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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64> 동물농장-조지 오웰(1903~1950)

스탈린 독재 체제 빗댄 돼지왕과 동물농장…그 풍자, 아직도 유효하다

  • 서부국 서평가·‘고전식탁’ 저자
  •  |   입력 : 2023-04-27 19:25:17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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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속박서 벗어난 동물농장
- 권력 맛 본 돼지들에게 속아
- 꼼짝없이 당하기만 한 동물들
- 구소련 스탈린 무자비한 횡포와
- 눈·귀 멀어버린 민중 모습 그려
- 전 세계 압제의 역사 보는듯 해

- 정치색 강한 소설 빛 못 보다가
- 겨우 英서 출판, 순식간에 팔려
- 해외 첫 번역본 낸 나라가 한국

동서가 냉전을 벌이며 서로 노려봤던 1952~1957년. 미국 해외정보국이 헝가리·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쪽으로 대형풍선을 날려 보냈다. 풍선 꼬리엔 묵직한 소설책 꾸러미가 대롱대롱. 이들 사회주의 국가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달갑잖은 ‘독서 권장’이었다. 전투기를 띄워 대형풍선에 기관총탄을 퍼부었다.
‘동물농장’ 속에서 권력을 장악한 돼지들은 동물들에게 평등·평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는 새 세상을 제공하겠다고 큰소리친다(왼쪽 그림). 하지만 인간화한 돼지들은 나머지 동물들을 착취하고 그 위에 군림한다(오른쪽 그림). 화가 서태웅의 연작 그림 중 일부.
책 운명은 저자도 모른다고 하지만, 참 얄궂었다. 이름이 제법 알려진 40대 초반 영국 소설가가 쓴 소설이었는데도 말이다. 영미에서 출판할 때도 가시밭을 헤맸다. 1945년 8월 17일 영국서 겨우 책이 첫선을 보였다. 영문 모를 일이 잇달았다. 해외에서 이 소설이 제일 먼저 번역된 나라가 머나먼 한국(1948년, 국제문화협회 출판부, 김길준 옮김). 미 해외정보국이 작업한 결과라는 게 정설이다. 반공 정책이 드센 한국에 이 책이야말로 안성맞춤이라고 봤을 터이다. 이쯤 되면 이 소설이 어떤 책인지 감이 잡힌다.

또 다른 구설. 이번에는 보수파 시인 T.S.엘리엇(1888~1965)이 등장한다. 그가 영국에서 유력 출판사인 페이버 앤드 페이버를 운영하던 1944년 이 일이 벌어졌다. 이 소설 출간 의뢰가 들어오자 엘리엇은 거절하는 편지를 보냈다. 내용이 후일 공개된 그 편지에 엘리엇은 이렇게 적었다. “이 소설은 트로츠키주의자 작품으로 당대에 설득력이 없다.” 미국 출판사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내저었다. 구소련 정치권력이 입김을 분 흔적이 뚜렷이 보였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이듬해, 운세가 뒤집혔다. 앞에서 말한 1945년 8월 17일, 이 소설은 신생 영국 출판사인 세커 앤드 워버그에서 나왔다. 초판 4500권이 순식간에 다 나갔다. 이 소설, 조지 오웰 작 ‘동물농장’은 세상에 나오기까지 과정이 이랬다. 저자는 4개월(1943년 11월~1944년 2월) 만에 뚝딱 써냈지만. 정치색이 강한 소설이 거센 세파를 맞았으나 그 파고를 이겨내고 항진해 ‘명작 나라’에 닿은 사례였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세계 경찰을 자부했던 미 해외정보국에게 이 책은 귀빈이었다. 구소련 입김이 미치는 유럽 사회주의 국가에 보낼 적절한 ‘선물’로 봤다. 스탈린 체제를 풍자한 우화 소설이니 자유민주주의 우월성을 선전하기에 이만한 책이 없었다.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 마음에 썩 들었다. 그런데, 잠깐만! 오웰은 자신이 반공주의자가 아니라 민주적 사회주의자랬는데. 미 해외정보국은 자신 입맛대로 이 책을 해석한바 저자 의도와 아귀가 틀어졌다.

‘동물농장’은 2차 세계 대전을 치른 당대 성인들에게 쉽게 읽혔다. 전후 뜨거운 화제인 스탈린 체제 붕괴를 풍자·비판했으니 이해가 쉬웠다. ‘흠, 동물농장 주인인 존스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수퇘지 나폴레옹과 스노볼은 각각 스탈린과 트로츠키를 빗댔군’. 누구를 ‘씹는지’를 확실하게 드러내야 잘된 풍자 소설. 그런 점에서 ‘동물농장’은 성공작이었다. 영국엔 풍자 문학이 가는 길을 닦은 두 선배가 있었다. 대니얼 포(1660~1731, ‘로빈슨 크루소’)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 ‘걸리버 여행기’). 이 고전을 쓴 오웰이 그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사회주의 물결이 잦아진 지금도 ‘동물농장’을 찾는 독자는 여전하다. 그 힘은 이 책이 여러 각도에서 해석을 제공한다는 유연성에서 나온다. 이런 책은 이솝우화처럼 시대가 달라져도 읽힌다. 구소련 체제를 비판하는 시각은 이어서 주변 정치권력(독재)을 들여다보게 된다. 권력이란 초심을 잃고 부패·변질하기 쉬운 속성을 가졌는가 하는 난제에 대한 오웰 해답이 ‘동물농장’.

