인류학의 근간과 마주하게 된다. 음식과 음식문화를 통해 지역의 정체성과 지역민의 기질을 읽고 공유하는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을 새롭게 격주로 연재한다.


- 근현대 수많은 이주민 몰려오며
- 오만 가지 식재료 융합돼 재창조
- 부산식 음식문화만 가능한 포용성

- 일본식 김밥도 한국식으로 조합
- 팔도 이주민 고향 재료 고명 올려
- 항구도시 개방성이 만든 진수성찬

수많은 이주민이 부산에 터를 잡으면서, 그들의 고향 음식이 ‘부산의 음식’으로 융합·정착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질적인 음식문화끼리 충돌-이해-수용-공유의 단계를 거쳐 새로운 동질성을 가지는 것. 이러한 과정을 슬기롭게 극복한 음식이 바로 ‘부산 음식’이다. 이것이 ‘가마솥의 음식’이라 지칭되는 부산 음식의 정체성이다.
성게알김밥 차림이 부산 바닷가 풍경과 마침맞게 어우러진다.
부산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더러 개방성과 수용성 그리고 다양성과 실용성을 든다. 이질적인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것 품어주니 오만 가지 특질이 다양하게 반영되고 정착하는 곳이 부산이다. 이를 잘 반영하는 음식 중 하나가 ‘부산의 김밥’이다. 부산에서 개발되거나 정착한 김밥의 다양한 유형을 들여다보면 부산만의 특정한 성향을 알 수가 있다. 우선 부산의 김밥이 창의적이라는 것. 상상 이상의 고명과 조합해 새로운 김밥을 만들어내는데, 몇몇 조합은 무릎을 칠 정도다.

우리 부산 사람들의 창의성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김밥 음식 중 하나가 ‘비빔 김밥’이다. 대접에 김밥을 썰어 넣고 그 위에 고추장 양념과 참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김 가루를 뿌려 비벼서 먹는 음식이다. 비빔 김밥은 술 한잔 먹고 가락국수로 해장하기 위해 포장마차에 드나들던 단골손님들이 개발한 음식이다. 김밥을 쓱쓱 비벼서 술추렴 안주 겸 출출한 허기를 채우는 끼니로 개발된 것이다.

부산 국제시장의 먹자골목에서 먹음직한 충무김밥을 장만하는 모습.
물론 처음에는 일부 단골들이 그렇게 먹게 해달라고 주문했을 것이다. 이를 주인장이 수용해 정식 메뉴가 된 것이다. 요즘 ‘먹방’에서 소비자가 직접 음식을 개발하여 정식 출시하는 참여형 음식 상품개발의 원조라고나 할까?

비싼 고래고기를 먹으면서도 부산 사람의 실용성과 독창성은 빛을 발한다. 고래고기 한 접시로 소주 두어 병도 못 먹는 게 요즘 현실. 이때 단골들은 고래고기로는 채워지지 않는 포만감을 위해 충무김밥을 부탁한다. 주인장이 충무김밥에다 따로 장만한 명란을 고명으로 제공한다. 이게 ‘신의 한 수’다. 고소하고 짭조름한 ‘명란 충무김밥’이 고래고기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고 끼니도 해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음식이 요즘 슬슬 유행하는 ‘고래밥’이다.

■ 김과 밥의 맛있는 변주곡

‘오리지널’에 가까운 김밥. 참깨 흩뿌리니 한결 맛깔스럽다.
부산 음식의 특징 중 하나가 음식의 ‘쌍방향 소통’이다. 파는 이는 만들어 팔고, 먹는 이는 먹기만 하는 방식이 아닌, 서로 만족하는 음식의 정보를 공유·수용하여, 모두 만족하는 음식으로 만들어 나간다. 이는 팔도의 이주민들이 고향의 음식 재료와 음식문화를 부산에서 서로 융화하면서, 이질적인 조합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튼튼한 동질성을 갖는 방식과 흡사하다. 그러하기에 부산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김밥이 새로이 탄생한다. 한 점 김밥 속에서도 부산의 정체성 중 하나인 ‘다양성’과 ‘공동체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극강의 비주얼’ 새우튀김김밥.
그 비근한 예로 ‘성게알 김밥’을 들 수가 있겠다. 김밥 위에 싱싱한 부산 바다를 얹어 먹듯 성게알을 고명으로 올려 먹는 김밥이다. 누가 처음 김밥 위에 성게알을 올려 먹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양한 고명을 김밥에 올려 먹는 일은 부산 사람들에게는 일상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생선회를 올리면 ‘생선회 김밥’, 산나물을 올리면 ‘산나물 김밥’, 이런 식이다.

