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도시 연구한 학자 손세관
- 옛 동서양 15곳 담은 작품 소개
- 도법·시대상 등 꿰뚫는 분석
- 조선 동궐도는 유럽 화풍 접목
우리가 사는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세상이다. 사진은 기본이고, 더 뛰어난 기술도 있다. 이런 기술이 발명되기 전의 도시들은 어떤 풍경이었을까. 건축과 도시를 연구하는 학자 손세관의 ‘도시의 만화경’에서 옛 도시의 풍경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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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궐도’ 오블리크 작도법에 진경산수화 기법을 섞은 이 그림은 빛나는 우리의 국보다. ⓒ고려대학교 박물관·도서출판 집 제공 |
이 책은 빈 피렌체 베네치아 한양 등 동서양 열다섯 도시의 도시그림을 소개한다. 저자는 대학원 시절부터 중앙대 명예교수인 현재까지 동·서양의 도시와 주거문화에 관해 꾸준히 연구해왔다.
세밀한 도시그림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그래서 도시그림을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도시 건축 미술 역사를 두루 꿰뚫고 있어야 한다. 저자는 지금까지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 고백이 틀리지 않을 만큼 도시그림과 이야기가 흥미롭다. 언제 누가 왜 그렸는지, 특징은 무엇인지, 역사적 중요성 등 그림 소개는 기본이다. 그림을 그린 시점을 중심으로 도시의 기원과 성장 및 변화까지 설명한다. 엄선한 450장가량의 도시 그림 덕에 보는 즐거움이 넘친다.
우리 도시의 옛 모습이 궁금해 ‘제14화 서울-12폭 병풍에 담은 19세기 도성 밖 한양의 풍경’부터 펼쳤다. 12폭 병풍 그림은 19세기 초반에 그린 ‘경기감영도’이다. 누가 그렸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림 윗부분에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삼각산 등 산세가 펼쳐진다.
중앙에는 감영 본관 건물이 있고, 주변의 수많은 민가와 상업시설도 묘사됐다. 돈의문 영은문 모화관 같은 도성 밖 명소도 세세히 그렸고 시민의 다양한 삶과 저잣거리 풍경도 생생하다. 저자는 조선 후기의 생생함을 보여주는 것이 이 그림의 가치라고 설명한다. 또 다른 그림 ‘동궐도’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친 ‘동궐’의 전체 모습을 그렸다. 생생하면서도 아름답게 빛나는 우리의 국보다. 순조 시절 도화서 화원들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감영도와 동궐도는 같은 방식으로 그렸다. ‘평행사선 부감법’, 서양 표현으로는 ‘오블리크 작도’라고 한다. 유럽에서 시작돼 중국을 거쳐 조선에 전해졌다. 소실점을 무시하고 평행한 직선은 끝까지 평행하게 그리는 기법이다. 사물의 정면을 강조하면서 3차원으로 표현한다. 많은 건물이나 궁궐 같은 집합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 두 그림에는 진경산수화 기법도 사용됐다. 건물을 앉히고 남은 여백은 진경산수화로 채워 넣었다. 저자는 서양도법과 조선도법의 절묘한 결합을 보여준 창의적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림을 계속 보고 있으니, 한양 거리 어디쯤 와 있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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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위된 피렌체’ 1529년 피렌체가 신성로마제국 군대에 10개월 동안 포위된 상황을 조르조 바사리와 제자들이 그린 것이다.
ⓒ Palazzo Vecchio, Wikimedia Commons·도서출판 집 제공 |
서양 도시로 가보자. 16세기에 활동한 탁월한 건축가이자 화가인 조르조 바사리와 제자들이 그린 ‘포위된 피렌체’는 1529년 피렌체가 신성로마제국 군대에 10개월 동안 포위된 상황을 보여준다. 그림의 사실적 묘사에 놀란 코지모 1세의 물음에 대한 바사리의 대답은 이렇다.
“도시 전체를 한 지점에서 그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일단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그곳에서 한 장소를 그린 다음 위치를 옮겨서 다른 장소를 그려가면서 범위를 넓혀갑니다. 그런 다음 한 지점을 정해 그동안 그린 그림을 모아서 녹여내면 자연스러운 도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바사리는 도시의 높은 곳을 다니면서 여러 장의 그림을 그린 다음 그것을 조합했다. 피렌체를 내려다보는 바사리와 제자들 모습이 상상된다.
이 책은 동서양의 15곳 도시를 담은 그림을 보면서 당대의 미술 사회 역사도 알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저자 손세관 교수는 “이렇게 열다섯 도시를 다 읽고 나면 동서양의 도시 문명을 비교론적 관점에서 이해하게 된다”면서 이 책은 인류가 이룬 “도시문명의 만화경”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