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그러나 관광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밥 먹는 것보다 금강산 유람이 먼저였다. 금강산의 명성은 이미 고대부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 퍼져 있었다. 조선 시대 양반은 하인을 대동한 채 많은 경비를 들여 금강산을 다녀왔다. 개항 이후 조선에 온 외국인은 그 명성을 확인해보고자 금강산 여행에 나섰다. 사실 이때만 해도 금강산을 찾는 관광객은 소수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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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금강산교통대조감도(펼침). 부산박물관 제공 |
금강산의 대중적 관광은 일제강점기 이후로 가능했다. 일제는 금강산 일대를 근대의 관광지로 개발했다. 1914년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경원선이 부설되면서 근대 관광이 꽃피기 시작했다. 금강산 개발의 주체였던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근대 관광을 촉진하고자 여러 관광자료를 제작했다. 부산박물관은 금강산 등 근대 관광지를 소개하는 사진엽서를 비롯해 사진첩, 리플릿 등 많은 관광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1929년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발행한 ‘조선금강산교통대조감도’는 화려한 이미지와 상세한 정보를 담은 리플릿이다. 금강산 명소, 교통과 숙박, 요금 등을 알려주고 금강산 전경을 웅장하고 상세하게 나타낸 그림지도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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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 리플릿 표지. |
관광 리플릿은 여행정보를 집약된 형태로 전달하고, 관광객의 여행 욕구를 자극하기 위한 안내 자료이다. 리플릿에 실린 ‘조감도’는 관광지를 한눈에 조망하고 관광객을 유혹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금강산교통대조감도’에 실린 금강산 그림은 가히 뛰어난 미술 작품에 뒤지지 않을 정도다. 신금강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 외금강과 해금강, 왼쪽에 내금강을 세밀히 그렸다. 금강산의 푸른 절경도 입체적으로 묘사했다. 산은 살아 움직이는 듯하고, 폭포·계곡은 실제 흐르는 듯 생동감 넘친다. 명소와 교통, 숙박시설에 대한 주요 정보도 표시됐다.
당시 조선의 금강산을 여행하고자 한 이들이 대부분 일본인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근대 관광자료는 일본인을 위한 것으로 그들의 시선으로 그려진 게 많다. 이 조감도를 그린 화가도 요시다라는 일본인이었다. 조감도 왼쪽 끝에는 일본 동경이 출발지점으로 표시돼 있다. 동경에서 출발하여 대마도 부산 경성 철원을 거쳐 금강산에 도착하는 일본인들의 여행 경로를 알 수 있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간행한 관광 리플릿은 철도역 또는 관광안내소 등에 비치되어 일본 관광객에게 배포됐다. 당시 관광 리플릿은 일본인의 여행을 도와주는 편리한 안내서이자 조선에 대한 지리적 인식을 확산시켜주는 매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