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암 정약전경기 마현 출생. 1801년 신유사옥에 연루해 흑산도 등지에서 15년간 귀양을 살다 뭍으로 나오지 못하고 1816년 59세로 우이도 진촌마을에서 숨졌다. 현재 묘소는 경기도 천진암 천주교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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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한 흑산도 사촌 마을 내 사촌 서당. 정약전이 이 서당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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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은 ‘자산어보’ ‘표해시말(문순득 표류기)’ ‘논어난’ ‘역간’ ‘송저사의’ ‘몽학어휘’. 모두 섬에서 귀양 살 때 지었다. 19세 때 서울에서 천주교와 서양 문물에 눈을 떴다. 33세에 급제해 승문원 부정자 보직을 받았다. 42세 때 탄핵받아 파면된 이후 다시는 관직을 못 받았다. 귀양지 흑산도에서 사촌서당을 열었다.
■ 청전 이청경북 경주 출생. 15세 때 정약용이 그의 집에서 2년 기거하며 인연을 맺었다. 평생 과거를 봤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스승 정약용(시경강의보유 대동수경 악서고존 사대고례)과 정약전(자산어보) 저술을 도왔다. 본인은 ‘정관편’을 지었다고 알려졌다. 1861년 70세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