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68> 어머니-막심 고리키(1868~1936)

러시아의 ‘이소선 여사(전태일 열사 어머니)’… 아들 뜻 이어 혁명 선봉에 서다

  • 서부국 서평가·‘고전식탁’ 저자
  •  |   입력 : 2023-06-22 18:46:59
  •  |   본지 1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남편 가정폭력 시달리던 어머니
- 그가 죽자 아들은 혁명을 꿈꾼다

- 제정러시아 시대 비참한 하층민
- 그들의 삶을 바꾸려는 노동운동
- 아들이 고문·유배로 스러지자
- 모성애 원천으로 분연히 일어나
- 자의반 타의반으로 혁명투사 돼

- 첫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
- 이 땅엔 아직도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혹시 그 사람들 고문을 하니? 살을 찢고, 뼈를 꺾고? 파샤, 내 아들,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섭구나.

아들:그들은 영혼을 꺾어요. 그게 더 아파요, 더러운 손으로 영혼을 짓이기면.


제정러시아 군중이 1905년 10월 17일 니콜라이 2세가 러시아 제1 혁명을 무마하려고 칙령(10월 선언)을 발표하자 이를 지지하며 행진하는 중이다. 러시아 첫 시민혁명이다. ‘어머니’는 이 혁명을 시대 배경으로 삼았다. 일리야 레핀 작 ‘1905년 10월 17일’.
어머니와 아들이 고통스레 말을 나눴다. 아들을 애칭 ‘파샤’로 부르는 어머니는 수더분한 러시아인이다. 파샤, 세계 각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다 산화한 열사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읽힌다. 이 땅에서도 낯설잖다. 군사 정권과 수탈 자본주의에 맞섰다가 끌려갔던 아들과 딸들, 그 비보를 뒤늦게 듣곤 가슴이 숯 검댕 된 이소선 여사를 포함한 한국 어머니들이 떠오른다. ‘어머니’엔 제정러시아 말기, 노동자를 위해 싸우는 아들과 점차 그를 닮아가는 40대 어머니 펠라게야 닐로브나 블라소바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한국에선 한때 금서였다.

첫머리 모자간 대화는 1부 10장 중 한 대목. 마을 공장에서 일해온 파샤가 각성해 노동자 혁명에 뛰어든 뒤다. 어머니는 그저 ‘어머니’다. 사랑스러운 외동아들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주길 바라는 어머니. 만국 공통어인 ‘어-머-니’.

청년 파벨 미하일로비치 블라소프는 새롭게 태어났다. 노동자를 핍박하는 사회를 뒤늦게 인식하면서 새 눈을 뜬, 덩치 큰 아이다. 도시에서 온 노동운동가들을 접하며 처세가 달라졌다. 동네 친구들은 여전하다. 저녁이면 술에 취해 주먹다짐이다. 파샤는 밤늦게까지 책을 읽고, 말이 더 줄었다. 그를 지켜보는 어머니는 다가오는 정체 모를 불안에 남몰래 몸을 떤다. 그러잖아도 삶은 이미 지옥인데.

그녀는 남편 미하일 블라소프에게 얻어맞으며 살아왔다. 아버지는 소년 파샤를 “개새끼”라고 부르며 을렀다. 열네 살 아들은 자신을 끌고 가려는 그에게 망치를 들고 맞선다. 아버지는 망치에 맞진 않았지만, 며칠 후 탈장으로 드러눕는다. 그는 치료를 거부하고 악을 쓰다 저세상행. 이제 낡고 작은 집엔 파샤와 어머니뿐이다.

폭압이 떠난 집에 파샤 동지들이 찾아든다. 어머니는 처음엔 귓가를 맴돌기만 하던 그들 대화와 토론을 조금씩 알아듣는다. 세상과 교신이 시작됐다. 스스로 글자를 익히는 걸 부끄러워하며 숨기는 어머니.

■제정러시아 현실 생생

1931년 스탈린(왼쪽)과 대화하는 고리키.
당대 제정러시아 현실이 소설 속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치 갈등으로 조국을 떠난 고리키가 이탈리아 등에 머물며 이 책을 썼다. 공산 혁명(1919년)이 일어나기 전, 소비에트연방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때. 첫 번째 ‘사회주의 리얼리즘(사실주의) 소설’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1934년 제1회 소비에트작가 대회에서 나온 단어다.

노동자에게 특정한 문화예술이 필요하다는 논지가 나왔다. 이 대회를 총괄 지휘한 인물이 고리키. 그는 “문화예술은 소수 특수 계층이 아닌 인민대중이 누려야 하며, 사회주의 사상을 알리는 수단이 돼야 한다”는 강령을 내놓았다. 고리키는 ‘어머니’란 장편소설을 지어 강령을 실천에 옮겼다.

