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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5> 길 위 섞이고 곁들어진 음식들

노포는 고된 일상의 휴게소…부산, 곁들임의 미학으로 맛객 성지되다

  • 최원준 시인 · 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3-01-03 18:54:12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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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친 심신 달래는 노점 메뉴들
- 부산은 국제도시답게 다채로워
- 호기심 많고 개척 정신도 강해

- 중국 청나라 때 물 건너온 호떡
- 견과류 소 넣어 씨앗호떡 탄생
- 남포동 비프광장 K-디저트로

- 광복로 골목마다 줄지은 노점
- 파전과 오징어무침 함께 즐겨

길 위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출발과 도착, 그 과정에 늘 길이 함께한다는 뜻이다. 그 길에는 잠시 쉬어가는 쉼터들도 있다. 문장으로 치자면 쉼표 같은 것이겠다. 잠시의 쉼은 꿀맛 같다. 가는 길이 거칠고 험할수록 길 위의 쉼터는 그 빛을 발한다.
부산판 K-디저트로 확고히 자리잡은 씨앗호떡을 주인장이 손님에게 건네고 있다.
바삐 돌아가는 도시의 삶 속에서도 길은 존재한다. 만나고 헤어지는 그 길 위에서 잠깐 마음이 허기질 때, 그래서 잠시 심신을 내려놓아야겠다 싶을 때 간이 휴게소처럼 나타나는 장소, ‘길 위의 음식점’인 노포(路鋪)들이다. 특히 부산은 ‘길 위의 가게’들이 많은 도시이다. 팔도의 이주민이 다양한 이유로 고향을 등진 채 이역의 땅에서 지친 몸을 뉘던 곳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이 빈손, 맨몸으로 새로운 환경을 개척해야 했다. 모두 길 위 노포에서 시작한 일들이다.

이들에게 노포는 ‘행복’이란 목적지의 중간 기착지, 잠시 쉬어가는 ‘마음의 객잔(客棧)’ 같은 것이다. 서민에게는 노동의 시간 중간중간 잠시 노동력을 충전하는 주유소 같은 곳, 아니면 다시 길 떠나기 전 따뜻한 음식 한 그릇으로 마음 추스르는 환승역 같은 곳이기도 하다.

한 지역의 노포를 들여다보면 그 지역 특성과 기질, 문화다양성을 읽을 수 있다. 부산 또한 노포의 음식들에서 이주민이 간직한 자기 지역의 음식문화가 투영되고, 국제도시에 모여든 각국 외국인에 의해 다양한 민족의 음식들 또한 덧칠되어 있다. 그렇기에 부산의 노포 음식은 매우 다채롭고 ‘글로벌’하다. 그런데 자세히 그 음식들을 들여다보면 부산의 성정을 잘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절묘한 조화의 맛을 선사하는 파전과 오징어무침.
■ 노포(路鋪), 그 도시의 느낌

다시 말해 몇몇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뒤섞음’과 ‘곁들임’이다. 각 지역의 음식이나 식재료가 서로 뒤섞이고 곁들여지면서, 음식의 맛과 식감을 서로 자극하고 포용하며 새로운 맛으로 발현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산 음식 문화 속 뒤섞음과 곁들임은 개개의 음식을 인정하면서도 서로 함께함으로써 새로운 통합의 맛을 보는 방식이다. 부산 사람들의 맛에 대한 호기심, 또는 개척 정신의 표현이기도 하다. 요즘 유행하는 대표적인 음식이 뒤섞음의 ‘씨앗호떡’과 ‘회무침’, 곁들임의 ‘파전과 오징어무침’, ‘비빔만두와 야채무침’ 등이다.

길 위 뒤섞음의 음식, 씨앗호떡은 남포동 비프(BIFF)광장 노포에서 대중화하여 전국구 음식이 되었다. 전국의 청춘들이 씨앗호떡을 먹고 인증샷을 찍어야만 부산에 왔다고 인정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원래 호떡은 중국 청나라 때 우리나라로 건너온 음식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원조는 아니다. 후빙(胡餠)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오랑캐의 떡’이다. 중앙아시아 쪽 민족은 밀 농사가 번성하여 밀가루로 반죽한 빵의 형태를 구워 주식으로 먹었다. 이것이 중국으로 전파되어 고기나 채소 등의 소를 넣어 구워 먹었던 것이 호떡이다.

