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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다빈치의 르네상스 꽃핀, 예술에 패션 입힌 도시

박선정 소장의 달리 인문여행 <8> 밀라노

  •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
  •  |   입력 : 2023-02-26 18:28:26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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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성당 두오모 광장 중심으로
- ‘패션도시’다운 화려한 쇼핑몰
- 브레라 미술관·스칼라 극장 등
- 성·저택 옛 것에 현대 하나 돼

-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피에타’
- 성당 벽에 그려진 ‘최후의 만찬’
- 프레스코화로 뒤덮힌 수녀원 등
- 예술이 된 기독교 면모도 오롯

유럽에서는 열차의 침대칸에 몸을 누인 채 밤을 넘고 산을 넘는 작은 사치를 누려볼 만하다. 잘츠부르크 중앙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어둠을 뚫고 알프스 능선을 따라 밤새 달리더니 아침 해가 떠오를 때쯤 이탈리아 반도의 시작 지점인 밀라노에서 멈췄다. 역을 빠져나와 다다른 도심의 모습은 중세 도시의 배경에 가장 화려한 현시대 속 공간을 합성해놓은 느낌이다. 무채색의 중세풍 건물들 속에서 화려하고 다양한 색채의 현대적 감각이 더욱 눈에 띈다. 곳곳의 바닥에 깔린 아름다운 타일에서부터 길거리 쇼윈도의 상품들, 그리고 거리에서 지나치는 행인들의 옷차림에서 그러하다.



스포르체스코 성의 한 방에 전시되어 있는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미완성 작품. 론다니니의 피에타.
유럽의 많은 도시가 그러하듯 이탈리아의 도시들 역시 자기만의 개성을 지녔다.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지리적 차이가 초래한 기후의 차이만큼이나 각 도시는 자신만의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다. 밀라노도 그렇다. 알프스산과 이웃하고 있으면서도 넓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평야의 가운데’라는 의미를 지닌 ‘메디올라눔(Mediolanum)’이라 불렸고, 그것이 지금의 ‘밀라노’가 되었다. 척박한 남부 지방과는 달리 주요 농작물인 쌀과 보리농사에 유리하고 지정학적으로 동서남북을 잇는 편리함마저 갖고 있었기에 이곳은 오래전부터 행정과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서로마제국의 수도였던 313년에는 밀라노 칙령으로 잘 알려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종교적 자유선언을 통해 종교의 중심지로서의 명성마저 얻게 되었다. 이후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더불어 다소 침체기를 겪기도 하지만, 1200년대 후반 이 지역을 다스렸던 비스콘티 가문과 스포르차 가문에 의해 도시는 다시 상업·문화적 발전을 이어간다. 이후 1700년경에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으면서 빈의 문화를 흡수 재창조하는 등 문화적 도약을 이루는데, 브레라 미술관과 스칼라 극장이 지어진 것도 이 시기다. 근대사의 격변 속에서 인근 강국들의 속국이 되기도 하고 세계 대전의 전범국이자 패전국의 도시라는 불명예도 겪지만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다시금 통일 이탈리아 공화국의 경제 금융 행정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는 도시다. 게다가 최근 팬데믹 상황에서는 감염자 수의 급증으로 도시가 한때 폐쇄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모든 비극과 절망을 극복한 채 2023년을 새롭게 시작하는 밀라노는 분명 희망과 설렘으로 들떠 있다.



가톨릭의 영향 아래 있던 유럽 대부분의 도시들처럼 밀라노 역시 대성당인 두오모를 중심으로 한 원형의 틀을 갖고 있다. 세계 3대 고딕 성당 중 하나인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은 14세기 말 첫 공사를 시작한 이후 다양한 건축가들과 후원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변경되고 다듬어지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그 후원자들 중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도 있는데 그는 이탈리아 황제 대관식을 이 성당에서 거행했다. 이런 이유로 135개의 첨탑과 함께 서 있는 3159개의 조각상 중에는 나폴레옹의 조각상도 있다고 한다. 성당의 첨탑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성인과 영웅들의 조각상들 위로 우뚝 선 금빛 성상이 유독 눈에 띄는데, 108.5m의 마돈니나(Madonnina)다. 평지라서 날씨가 좋은 날이면 아주 먼 거리에서도 이 성모상을 볼 수 있게 설계한 것이다.