글쓰기에 관심을 둔 독자는 고리키 필법이 눈에 띈다. 서정미와 사회주의 사상이 맞물었다. 사물을 인간처럼 그렸는데 이게 전달력이 세다. 2부 12장이다. 노동운동가가 병원에서 죽어 관에 실려 나오는 걸 군중이 지켜보는 대목. 고리키는 이렇게 썼다. “창백하고 푸른 가을하늘이 둥근 회색 돌로 포장한 위에 노란 나뭇잎이 여기저기 깔린 거리를 밝게 내려다보았고 바람이 나뭇잎을 불어 올렸다가 사람들의 발밑으로 내던졌다.” 즐겁게 살아 보지도 못하고 노동 운동에 자신을 바친 이를 향한 추모사다. 운구를 지켜보는 군중에게서 분출하는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분노가 느껴진다.

‘어머니’는 2부로 짜였다. 1부는 파샤가 노동절인 5월 1일 마을에서 정당 깃발을 들고 노동자 시위를 주도하다가 경찰에 잡혀가는 29장으로 끝난다. 1부 첫 문단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사회주의 소설 서사로 전범이랄까. 도시에서 가까운 제정러시아 시골 마을, 새벽녘이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을 내 공장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갈라놓는다. “…조그만 회색 집들에서 아직 충분한 잠으로 근육을 풀지 못한 음울한 사람들이 겁먹은 바퀴벌레처럼 거리로 나왔다.” 실제로 당시 빈민은 신발이 없어 발싸개를 하거나 맨발로 다녔다. “휴일이면 청년들은 늦은 밤에 옷이 찢어진 채 흙과 얼굴은 얻어맞은 채, 동료들에게 주먹질한 것을 심술궂게 자랑하면서, 혹은 기분이 상하여, 분노에 차거나 화가 나 울면서, 술에 취해 한심한 모습으로, 불행하고 불쾌한 상태로 집에 들어왔다.”

파샤와 동료들은 노동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활동을 은밀하면서도 거침없이 벌여나간다. 동지인 우크라이나인 안드레이 나홋카를 식구로 받아들인다. 러시아 청년 파샤와 연장자인 우크라이나인은 “두 개의 몸에 하나의 영혼”이 된다. 이 대목에서 이런 생각이 튀어 오른다. ‘이때만 해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친했군.’ 그랬던 두 나라가 지금 전쟁을 치른다. 이 고전 속 제정러시아 시민은 노동자 세상을 맞이하려고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뜨겁고 순수한 열정이 값져 보인다. 어머니는 그들을 모성애와 그리스도 신앙으로 감싼다.

■투사가 된 어머니와 희망

1969년 발간된 고리키 기념우표. 배경 그림은 ‘어머니’ 속 마지막 장면이다.
등장인물들 가슴은 조국이 밝은 미래를 맞이하리라는 확신으로 이글댄다. 그중 한 사람이 지식인 니콜라이다. 그는 젊은 노동자들이 강인하고 민감해 모든 걸 이해하려는 열망으로 가득하다며 이렇게 외친다. “그들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러시아는 세상에서 가장 밝은 민주주의 국가가 될 거예요!” 현재 러시아는 너무 다른 길로 나갔지만 말이다.

파샤 어머니는 ‘동지’로 불리며 노동운동가로 존경받는다. 그 힘이 나오는 원천은 모성애다. 고리키는 사회 속 여성 역할을 띄워 올린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혁명투사가 된 어머니는 외친다. “아이들이, 우리 심장의 가장 귀중한 조각이 자기들의 자유와 생명을 내놓고 기꺼이 죽어가는데, 어머니가 돼서 무슨 일인들 못 하겠어요?”

노동 운동하는 사회주의자들은 차별 사회를 노려본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 보이는 세태다. ‘지식이 아니라 돈을 모아야만 살아남는 삶, 모욕당하고 삶의 변두리에 밀려나고 던져져서, 그곳에 오글오글 모여 살아야 하는’ 삶이다. 부와 지위가 대를 잇는 걸 보면서 ‘모든 게 널려 있는데 왜 나는 배고프고 무지하지’라고 반문하는 청년들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열패감은 내던져 버리고 일어선다.

