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BTS, 블랙핑크,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 한국의 문화콘텐츠인 K-컬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그렇다면 19세기 말,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조선의 화가는 누구였을까? 바로 기산 김준근(생몰년 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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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국 김준근’이란 서명이 선명한 기산 김준근의 산수도. |
그는 부산과 원산 등 개항장에서 활동한 화가로 우리에게는 이른바 ‘기산풍속도’와 종교 서적인 ‘천로역정’의 삽화를 그린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확인되는 김준근의 작품 1500여 점 중 약 1300여 점이 유럽 북미 아시아 등 세계 여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부분은 서양인에게 생경하게 비친 우리 민족 고유의 생업 세시풍속 관혼상제 놀이 신앙 형벌 등을 담아낸 풍속화이다. 조선인의 일상을 담은 그의 풍속화는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교관 선교사 상인 등 외국인을 통해 세계로 퍼져나가, 서구 세계에 조선을 널리 알렸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렇듯 기산이 남긴 다종다양하고 압도적 수량의 풍속화로 ‘김준근=풍속화가’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기산의 그림은 풍속화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부산박물관 소장 ‘기산 김준근 산수도’를 살펴보면 낮은 언덕과 유유히 흐르는 강물, 여러 채 가옥과 다양한 나무를 그린 하단의 전경과, 높게 솟은 산봉우리를 그린 상단의 후경을 조화롭게 배치했다. 적절한 농담 변화에 가는 선과 작은 점획을 더해 산과 나무를 표현했다.
단순하지만 짜임새 있는 구도와 깔끔한 필치, 주산(主山)과 원산(遠山)의 대비 등 원근감이 돋보인다. 김준근이 당시 유행한 남종화풍을 능숙하게 구사했음을 알 수 있다.
화면 좌측 상단에는 ‘대한국 김준근(大韓國 金俊根)’이라 서명하고 낙관을 찍었다. ‘대한국’으로 보아 대한제국기(1897~1910) 무렵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에 국호를 밝힌 것은 나라 밖으로 수출하기 위해 그린 그림을 뜻한다. 통신사가 일본에서 그려준 그림, 조선 사신이 일본으로 가져갔거나 조선에서 제작해 일본으로 수출한 그림에는 ‘조선(朝鮮)’ ‘동화(東華)’ 등 조선을 지칭하는 국호를 적었다.
당시 일본에서 학문적 소양을 드러내고자 했던 무사와 상인 사이에서 남종화가 인기를 끌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작품 역시 일본으로 수출하기 위해 그린 그림으로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노안도(蘆雁圖, 갈대와 기러기), 꽃과 새, 호랑이 등 19세기 대일교역용으로 인기 높은 주제이면서 ‘조선(朝鮮)’ ‘한국(韓國)’ 등 국호를 밝힌 김준근의 그림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그렇다면 기산 김준근은 기존에 널리 알려진, 서양인 상대의 ‘풍속화가’로 규정짓기보다 급변하는 시장 수요에 빠르게 부응하여 동서양 외국인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한 다양한 상업용 그림을 제작한 적극적 ‘수출화가’로 확장할 수 있겠다.
‘산수도’ 등 그간 부산박물관에서 수집한 ‘수출화가 기산 김준근’의 작품 7점은 다음 달 12일까지 부산박물관 미술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