조명을 밝힌 밀라노 두오모 성당. 첨탑 가장 높은 데서 빛나는 성모상이 눈에 띈다.
유럽 대부분의 구도심처럼 밀라노의 도심 역시 걷기에 좋다. 두오모 성당을 중심으로 왼쪽 방향으로 원을 그리듯이 걸으면 대부분 주요 관광지를 둘러 볼 수 있다. 성당을 등지고 선 채 두오모 광장 오른쪽을 보면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국왕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이름을 딴 거대한 쇼핑몰이 눈에 들어온다. ‘밀라노의 살롱’이라는 애칭에 걸맞게 거리 안쪽은 엄청난 손님으로 가득하다. 두오모 광장에서 스칼라 극장이 있는 광장까지의 지붕을 높은 유리로 덮은 이 아케이드는 두오모의 대표적인 쇼핑거리이기도 하다. 사람들과 가게들의 흥겨운 북적거림을 즐기면서 이 아케이드를 통과하면 스칼라 광장이 나타난다. 다시 걸음을 옮겨 이 크지 않은 광장을 관통한 후 오른쪽으로 뻗어 있는 브레라 거리를 따라가면 그곳에 ‘브레라 미술관’이 있다. 바티칸 및 우피치 미술관과 함께 이탈리아의 3대 미술관이다. 북이탈리아 작가들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중세와 르네상스, 그리고 바로크와 로코코 이후에 이르기까지의 미술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거대한 미술 텍스트 같은 특별한 미술관이기도 하다.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와 하예즈의 <키스> 등의 대작들이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산 마우리치오 성당 내부. 수녀의 공간과 일반인들의 공간이 분리된 성전과 벽을 가득 채운 프레스코화가 특이하다.
미술관을 나와 다시 오른쪽으로 길을 따라 걸으면 거대한 성곽이 나타난다. ‘스포르체스코 성’이다. 주요 군사 요새로서, 한때는 밀라노의 주인이었던 몇몇 가문들의 저택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곳에는 미켈란젤로가 임종 직전까지 다듬고 있었던 그의 마지막 미완성의 ‘피에타’가 있다. 89세 고령의 미켈란젤로가 8여 년 동안 끌과 망치로 다듬고 있었던 이 피에타는 바티칸의 그 완벽한 피에타상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어딘지 불안정하면서도 슬픔을 넘어 오히려 평화로움마저 전해지는 이 조각상은 아들의 주검을 끌어안은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라, 늙은 아들이 더 노쇠한 어머니를 등에 업은 듯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죽음을 앞둔 미켈란젤로가 어릴 적 세상을 떠난 자신의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자신의 죽음 너머의 부활을 통해 그리운 어머니의 품에 다시 안길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담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피에타에 대한 여운에 젖은 채 성을 나와 오른쪽으로 조금만 걷다 보면 그곳에 크지 않은 성당 하나가 보인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아’ 성당으로 그 옆 작은 건물에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다. 이 위대한 그림은 성전이 아니라 옆 수도원의 식당 벽에 템페라로 그린 벽화다.

여행이 지닌 매력은 길을 걷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데 있지 않을까. 정보를 통해, 또는 지식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직접 재확인하는 것도 심장 뛰는 일이지만 우연히 닿은 발걸음에서 조우하는 준비되지 않은 놀람과 감탄은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아닐 수 없다. 늘 거기 있었는데도 내가 못 보았기에 몰랐던 것, 그래서 심지어 없다고 생각했던 것, 아니, 본 적이 없기에 없다는 것조차 생각해보지 못한 것을 우연히 발견하는 순간 말이다. 우리의 일상도 그렇다. 거기 있는 데도 내가 못 보았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수많은 것. 여행은 그런 것들을 깨닫게 해 준다. 밀라노에서는 산 마우리치오 성당이 그러하다. 최후의 만찬을 감상하고 도심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있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성당이다. 수녀원 성당이었던 이곳은 그 구조에서부터 여느 성당과는 다른데, 하나의 제대를 중앙에 둔 채 수녀들이 미사를 드리는 공간과 일반 신자들의 공간이 가운데 벽으로 분리되어 있다. 게다가 작은 성당의 벽은 온통 프레스코화로 덮여 있어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이다. 타임머신을 탄 듯 잠시나마 중세 수녀원의 분위기에 오롯이 빠져들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밀라노는 완전히 다른 듯한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하나가 된 채 살아서 펄떡거리는 도시다. 웅장한 두오모 성당과 평지의 요새인 스포르체스코 성과 프레스코화로 가득한 산 마우리치오 성당과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는 수도자들의 식당, 그리고 미술학생과 시민을 위해 친절한 브레라 미술관과 음악 공연의 대명사인 라스칼라 극장이 있는 역사와 예술의 도시다. 오래전 돌을 깎고 쌓아 만든 고풍스런 도시 위에 화려한 색감의 다양한 현대적 패션과 상품, 그리고 문화적인 향기까지를 더하면서 밀라노는 그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600년이 넘는 역사를 품은 두오모 성당에서 성스럽고 오래된 것들에 흠뻑 빠져 있다가 그곳을 나와 바로 곁에 있는 고급진 쇼핑몰에서 가장 현대적인 상품들을 둘러보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꼭대기 테라스 카페에 앉는다. 성당의 첨탑 사이로 보이는 제일 높은 꼭대기 위에서 밀라노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성모상에서 시선이 멈춘다. 가장 가난하고 힘들어하는 자식을 위해 오늘도 기도하고 있을 세상의 모든 어머니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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