중요한 것은, 맛있고 특별하면 격의 없이 받아들이고 공유하는 것이 부산 사람이다. 이 관점에서 우리 부산 사람의 기질을 엿볼 수 있다. 사람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듯이 음식의 다양성 또한 품 넓게 열어두고 있다. 그리고 우리 공동체의 입맛에 맞겠다 싶으면 공유하는 유연성 또한 갖추고 있는 것이다.

■ 수용과 변신? 두렵지 않아!

고래고기와 함께 나오는 명란충무김밥. 일명 고래밥.
필자와 특별한 인연의 ‘일본인 딸’ 아오이 마리노(靑井 眞梨乃)는 특별한 날에 김밥을 싼다. 일본의 김밥 노리마키(海苔-券)를 닮기도 했고 우리 퓨전 김밥과도 닮았다. 육즙 가득한 붉은 고기 살 돈카스로 ‘돈카스 김밥’을 싸기도 하고, 새우튀김을 통째 넣고 꼬마김밥을 싸기도 한다. 먹으면서 늘 일본식과 한국식의 절묘한 조합이 맛으로 빛나는 김밥이라 생각해왔다. 일본과 음식 교류가 특히 빈번했던 부산으로서는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다.

국제시장 먹자골목에 들어서면 부산의 대표적인 먹거리들을 난전에서 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파는 음식은 비빔당면과 충무김밥. 비빔당면은 그렇다 쳐도 다른 지역 향토음식인 충무김밥이라니. 그것도 수십 년을 자리 잡고 터줏대감 행세를 한다. 이 또한 부산 사람들의 개방적인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리상의 특성을 잘 발현하여 만들어진 김밥도 있다. 인근 바다에서 낚시하면서 한참을 물고기 손맛을 보고 나면 출출해진다. 그러면 소주 한잔에 잡은 생선으로 회를 떠 진미를 본다. 술잔이 한 순배 돌면 미리 준비해온 김밥을 꺼낸다. 소주 한 잔 또 입에 머금고는 회 초장 듬뿍 묻힌 생선회를 김밥에 올려 한입 크게 먹는 것이다. 일명 ‘생선회 김밥’.

등산할 때도 가장 편하고 간단한 도시락이 김밥 도시락이다. 봄날 산모롱이로 돌아들다 보면 산나물이 지천인지라 즉석에서 산나물을 올려서 먹는 ‘산나물 김밥’ 또한 봄을 몸으로 품는 음식이다. 반찬으로 가져간 봄나물로 올려 먹는 ‘봄나물 김밥’ 또한 별미다.

우리 부산처럼 다양한 지역의 구성원을 품고 있는 공동체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를 잘 반영하는 김밥이 있으니 ‘꼬마김밥’이다. 열 가지 이상 다양한 ‘속 고명’을 준비해 두고 고객 입맛에 따라 즉석에서 말아주는 꼬마김밥. 고객의 요구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다양성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지역을 읽는 텍스트, 음식

떡볶이 양념을 ‘영접’해 새로운 맛으로 거듭난 김말이.
김말이는 또 어떤가? 김말이는 이미 김밥의 영역을 넘어 튀김의 범주에까지 넘나들고 있다. 떡볶이와 어묵, 튀김 등속을 파는 분식집에서 튀김 진열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 김말이는 붉은 떡볶이 양념장에 찍어 먹는 것이 대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뛰어넘을 정도로 개방적인 성정을 가졌다. 이처럼 부산 사람이 무심이 먹는 다양한 김밥 단 한 줄에도, 부산다움과 부산 기질이 고명처럼 차곡차곡 들어차 있다. 그래서 ‘음식은 지역을 읽어내는 텍스트’라고 정의 내리기도 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것에서 벗어나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창의적인 생각으로 꾸준히 실험하면서 다양한 결과를 수용하고 공유하는 부산 사람들. 우리가 무시로 먹는 김밥에서도 그 기질이 발현되는 것을 보면 음식은 과연 ‘문화인류학의 근원’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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