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학자 가토 기요후미 학술서
- 한 서린 조선인 사할린에 탑 세워
10년 전, 러시아 동쪽 끝 사할린섬에 취재 갔을 때 큰 궁금증을 하나 얻어서 돌아왔다. 사할린 남쪽 코르사코프에 갔더니 ‘망향의 언덕’이 있었다. 이 언덕에 ‘망향의 탑’이 있었다. 전쟁과 침략과 변명으로 날밤을 새우며 미쳐 날뛰었던 군국주의 일본은 많은 조선인을 강제(!) 징용했다. 강제징용된 조선인은 사할린에도 끌려갔다. 그때 사할린 남부는 ‘강도 일제’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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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일본의 항복 문서 조인식.
국제신문 DB |
1945년 8월 군국주의 일본이 패망하고 한반도는 해방됐다. 사할린은 소련에 귀속됐다. 패망한 일본 당국은 소련 영토가 된 사할린에서 일본인만 빼내 귀국시켰다. 수많은 사람이 사할린에서 일본 홋카이도로 밀항도 했다. 어쨌든, 자기들이 강제징용해 부려 먹은 조선인은 사할린에 그대로 남게 됐다. 소련 당국도 성실한 노동 인력인 조선인을 한반도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망향의 언덕과 망향의 탑은 그렇게 ‘버려진’ 조선인의 한을 달래기 위해 한국인들이 조성했다.
궁금증은 이것이었다. 패망한 군국주의 일본은 왜 조선인을 버렸나? 그렇게 파렴치해도 되는 건가? 과연 그것이 버린 것은 맞나? 버린 게 맞다면 왜 그랬나?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가 기획해 펴낸, 일본의 학자 가토 기요후미가 쓴 ‘해외인양 연구와 포스트 제국’에 주목한 이유는 10년 전 품었던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45년 패망한, 초라한 일제가 그때까지 조선 대만 만주 중국 등에 나가 있던 일본인을 어떻게, 왜 일본으로 귀국시켰는지 연구한 책이다. 이 책은 그런 귀국 조치를 ‘인양’으로 표현한다.
이 학술서는 패망 일제가 해외 일본인을 어떻게 일본 열도로 도로 불러들였는지를 총체로 보게 해주며, 일본 학자의 책답게 ‘디테일과 데이터’를 제시한다. 저자 가토 기요후미에 따르면, “대일본 제국 붕괴 이전 점령지·식민지에 거주하고 있던 민간인은 350만 명이 넘었다.”(53쪽) 그리고 “일본이 포츠담선언 수락을 최종적으로 결정한 (1945년) 8월 14일 시점에 해외에 전개한 일본군은 350만 명이었다.”(140쪽)
패망해서 힘도 없고 배도 없고 결정권도 없던 일본 지배층은 ‘오지 말고’ 현지에 정착하라는 정책 기조를 전한다. 국제 정세와 지역별 상황 차이가 변화를 부른다. 한반도 남부와 대만에서 ‘인양’은 순조로운 편이었다. 소련군이 진주한 만주에서는 큰 희생이 따랐다. 미국은 중국에 잔류한 일본인·일본군을 부담스러워했다. 국민당과 공산당이 싸우던 중국에서 이들이 어떻게 돌변할지 알기 어려웠다. 미국은 일본에 배를 빌려줘 가며 인양을 서두른다. 사할린의 일본인도 인양된다. 그 와중에 조선인은 빠진다. 조선인은 일본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