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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 살림숲’ 걷어낸 동구…이번에도 공공미술 고민은 없었다

지역민 살림 3000점 쌓은 작품…흉물 논란 끝에 현대미술관 이전

  •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
  •  |   입력 : 2023-04-25 19:18:06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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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적극적 문화행정 사례” 홍보
- 논란만 무성, 토론 과정은 없어
- 문화의 성장기회 날려 아쉬움만

한동안 논란의 중심에 섰던 부산 동구의 공공미술품 ‘초량 살림숲, 온나 온나 모다 모다’가 결국 ‘초량’을 떠났다. 설치 과정에서부터 ‘외관의 적절성’ 논쟁을 촉발하며 전국적 이목을 집중시킨 지 2년 만이다. 새롭게 뿌리내린 곳은 부산현대미술관(사하구)이다. 논란에 시달리던 공공미술품이 옮겨가면서 그간의 과정은 일단락됐지만, ‘초량 살림숲’을 걷어낸 자리에 공공미술에 관한 담론과 새로운 논의는 전혀 남기지 못한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부산현대미술관 썬큰가든에 최정화 작가의 작품 ‘온나 온나 모다 모다’가 설치돼 있다. 최승희 기자
25일 부산현대미술관 뒤편 썬큰가든에는 최정화 작가의 ‘온나 온나 모다 모다’ 설치가 마무리된 모습이었다. 초량천변에 설치됐던 이 작품의 애초 이름은 ‘초량 살림숲, 온나 온나 모다 모다’였지만, 이곳에서 ‘쫓겨나면서’ 장소성이 짙은 이름 앞부분은 빼버렸다.

2021년 공공미술 사업으로 세워진 ‘초량 살림숲’은 이곳 주민 300여 명의 사연이 깃든 살림살이 3000여 점을 모아 수직으로 쌓아 올린 설치물로, 높이 6m 기둥 64개를 원형 미로 형태로 세운 작품이다. 그러나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설치 과정에서부터 논란이 일었고, 급기야 공공미술품 이전이 구청장의 공약사업으로 추진됐다.

작품은 부산현대미술관이 2년간 수탁 전시하는 형식으로 미술관 품에 안겼다. 공간 크기에 맞게 규모를 축소해 48개 기둥이 두 개의 동심원 모양을 그리는 형태로 세워졌다. 초량천변에 있을 때보다 키도 조금 줄었다. 바닥 고무 부분을 떼면서 높이가 6m에서 20㎝ 낮아졌다. 설치 장소는 지하 1층 어린이도서관과 접한 공간이라 아이들이 많이 관람할 수 있고, 1~3층 계단 유리창을 통해 모든 층에서 감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낙점됐다.

부산현대미술관 강승완 관장은 “쓰던 물건을 다시 살려 예술작품으로 승화했다는 점에서 생태 미술관을 표방하는 부산현대미술관과 맥락이 잘 맞았다”며 “미술관 썬큰가든이 ‘죽은 공간’이었는데 작품을 들이면서 살아났다. 작품 속으로 관람객이 들어가 거닐 수 있도록 개방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다음 달 27일에는 최정화 작가가 직접 아이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보는 참여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동구는 ‘초량 살림숲’ 이전을 놓고 ‘주민의 뜻을 수용하면서 작가의 저작권을 제대로 살린 적극적인 문화행정의 사례’라고 자평한다. 주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지난해 9월 주민 여론조사(이전 찬성 72.6%)를 실시하고, 작가·부산현대미술관 측과 협의해 부산시 조형물 심의를 통해 모든 행정 절차를 이행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적극적 문화행정’이라고 하기엔 ‘문화적’ 고민은 좀체 보이지 않았다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온다. 부산의 한 작가는 “‘초량 살림숲’ 제작 과정에 주민 의견 수렴이 미흡했다면, 논란을 해소하는 과정에서라도 지역민의 다양한 의견을 기록하고 공공미술에 관한 담론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는 지역민 공감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공공미술의 발전을 도모하는 방법이다”고 지적했다.

‘초량 살림숲’을 기획한 플랜비 이승욱 이사장은 논란만 무성했지 토론이 이루어졌는지 묻고싶다며 답답해 했다. 그는 “작품이 논란에 오르는 것도 공공미술의 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초량 살림숲’을 옮기면서 공론의 장은 없었다. 영도 깡깡이할매 벽화도 항의가 심했지만, 주민 토론을 거쳐 보존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면서 성숙하는 것 아니겠나”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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