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 대담집
- 통도사 주지 지내며 개발 막고
- 16만 도자대장경·옻칠·민화 등
- 그간 해왔고 할 일들 ‘어마어마’
- 그 속 간명한 가르침 깊은 울림
아주 가끔, 기자가 쓰는 기사의 본분에서 벗어남을 알면서도 그냥 단순하게 ‘이 책 굉장하다’는 감탄사로 시작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는 오랜만에 만난 그런 책이다. 책 표지에는 ‘성파 스님 말씀하고 김한수 쓰다’고 돼 있다. 김한수 저자는 ‘조선일보’ 종교전문기자다. “1993년부터 문화부에 근무하고 있다. 2003년부터 종교를 담당했으며 2014년부터 종교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고 소개돼 있다. 문화·종교 영역에서 최전선의 베테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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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과 함께하는 행사에서 붓을 든 성파 스님. 샘터 제공 |
성파 스님은 특히 부산 경남 사람에게 아주 친근한 분이다. 40대에 통도사 주지를 지냈고, 통도사에 속한 서운암에 살며 대중과 함께 참으로 다양하고 거대한 일을 척척 해낸 큰스님이다. 2014년 조계종 최고 품계인 대종사 법계를 받았고, 2018년 영축총림 제4대 방장에 추대됐으며, 2021년 15대 종정이 되었다. 성파 스님은 현재 조계종 종정이다.
이 책은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다. 성파 스님이 직접 지은 책 제목 사연부터 좀체 접하기 힘들었던 성파 스님 어린 시절, 젊은 시절 이야기가 스님 육성으로 담겼다. 가난했으나 문리가 일찍 트인 어린 시절, 활달했던 젊은 시절 이야기가 흥미롭다.
“지금도 성파 스님은 이야기 도중 불교와 유교 경전을 줄줄 암송한다. 스님들도 성파 스님의 강연 내용의 폭과 깊이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그러나 성파 스님은 자신이 어떻게 공부했는지, 어느 경전의 어느 구절을 좋아하는지 등의 속된 질문에 짐짓 못 들은 척한다. 헛된 소문과 명성을 경계하는 것일까.” 맹렬히 정진·공부해 그 속의 가르침을 삶에 곰국처럼 녹여내면서도 호사가가 막상 질문하면 말을 아끼고 침묵하는 스님 모습은 책을 관통한다. 침묵은 경지다.
성파 스님이 해온 일, 하는 일, 할 일을 접하니 그 어마어마함에 경탄했다. 이건 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양과 질이 아니다. 스님 스스로 말한다. “500살 인생을 산다” “무소유를 해야 훌륭한 스님이 된다, 그런 말은 내가 일찍부터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나는 정반대라. 나는 욕심이 대적이다. 무소유와는 정반대라, 욕심이 대적이라. 큰 대(大) 자, 도적 적(賊)자, 큰 도둑놈이라.…은하수를 깔고 앉아 있는 도적.(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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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운암에 있는 옻칠로 그린 금강산. 성파 스님 작품이다. 샘터 제공 |
성파 스님은 40대에 통도사 주지가 돼 통도사가 유원지처럼 개발되는 일을 막았다. 그 덕분에 통도사의 큰 자랑인 1.4㎞ 무풍한송로가 생겼다. 한국 최초 성보박물관이 통도사에 들어서는 데도 바탕이 됐다. 서운암에 살며 선농일치 정신으로 차밭·감나무밭·닥나무밭·야생화밭을 일궈 알맞게 활용했다. 서운암 약된장을 보급했고, 28년간 도자기를 구워 도자 삼천불과 16만 도자대장경을 10년에 걸쳐 조성하고 다시 10년에 걸쳐 장경각을 지었다.
직접 배우면서 천연 염색과 새로운 옻칠 기법을 찾아 작품을 창작하고 전시했다. 통도사 주지를 마친 40대 중반 출가(出家)를 넘는 ‘출출가(出出家)’를 감행해 일본으로 가 태도를 낮춰 공부했고, 중국에서 산수화를 배웠다. 지금은 ‘무한대로 종이책 모으기’ 등 프로젝트를 펼친다. 우리 문학인 시조를 오랜 세월 후원하고 있다. 책을 덮을 때쯤 이 모든 일이 그냥 ‘욕심’‘소유’가 아니라 하나같이 한민족 문화, 불교의 전통과 정신을 잇고 살리는 노력이자 대중과 함께하는 정진이고 실천임을 느꼈다.
성파 스님은 두루뭉술하지 않고 구체적이고 간명하게 말하는데, 깊이 울린다. 단순함과 구체성의 만남 또한 경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