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성호 이익 흉상. |
남인으로 사헌부 대사헌이었던 아버지 이하진이 평북 운산으로 귀양 갔다. 이익은 거기서 막내로 태어나 이듬해 부친이 별세하자 선대 고향인 경기도 안산 첨성리로 돌아왔다.
25세(1705년) 때 치른 첫 과거에 떨어졌다. 초시엔 붙었고 회시를 아예 못 봤다. 주제가 격식에 맞지 않고 답안지에 이름을 서식과는 다르게 적었다는 이유에서다. 이듬해는 둘째 형 이잠이 곤장을 맞고 옥에서 죽었다. 장희빈을 옹호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집권 노론에게 이 같은 화를 입었다. 성호는 가학(家學) 전통에 따라 자기에게 글을 가르쳐준 둘째 형이 당한 비극에 충격받아 더는 과거를 보지 않았다. 고향을 길게 떠나지 않고 야인으로 살았다. 1713년 ‘맹자질서’를 지었다. 48세(1728년) 때 이인좌 난으로 남인 제자와 문인 여럿이 옥사를 치렀다. 71세(1751년)에 38세 외아들 맹휴를 병으로 잃었다. 83세로 눈을 감은 뒤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추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