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박밭 서리 등 어린시절 이야기
- 읽기 쉽게 큰 글자와 그림 가득
- 총 55종… 치매·우울감 예방 도와
- 자기 사연으로 채울 수 있는 책도
어르신이 읽기 편하도록 큰 글자책으로 만들고 지난 시절 추억을 생생하게 되살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 채운 ‘어르신 이야기 책’ 시리즈가 눈길을 끈다. 그중 ‘수박 도둑(김택근 글, 낙송재 그림)’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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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택근 글 ‘누렁이“에 수록된 낙송재 그림. 지성사 제공 |
초등학생 ‘나’는 동네 형들과 영순이네 수박밭에 서리하러 갔다. 수박밭은 공동묘지 아래 야산에 있다. 아이들은 공동묘지에 숨어 있다가 옷 벗고 팬티만 입은 채 몸에 흙칠까지 하고 수박밭으로 기어들어 갔지만, 영순이 아버지에게 들키고 말았다. 형들은 도망가고 ‘나’는 공동묘지에 숨었다. 옷을 벗고는 달아날 수 없었다. 영순이 아버지가 옷을 먼저 발견해 하는 수 없이 그 앞에 가서 자백했다. 형들 이름은 털어놓지 않았다.
“이놈 보게. 너 감나무 집 아들이구나.” 금방 정체가 들통났다. 온 동네 소문이 나겠구나, 아버지께 혼나겠구나, 순경이 와서 잡아가면 어쩌나, 겁이 났다. 설상가상 영순이가 옷을 내주어 부끄러웠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고, 졸업식이 올 때까지 소문은 나지 않았다. 벌거벗은 수박 도둑 이야기는 아무도 몰랐다.
‘수박 도둑’을 읽은 어르신은 “이거 내 이야기잖아” 하고, 그림 보면서 “내가 딱 이 꼴이었지. 옷을 벗고 몸에 흙칠하면 안 들킬 줄 알았으니까” 하며 웃으시겠다. 이야기 한 편이 어르신을 단번에 어린 시절로 되돌려주고, 그날의 기억에서 수십 년 세월이 다시 흐를 것 같다.
도서출판 지성사의 ‘어르신 이야기책’은 2018년 3월, 모두 40종 발간으로 시작했다. 고령 인구 증가로 깊어지는 고민인 인지저하증(치매)을 예방하고 진행을 늦추는 데 필요한 지적 활동(책읽기)을 돕기 위해 기획됐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자문을 받아 어르신이 읽기 편하도록 큰 글씨로 구성하고, 어르신의 사라지지 않은 기억인자가 활성화하도록 회상 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소재로 된 글과 그림을 책 내용으로 했고, 어르신의 집중도를 고려해 책을 택할 수 있게 했다.
원고 분량을 기준으로 긴글, 중간글, 짧은글 그리고 그림책으로 책을 구분했다. 어르신이 쉽게 읽을 수 있어야 하기에 단락을 잘게 나누어 편집했다.
이번에 김택근·이용분 작가 등의 작품 10종을 더해 모두 55종 ‘어르신 이야기책’을 갖추게 됐다. 새로 나온 10종을 보자. ‘긴글’ 책은 ‘제 복으로 사는 셋째딸’ ‘아버지의 이상한 유언’ 2종이다. 값은 1만3000원. ‘중간글’ 책은 서너 편 글을 수록했다. 수필처럼,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읽힌다. 앞에 소개한 ‘수박 도둑’ 외 ‘누렁이’ ‘수학여행’ ‘꽃니’ ‘옥수수죽’ ‘손녀의 돌사진’ ‘외갓집 추억’ 7종이다. 값은 1만원.
‘그림책’으로 구성된 ‘나 어릴 적에’는 독특한 형식이다. ‘누렁이’(김택근 글, 낙송재 그림)에서 그림을 추려 꾸몄다. 왼쪽 페이지에 그림이 있고, 오른쪽은 상단에 짧은 문장 한 줄만 있을 뿐 비어있다. 여백에는 독자가 자기 이야기를 적어 넣으면 된다. 그래야 온전한 그림책으로 완성된다. 값은 1만원인데, 사연이 가득 채워지면 값을 매길 수 없겠다.
책 읽기와 관련한 모든 행동은 뇌를 깨우고 훈련하는 좋은 방법이다. 나이가 들면서 시력이 약해지고 집중력은 떨어지지만, 어르신들도 책을 읽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에 대한 권리가 있다. 어르신의 독서 시간을 늘리는 것은 인지 기능의 저하와 우울감 발생을 예방할 최고 방법이다. 모든 연령층에도 해당한다. 어르신들이 손주와 함께 읽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