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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61> 성호사설-성호 이익(1681~1763)

영호남 풍수지리부터 콩의 효능까지… 조선 제일의 실학백과사전

  • 서부국 서평가·‘고전식탁’ 저자
  •  |   입력 : 2023-03-09 19:26:49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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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 스스로 ‘자잘한 이야기’
- 마흔 무렵부터 쓴 토막글 등
- 문중 조카들이 엮어 펴낸 책

- ‘천지문’ 편서 영남 자주 다뤄
- 동해 따라 있는 산수 형세가
- 인재 배출에 영향 줬다 주장

- 노비제도 폐지 등 선진 사상
- 문신 우대한 조선에 일침 등
- 국가 발전 갈망한 정신 담겨

‘등나무 담쟁이덩굴에 덮인 십 리 오솔길(十里藤蘿經)/ 청노새에 몸을 실어 석양에 지나네(靑驢度夕陽)/ 학문이 깊기는 전한 양웅과 같고(地深揚子宅)/ 그 넓이는 후한 정현과도 같아(山抱鄭公鄕)/ 아직 선생 저술은 많이 남았는데(尙有遺書在)/ 여전히 오늘날 대도는 황폐할 뿐(如今大道荒)/ 모신 인연 없어도 평상 아래에서 절 올린 후(無因床下拜)/ 돌아가지 못하고 한참을 서성대네(欲去重彷徨)’.
1751년(영조 27년) 서화가인 표암 강세황(1713~1791)이 그린 ‘고산서원도(孤山書院圖)’는 이익과 관계가 깊다. 38세 표암이 칠순 이익을 병문안했다. 이익은 ‘도산도’를 보여주고 도산서원 풍경을 그려달랬다. 성호사설 ‘인사문’에 ‘도산사(陶山祠)’라는 글이 실렸다. 이 그림은 이익 문중, 육당 최남선, 경주 최부잣집(12대 종손 최준)을 거쳐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보물로 소장 중이다.
뉘가 시인 발길을 붙들었는가.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이다. 시인은 후학인 강준흠(1768~?). 그는 대선배가 살았던 옛집(경기도 안산 첨성리)을 둘러보자 시심이 끓었다. 이 오언율시(‘성호 이익 선생’)는 삼명 시집 권1에 애틋하게 실렸다. 이익 선생이 남긴 저술 중 성호사설(星湖僿說)이 우뚝하다. 책 제목을 현대 어법으로 풀어보면 ‘성호가 들려주는 자잘한 얘기’. 옛집(현재 안산시 상록구 일동) 인근에 자리 잡은 호수가 ‘성호’. 예서 호를 빌렸다. ‘맹자질서’ ‘곽우록’을 포함해 책을 100권 넘게 직접 지었는데 이 고전 ‘성호사설’은 아니다.

선생이 마흔 무렵부터 틈틈이 쓴 토막글, 주변인이 질문하면 답한 짧은 글을 모아 1760년(성호 나이 79세) 문중 조카들이 엮었다. 3007편 주제 아래 단문이 붙었다. 백과사전 형식이되 글 종류는 수필·논설·평론이 섞였다. 분량이 많다. 목차에서 읽고 싶은 데를 골라도 된다. 아무 쪽이나 펴 읽어도 괜찮다.

■ 풍수지리로 본 한반도 땅 이야기

5개 문(門, 천지·만물·인사·경사·시문)으로 나눴다. 가나다순이 아니고 소재가 겹치거나 분류가 느슨한 점을 제자 안정복(1712~1791)이 눈여겨봤다. 그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글을 1332편으로 줄이고 재분류해 ‘성호사설유선(星湖僿說類先)’을 펴냈다. 선생은 눈 감기 1년 전 제자에게 극진한 감사를 건넸다. 겸허한 스승이었다.

1부인 천지문(天地門), 앞부분에 ‘기지아동(箕指我東, 기는 곧 우리나라)’ 편이 실렸다. 기(箕)는 땅 이름, 자(子)는 작(爵)을 가리킨다고 밝히고 “단군 왕조가 끝날 무렵 기자가 이 기성의 지점을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이 땅에서 봉작을 받은 듯하다”고 썼다. 천지문엔 이처럼 한반도 땅을 다룬 글이 많다. 한민족이 어떤 땅에 살며, 그 내력은 이렇고, 지금 처지가 어떤지 조곤조곤 얘기한다.

영남을 자주 다뤘다. ‘영남속(嶺南俗, 경상도 풍습)’ 편을 보면, 서울과 경상도를 풍습으로 견줬다.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에서는 선비가 농사에 힘쓰지 않고, 부녀자가 길쌈하기를 부끄러워한다. 복장이 화려하고 장례·혼사에 비용을 많이 쓴다. 그렇지 않으면 치욕으로 여긴다. 경상도는 이와 반대다. 집안이 가난한 자를 주변이 도와 파산을 면해 준다. 이런 풍습은 신라에서 나왔다. ‘회소곡’ 중 ‘가배’가 그렇다.” 신라 골품제는 ‘세족’으로 남아 벼슬 없이 인망 높은 선비가 경남에선 살고, 서울에는 발을 붙일 수 없다고 꼬집었다.

경기도 안산 성호사당.
‘양남수세(兩南水勢, 영호남의 산수 형세)’ 편은 풍수지리 식견으로 썼다. 도학에 밝았다. 영남은 동해를 따라 산이 버티어 바다를 막아주고, 여러 고을 강이 합해져 기해 동래 사이를 거쳐 바다로 들어간다. 이 지역에선 교화가 이뤄지고, 옛 풍속이 전해지고, 인재와 명당이 나온다. 전라도 물줄기는 머리를 사방으로 흩트린 형세로 재주와 덕망 있는 자가 드물게 나오며,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이 못 된다고 봤다. 이런 시각은 종손 이중환(1690~1752)에게 영향을 줘 그가 지은 인문 지리서 ‘택리지’에서 뚜렷하게 확인된다.

