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여 년 전 가야 무덤에는 주인공과 함께 묻어주는 부장품이 풍부하여 고고학자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특히 왕이나 귀족의 장례식에는 주검에 화려한 비단옷을 입히고, 금 장신구로 치장할 뿐 아니라 시신 주변에는 생전에 쓰던 칼과 창, 도끼, 낫까지 함께 묻어준다. 또한 부장품만을 담기 위한 별도의 구덩이를 파서 곡식과 술, 물 등 음식물을 수십 개의 항아리에 담아두고, 심지어 죽음을 함께 할 사람까지도 묻는다. 이는 주인공이 내세에서도 이승과 같은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고대인의 관념세계를 엿볼 수 있는 부장품 중에는 특이하게도 갑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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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복천동에서 출토된 철제갑옷 일괄.
국립김해박물관 제공 |
갑옷이란 전쟁에서 적의 화살이나 창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쇠나 가죽 등을 엮어서 만든 대인 방어용 무장이지만, 부장품으로서의 갑옷은 사후세계에서도 전쟁 중에 몸을 보호하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대사회에서 갑옷이 가지는 의미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복천박물관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는 부산 복천동 고분군 38호 출토 판갑을 예로 들어보자. 4세기가 되면 전쟁이 격렬해짐을 전쟁무기의 발달로 알 수 있다. 칼은 장대하고 창도 길어지며, 화살촉도 뾰족하면서도 무게가 늘어나는 등 무기의 살상력이 크게 증폭되었다. 이러한 공격용 무기의 발전은 방어용 갑옷의 발전을 초래한다. 이전까지 가죽이나 나무판을 엮어 만들던 갑옷을 철판으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이른 철제 갑옷 중 하나가 바로 복천동 38호 갑옷이다. 철판을 오려 목 어깨 가슴 허리 머리 등 인체 곡률을 섬세하게 맞추고, 철판 가장자리의 직경 0.5㎝ 구멍을 통해 가죽이나 못으로 고정하여 의복으로 짜올린다. 테두리는 동물털이나 가죽으로 감쌌으며, 철사를 고사리무늬로 구부려 가슴을 장식하거나 갑옷 표면에 기하학적인 문양을 새겨넣기도 한다. 이처럼 갑옷 제작에는 극도로 세밀한 공정에서부터 인체공학적인 기술 요소까지 당대 최고의 기술이 투영되는 하이테크 기술로, 현재로 비유하자면 최첨단 방위산업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당장 전쟁에서 써도 모자랄 첨단장비일텐데 철제 갑옷을 죽은 이의 무덤에 왜 묻어버린 걸까. ‘무위(武威)’를 부장하는 행위는 죽은 이의 권위를 상징함은 틀림없다. 동시에 장례식을 주관하는 권력 계승자로서는 선대왕 권위의 상징물을 폐기함으로써 더 높은 수준의 군사적·정치적 권위를 참례자들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이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례식과 찰스 3세의 대관식에서 보듯이 선왕이 서거했다고 곧바로 대관식이 이루어지지는 못한다. 그 기간 동안 일어날 치열한 정치적 갈등을 빠른 시간에 잠재우고 왕위계승의 당위성을 입증해줄 만한 장치가 필요하다. 이때 가장 정치적인 도구인 선왕의 갑옷을 폐기함으로써 새로운 시대 강력한 왕권이 도래하였음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고고학자들은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