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어진 소리 따라 길 하나 열어본다
직선을 가로지른 태평양의 고리들
기모노
갇혀버린 얼굴
해풍에 펄럭인다
부화되는 그리움 매화꽃 화관 씌워
벚꽃에 내려앉은 오랜 시간 추스르며
힘겹게 햇살을 풀어
역사의 끈 묶는다
혼절한 기억의 등 깃털은 깨어 있어
고국으로 오는 봄 더디게 디딘 걸음
낙선재
바람으로 눕는다
매화꽃 눈부시다
782만7328명! 일제 강점기에 강제동원된 인원이라고 한다. 덕혜옹주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이들 중 한 사람이다. 고종의 고명딸인 덕혜는 일제시대에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본으로 강제유학을 가고 강제결혼까지 하게 된 비운의 옹주였다. 해방 직후 정치적 이유로 귀국이 거부되었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1962년 고국에 돌아왔지만 20년 후에야 호적이 생겼다고 한다. 고국에서도, 타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덕혜옹주는 정신병과 실어증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했다.
시인은 파란만장한 덕혜옹주의 삶을 진중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담백한 어조로 들려준다. 낯선 타국의 벚꽃 아래 기모노를 입은 채 홀로 고국을 그리워 하는 모습, 창덕궁 낙선재에서 매화꽃을 바라보며 눈물을 머금은 얼굴이 선하게 젖어온다.
더불어 이 시는 역사 왜곡, 독도 분쟁, 강제동원 보상,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 등으로 점철된 한일관계를 풀어주는 해답은 어디에 있을지 고민하게 한다. 혹독한 추위를 견뎌낸 고목에서도 눈부신 꽃을 피우는 매화처럼 오랜 기간 묶여 있던 역사의 매듭이 한 올 한 올 풀리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