■ 부산판 K-디저트

부산 남포동 거리에서 여행객이 씨앗호떡을 기다린다.
구한말 청국 상인들에 의해 들어와 먹기 시작한 우리나라 호떡은 밀가루 반죽에 조청이나 설탕 등을 소로 넣어 달콤한 맛으로 먹었다. 그러던 것이 한국전쟁 이후 식량 원조를 통해 반입된 밀가루로 본격적인 주전부리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부산에서는 식용유나 쇼트닝에 구워 더 고소한 맛을 냈고, 이제는 버터로 극강의 고소함을 구현하기도 한다. 그중 화룡점정은 호떡 안에 각종 견과류를 넉넉히 넣은 씨앗호떡의 탄생이다. 고소한 버터를 녹여 자글자글 튀겨내어 겉은 바싹하면서 고소하고, 속은 달콤한 꿀물에 각종 견과류가 오독오독 씹히는 것이 완벽한 ‘부산판 K-디저트’로 등극했다.

이렇듯 호떡은 부산에서 환골탈태한다. 기존 호떡 속에다 다양한 견과류를 섞어 담아냄으로써 맛과 영양, 품격과 고부가가치를 모두 실현한 것이다.

■ 인기 불변 회무침

여전히 인기를 누리는 회무침.
뒤섞음의 음식 또 하나는 회무침이다. 부산은 식당마다 밥상에 회무침을 낼 정도로 즐겨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호주머니가 가볍던 시절, 비교적 싼 생선을 선어 형태로 장만해 두었다가 삶은 오징어, 소라 등의 해물과 온갖 제철 채소를 뒤섞어 쓱쓱 비벼 먹던 서민 음식이었다.

새콤달콤하면서도 화끈한 매운맛이 입맛을 자극하면서 진한 생선회 맛과 채소의 아삭한 식감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었던, 뒤섞음의 매력이 중독적인 음식이었다. 지금도 자갈치시장 인근 노점에는 회무침을 파는 집들이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 우리는 만나야 한다

곁들임의 음식 중 앞자리에는 ‘파전과 오징어무침’이 있다. 광복로 패션거리 골목에는 노포들이 길게 줄지어 군것질 음식을 파는데, 특이한 점은 모두 파전에 오징어무침을 곁들여 먹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곁들여 먹는 것을 부산 사람들은 ‘붙여서 먹는다’고 한다. 다다익선(多多益善), ‘맛있는 것에 맛있는 것을 곁들이면 더 맛있다’는 논리다.

부산 역사 속 파전의 이력은 예사롭지 않다. 특히 동래파전은 동래도호부 시절 외국 사신이나 중앙 고위 관리를 접대하던 교방청(기생 양성기관)의 연향(宴享) 음식 중 하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교방청 기생들이 면천(免賤)하여 지역 토호나 양반들이 출입하는 기생집을 열어 이 파전을 제공하기도 했다. 광복 뒤 여염집 여인들이 동래장에서 팔기 시작하면서 대중화된 파전은 부산 사람의 ‘심심풀이 파적’ 음식으로, 막걸리와 궁합을 맞추는 안주로 사랑받아 왔다.

파전과 오징어무침의 곁들임은, 기름에 지져낸 파전의 향긋함과 고소함, 한때 기장에서 다량으로 어획된 오징어의 들큰함과 쫄깃함, 여기에다 새콤달콤매콤하게 초장에 무쳐서 여러 감각의 맛을 곁들여 즐기는 것이다.

요즘은 대구의 ‘납작만두와 무침회를 곁들이는 음식문화’를 수용해 바싹하게 잘 구운 당면만두에 새콤달콤한 오징어무침이나 야채무침과 곁들여 먹는 ‘비빔만두’라는 메뉴를 만들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미식도시 부산의 최전선

한때 ‘길보드챠트’라는 비공식 음원 집계가 있었다. 길거리 손수레에서 파는 해적 음반 판매 집계를 말하는 것으로, 비록 비공식이긴 했으나 일반인이 선호하는 시즌별 음악을 파악할 수 있었던 좋은 표본이었다. 노포의 음식도 마찬가지다. 노포에서 최근 유행하는 음식을 통해 그 지역의 음식 트렌드를 짚을 수 있다. 지역 음식문화의 현재를 가장 빠르게 반영하여 보여주기 때문이다. 팔도의 청춘들에 의해 ‘부산 길거리 음식 베스트 10’이 온라인에서 활발히 공유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문턱이 낮은 노포에서 미래의 다양한 부산 음식을 예견할 수 있다. 부산의 새로운 음식문화 경향을 읽어내는 ‘부산 음식의 전령사’ 역할을 다채로운 음식을 통해 시도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위생 등 여러 요건이 확실히 충족되어야 함을 전제로, 부산을 상징하는 노포들을 양성화하여 도심 골목, 문화역사관광지역 등지에 조성해 ‘부산 음식문화의 전시장’으로 널리 활용해야 한다. 이들을 통해 ‘미식도시(美食都市)’를 꿈꾸는 부산 음식문화의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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