저자는 정치권력이 쉽게 변한다고 봤다. 바람직한 쪽이 아니다. 그 으스스한 낌새가 2장 마지막 문장에 실렸다. “동물들은 건초용 꼴을 베기 위해 풀밭으로 전진했다. 저녁때 그들이 돌아와 보니 우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동물들이 자신들을 돌보지 않는 존스 부부와 일꾼들을 내쫓는 봉기에 성공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긴 상황이다. 암소 젖을 독차지했던 인간은 이제 사라졌다. 동물들은 이 성찬을 나눠 먹게 되리라는 기대가 컸다. 앞에 잘 나서는 수퇘지 나폴레옹이 이랬다. “동지들 우유 걱정은 하지 마시게.” 그러곤 그는 공동 작업에 끼지 않고 뒤에 남았다. 동물들이 일하고 돌아와 보니 그 우유가 사라졌다.

3장에서 진상이 드러난다. 우유는 돼지들이 제멋대로 몽땅 먹어 치웠다. 동물농장 동물들은 봉기에 성공한 후 ‘7계명’을 지어 헛간 벽에 흰 페인트로 써뒀다. 일곱 번째 계명이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였는데 돼지들이 어겼다. 그러고 보니 어느샌가 돼지들은 힘든 육체노동은 하지 않고 감독 지휘만 한다. 사과 역시 그들만 먹는다. 불만스러워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돼지들이 입막음에 나섰다. “대중 이익을 위해 일하는 우리 돼지가 건강을 유지하는 데 다 필요해서 그런 거야. 우리가 그 의무를 못 하면 악독한 인간 존스가 돌아올 텐데 그걸 원해?” 궤변이자 협박. 순박한 나머지 동물은 기가 죽어 다소곳해진다. 따지고 바로잡아야 할 시점이건만! 정치권력은 대중 이익을 위한다는 사탕발림을 하는 데 능숙하다. 민중이 눈·귀가 어두우면 여기에 꼼짝없이 당한다. 그 대가는 혹독하다. 10장까지가 그 내용이다. 독재 독성을 아는 독자에겐 우화가 아니라 현실 같다. 무력하게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경각심이 인다.

5장은 독재나 전체주의를 좇는 정치권력은 결국 무력을 행사한다는 걸 보여준다. 폭력 수단을 은밀히 갖추어 뒀다가 적시에 휘둘러 피바람을 부른다. 나폴레옹과 스노볼은 사사건건 맞서는 정적. 스노볼은 풍차 건설 계획을 세워 다 잘사는 미래상을 제시한다. 반면 나폴레옹은 남몰래 키워온 맹견들을 풀어 대중을 겁박한다. 목숨이 위태로운 스노볼은 농장 밖으로 도망친다. 권력을 독차지한 나폴레옹, 스스로 지도자가 돼 독재 정치를 펴간다. 농장엔 토론 협의 대신에 충성 복종 기율이란 단어가 울려 퍼진다. 불만이 제기되면 선전대(수퇘지 스퀼러, 양 떼)가 나선다. ‘7계명’은 돼지들이 암암리에 뜯어고쳐 마지막엔 하나만 남았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6장부터 마지막 10장에서 돼지 집단은 인간이 벌이는 악행을 답습하고 생김새도 점차 인간을 닮아간다. 정치권력은 유기물. 썩기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다. 곪은 환부나 독사에 물린 상처는 고통스럽더라도 도려내야 한다는데 맞는 말이었다. 피지배 동물들은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동물농장 돼지 집단은 처음엔 웃음 띤 얼굴이었다. 압제자인 인간에게서 동물이 풀려야 한다며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는 제1 구호를 앞세워 호응받았다. 인간처럼 “침대에서 자고, 옷 입으며, 술을 마셔선 안 된다”는 계명도 자신만만하게 내걸었다. 다른 동물을 살상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이 모든 규범을 권력 맛을 본 돼지들이 깨뜨린다.

섬뜩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벌어졌던 압제 역사가 어른거린다. 어쩌면 지금도 어디선가 진행될지 모를 일이다. 살벌한 호위병을 거느리며 호의호식하고, 눈에 거슬리는 민중을 인정사정없이 숙청하는 행태는 소설 속에서만 보이는 게 아니다. 나폴레옹이 ‘기미 상궁’ 돼지까지 뒀다는 대목에 이르면 실소가 나온다. 인간을 철천지원수로 상종할 수 없다던 돼지 집단은 그들과 이익을 다투는 관계를 맺는다. 인간과 돼지가 술 취해 벌이는 싸움 난장판을 다른 동물들이 목격하는 장면으로 이 짧은 소설은 끝난다.

인간이 다스렸던 ‘메이너 농장’은 ‘동물농장’으로 탈바꿈했지만 새 세상은 오지 않았다. 동물 민중은 더 혹독한 고통과 희생을 치른다. 이런 마무리에 독자는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오웰은 이 세상을 미화하지 않았다. 그래야만 진실에 가깝게 가니까. 때로는 불편이 필요하다. ‘부유하다’와 ‘잘산다’를 구분 못 하는 대중에 이 소설은 쓴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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