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손은 청교도 이주민 중 명문 가문에서 6대손으로 태어났다. 1804년 미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이 고향. 2녀 1남 중 둘째로 9세 때 허리를 다쳐 1년 넘게 병상에서 지내며 책과 가까워졌다. 이때 발을 조금 절게 됐다. 호손은 자기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 은둔하는 ‘올빼미’ 같은 생활을 즐겨 뭔가 비밀을 간직한 작가라는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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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대니얼 호손. |
15세 때 작가가 될 자질을 드러냈다. 2년 뒤 양가 지원에 힘입어 메인주 명문 보든대에 들어갔다. 24세에 첫 장편소설 ‘팬쇼’를 자비로 펴냈으나 반응이 시들해 남은 책을 버렸다. 31세까지 소설을 꾸준히 썼고 이듬해 6개월간 보스턴에서 잡지사 편집 일을 배웠다. 35~36세 2년간은 보스턴 세관 공무원이었다. 42~45세 세일럼 세관 세입 감독관으로 일하며 ‘주홍글자’집필에 들어갔다.
49세 때 대학 동문이자 친구인 미 11대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가 지명해 영국 리버풀 주재 영사가 됐다. 56세에 마지막 작품인 ‘대리석 목신상’을 펴냈다. 1864년 5월 피어스 전 대통령과 여행하다가 뉴햄프셔주 플리머스에서 잠자다 60세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