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항 몰린 한국전쟁 피란민
- 아시안게임·월드컵·BIFF까지
- 수많은 사람 반겨온 국제도시
- 음식에도 배려·공유 문화 스며
시 제목 ‘방문객’. 쓴 사람 정현종 시인.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이 시를 읽는 수많은 사람이 이 대목에서 한 번 멈춘다. 놀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감했기 때문이다. 맞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숨을 가다듬고 일단 이 유명한 시를 끝까지 읽어보자. 이 시의 끝에서 우리는 또 하나 중요한 낱말을 만난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그렇다. 환대. 사람이 오는 어마어마한 일을 맞이할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환대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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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사하구 승학산 정상(해발 497m)에서 본 낙동강과 남해. 1300리를 흘러온 낙동강이 마침내 바다를 만나 몸을 턱 풀고, 바다는 그런 낙동강을 환대한다. 가장 부산다운 풍경이다. |
■ 사람이 온다는 건
부산은 환대를 이해하는 도시다. 환대가 몸에 벤 고장이라고 해도 좋다. 사람이 오는 어마어마한 일을 잘 치러낼 대도시라는 뜻이다. 평생 도시와 부산을 공부하는 경성대 강동진(도시공학과)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30만 도시였던 부산은 1945년 해방을 맞아 10만 이상의 귀국동포들을, 또한 연이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몰려든 100여 만에 이르는 피란민들을 떠안으며 불과 6, 7년 만에 100만 도시가 되어 버렸다.”
“해방을 맞아 독립운동 강제동원 등 여러 이유로 조국을 떠났던 수많은 귀국 동포들이 부산항으로 귀환했다. 그중 상당수는 부산에 정착했고, 5년 후 전쟁으로 백만에 이르는 피란민들이 유입되며 부산은 갈 곳 없던, 아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이들에게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또한 부산은 한국전쟁 중 1023일 동안 대한민국의 피란수도로 기능하며, 국난 극복의 특별한 역할을 담당했다.”(상지건축이 펴내는 인문 무크지 ‘아크’ 제4호 ‘환대’에서 인용)
이런 예시는 정말 많다. 한국이 세계 최빈국 수준이던 1950~1960년대, 바다와 큰 항구가 있는 부산은 바깥에서 온 수많은 사람을 품었다. 1957년 한국 최초 원양어선 지남호가 만선을 꿈꾸며 먼바다로 나갔다가 108일 만에 참치를 싣고 희망찬 마음으로 끝내 돌아온 곳이 부산항 제1부두다. 한국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한 1970~1980년대 수출입 입지가 좋은 부산에는 엄청난 기세로 기업이 번성했고,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온 사람들로 인구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는 400만 명에 육박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9년 가수 남인수가 발표한 노래는 ‘울며 헤진 부산항’이었지만, 1976년 가수 조용필이 불러 모든 한국인을 사로잡은 노래는 ‘돌아와요 부산항에’였다. ‘울며 헤진’ 아린 마음은 ‘돌아와요’의 환대로 바뀌었다. 1990년대를 거쳐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 도시는 거대한 관광 도시로 발전해갔다. 그 사이 아시안게임, 월드컵, APEC 정상회담, 부산국제영화제(BIFF), 100만 명 이상이 일시에 찾는 불꽃축제, BTS 콘서트 같은 메가 이벤트를 차례차례 거뜬하게 치르며 부산은 환대할 줄 아는 국제도시로 성장했다.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대한민국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1960년 69달러로 시작해 2021년 3만3984달러로 늘었다. 그 세월 동안 경천동지할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최빈국에서 경제선진국, 문화강국으로 한국은 올라섰다. 부산은 그 시절 내내 한반도가 바다로 나가는 출구이자 세계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입구로 기능하며 ‘사람이 오는 일’을 감당했다. 지금 부산항은 세계 2위 환적항만, 세계 7위 컨테이너항이다. 한국해양대 정영석(해사법학부) 교수는 “메논보고서에 따르면, 부산은 세계 1500개 도시가운데 11위 해양도시”(국제신문 3월 20일 자 보도)라고 소개했다.
누군가 물을 수 있겠다. “일제강점기 때 갑자기 성장했고 해방 직후와 6·25 전쟁 때 별안간 인구가 늘었고 산업화 시기에 급속히 경제가 성장해 지금까지 온 것 아닌가? 그것은 사회 변동의 결과이지 부산이 사람을 환대한 성과는 아니지 않나?” 바로 그렇다. 사람·물자·문화가 국경과 바다를 넘어 무수히 오간 세월과 과정을 겪으며 세계 도시로 우뚝 선 부산 사람의 문화 DNA에 어느새 새겨진 가치가 무엇이겠는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리고 환대다.
음식문화칼럼니스트 최원준 시인은 말한다. “부산 음식문화를 살피면 환대의 마음을 느낀다. 돼지국밥이나 밀면을 비롯해 널리 사랑받는 부산 음식의 문화 코드에는 배려의 음식, 공유의 음식, 차선의 음식이라는 요소가 함께 있다. 인구가 급증하고 도시가 갑자기 팽창한 상황에서도 서로 자리를 내주고 감싸준 문화가 음식에도 스몄다. 환대의 마음이다. 사직야구장에서 어른이 야구공을 잡으면 주위에서 곧장 ‘아 주라! 아 주라’(아이에게 그 공을 줘라)를 외치는 문화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문화기획자·영화인 김희진 씨는 “바다에서 배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여 일단 살려놓고 보는 게 항구도시 멘털리티다. 그게 환대이고 부산다움이다”고 말했다.
잘 발달된 대도시 인프라, 세계적인 랜드마크, 폭넓은 국제 네트워크, 숱하게 치른 메가 이벤트, 풍성하고 멋진 K 콘텐츠,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거대 항만 환경. 여기에,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환대의 마음. 부산은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임을 잘 안다.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음도 스스로 안다. 오라! 2030 월드 엑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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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동구 초량동 168계단에 있는 ‘별을 따는 아이’. 산복도로의 정서를 담은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