‘성호사설’을 두고 저자는 ‘자잘한 얘기’라며 몸을 낮추었지만, 정말 내용이 그런 게 아니다. 글 수준으로 ‘성호사설’에 견줄 만한 서양 작품은 프랑스 문인 몽테뉴(1533~1592)가 쓴 ‘수상록’ 정도 아닐까 한다. 우리 후학은 선생을 조명하고 재평가하는 데 열심이다. 지난해 10월 성호박물관에서 열린 ‘성호국제학술대회’엔 국내외 200여 명 학자가 몰렸다.

성호는 징사(徵士, 학식과 덕행이 빼어난 학자)였지만, 갈수록 가세가 기울어 늘그막엔 가난과 병에 시달렸다. 하지만 조정이 내리는 관직을 받지 않았다. 당대 권력은 선생 사상을 반영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끝까지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실학(實學)’이 이 땅을 살린다는 신념을 밀고 나갔다. 유학에 근본을 두되, 유형원 학풍을 이어 경세제민(經世濟民,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 국리민복(國利民福,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행복)을 이루려는 고민과 대안을 ‘성호사설’에 묻었다.
성호박물관이 보관 중인 성호사설(왼쪽)과 이익 성호 전집 목판 중 일부.
■ 혁파 정신으로 새로운 조선 디자인

2부 ‘만물문’은 생생한 조선 후기 풍물판. 복식 음식 음악 그림 군제(軍制) 병장기 음주 흡연 개·고양이 돈 벼루 붓 벌레…. 진귀한 얘기가 많다. 당대 일상을 눈앞으로 당겼다. ‘숙(菽, 대두)’ 편은 콩 얘기다. “콩은 곡식으로 대단한 효능을 지녔지만, 그 가치가 잘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 가난한 백성에게 목숨을 부여하는 곡물은 콩뿐이다. 콩은 두부 비지로 먹고, 콩나물까지 얻게 해 가난한 자가 쉽게 배를 채우게 된다.” 끝에 이렇게 썼다. “나는 시골에 살아 이런 일들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 사실을 적어서 백성을 기르고 다스리는 자가 알도록 하려는 것이다.”

3부 ‘인사문(人事門)’이다. 문신을 우대하며 문약한 조선에 일침을 놓았다. 왜구 침략에 국력이 약해졌는데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통탄. 문무는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글이 여럿이다. “무변도 문관 직임에 간간이 등용해 재기를 길러줘야 한다.”(‘무과’) “문과 무는 어느 쪽이 중요하고 가볍다는 구별이 있을 수 없다.” (‘문무병용’) 인재 등용관은 이렇다. “잘 드러나지 않고 찾기 힘든 인재는 ‘길러서’ 기회를 줘야 한다.” (‘양재’)

‘인사문’에서는 토지공개념이 눈에 띈다. 정전제를 개선한 균전법, 즉 한전제(限田制)를 내세웠다. 환곡제도 폐지, 상평창 부활, 노비제도 점차 폐지, 사·농·양·천은 하나(선비·농민·양민·천민은 대등한 생산자)라는 주장은 선진 사상이다. 관리를 뽑고 관리하는 제도를 혁파해야 망국병인 당쟁을 누를 수 있다고 썼다. 조광조가 제안한 현량과가 차선책이랬다.

4부는 ‘경사문(經史門)’. 국내외 역사서·경서를 읽으며 떠오른 단상과 주장들이다. 발해 역사를 간추리고, 정유재란 때 명나라 장수 양호가 승전한 내력 같은 스스로 취재하고 분석한 역사 비평이 반짝인다. 글 읽는 눈이 날카로워 경서 주석 중 오류를 즉각 찾아낸다. “중용 19장 주석인 賓弟子兄弟之子 중 之 자는 弟 자를 잘못 쓴 것이다… 대학 경 1장 주석 중 止於至善之地而不遷에서 止 자는 至 자로 바로잡아 써야 한다.” (‘유문금망’) 예나 지금이나 선비들이 유가에서 쳐 놓은 ‘고치기 금지’라는 그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학풍을 나무랐다. 혁파 정신을 학문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도 적용해 새로운 조선을 꿈꾸었다.

5부 ‘시문문(詩文門)’은 중국 시문을 많이 다뤘다. 뒷부분에 실린 ‘이백주시(李白洲詩)’ 편을 통해 문학과 정치 사이에 선을 그었다. 조선 중기 문신인 백주 이명한(1595~1645)을 옹호한다. 백주는 간신 이이첨의 아들 이대엽이 관서로 벼슬살이하러 갈 때 격려 시를 지어 주었다. 이이첨이 꺼꾸러진 진 뒤 백주는 그 일로 구설에 올랐다. 이를 두고 성호는 “처음 선이 끝의 악을 덮어 버릴 순 없다. … 백주 시가 대단히 아름다우니 없애 버릴 수가 없다”며 백주가 보인 순수한 시심을 감쌌다.

선생은 농사짓는 선비로 가난하게 살다 갔지만 조선과 백성이 잘되기를 갈망한 그 치열한 정신은 지금도 전한다. 그는 우리 근대 이후 역사에서 새롭게 조명되는 선조다. 대한민국 미래를 설계할 때 야무진 한 획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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