2부는 투사가 된 어머니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비춘다. 1부에서 마을 공장 안으로 전단을 몰래 반입하는 역할을 해낸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한 번도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했으나 지금은 자신이 많은 사람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았고, 그것은 새로운 기쁨으로 다가와 어머니가 고개를 높이 들고 다니게 해 주었다.” 어머니는 법정이 파샤에게 시베리아 유배형을 때리자 불끈 일어선다. 법정에서 아들이 쏟아낸 연설을 옮겨 쓴 전단을 대중에게 뿌린다. 이때 경찰이 어머니 목을 조르며 제지하자 외친다. “불운한 사람들이여.” 누군가 통곡으로 화답하는 장면으로 이 소설은 끝난다.

더 나은 세상으로 전진하는 발걸음을 멈춘 사회는 누가 봐도 끔찍하다. 개인·자본주의가 결합해 인간을 왜소하게 만드는 요즘이다. 이 고전은 ‘순수하고 정직한 인간이 주인이었던 시대’를 떠올려 준다. 그게 아직도 유효할까? 파샤 어머니처럼 싸우는 어머니가 여전히 존재하는 이 땅 현실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 터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1246회 로또 1등 16명…당첨금 각 18억 8,103만 원씩
  2. 2"국민연금 한 번도 못 낸 청년 21만명…10명 중 9명은 '실직'"
  3. 3‘부산살이’ 한 달 된 부캉이…주말 북항 친수공원 인파 몰려
  4. 4통영서 단체 수영하던 50대, 1.8㎞ 표류…해경 구조
  5. 5[속보] 재커라이어, 나흘 만에 경질.. ‘역대 최단 기간’ 백악관 대변인
  6. 6[날씨칼럼] 날씨와 기후 사이, 평년값으로 읽는 10월
  7. 7제자 성추행한 초등 교사에 기부금 전달한 전현직 교사 '불구속 송치'
  8. 8부천 공장 화재 순직 소방관 장례 '경기도청장'으로 엄수
  9. 9[속보] 추미애 “순직 소방관께 깊은 애도, 근무 환경 살피겠다”
  10. 10부산·울산·경남 가끔 구름 많다가 밤부터 흐려져
  1. 1李대통령, 부천 화재 순직 소방관 조문…“영원히 기억할 것”
  2. 2[속보] 추미애 '소방 재정 빨대' 발언 사과…“폄훼 의도 없어”
  3. 3국힘, 秋 ‘재정 빨대’ 발언 사과에 “‘사과 바라시니까’…끝까지 오만”
  4. 4김민석, '재정 빨대' 발언 사과... "추미애에게도 사과 요청했다"
  5. 5[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6. 6[속보] 김민석 "'조희대 탄핵 추진' 논의 공식화"
  7. 7이 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담아내야" 국회에 개헌 논의 촉구 (종합)
  8. 8이헌승 "국제신문 실질적 대주주 조사 미흡" 질타에 부산노동청장 "다음주 면담"
  9. 9北,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2종 시험발사(종합)
  10. 10李대통령 “부마항쟁과 5·18 헌법 수록 개헌, 국회가 나서달라”
  1. 11246회 로또 1등 16명…당첨금 각 18억 8,103만 원씩
  2. 2"국민연금 한 번도 못 낸 청년 21만명…10명 중 9명은 '실직'"
  3. 3"통합 앞둔 발전5사, '8020억 자회사 부채' 승계계획 전무"
  4. 4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3원… 전주보다 1.2원 ↓
  5. 5부산 이전 1차 공공기관 4곳, 수도권에 여전히 495명 잔류
  6. 6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7. 7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8. 8누리호 탄 군집위성, 발사 14시간 만에 첫 지구 촬영 성공
  9. 9부산 9월 취업자 9000명 늘었지만…'경제허리' 40·50대 3만명↓
  10. 10‘신뢰 시그널’ 없는 증시…외인 이달만 18조 투매
  1. 1‘부산살이’ 한 달 된 부캉이…주말 북항 친수공원 인파 몰려
  2. 2통영서 단체 수영하던 50대, 1.8㎞ 표류…해경 구조
  3. 3[날씨칼럼] 날씨와 기후 사이, 평년값으로 읽는 10월
  4. 4제자 성추행한 초등 교사에 기부금 전달한 전현직 교사 '불구속 송치'
  5. 5부천 공장 화재 순직 소방관 장례 '경기도청장'으로 엄수
  6. 6[속보] 추미애 “순직 소방관께 깊은 애도, 근무 환경 살피겠다”
  7. 7부산·울산·경남 가끔 구름 많다가 밤부터 흐려져
  8. 8광주서 승합차·시내버스·오토바이 추돌…2명 경상
  9. 9"뉴스거리 만들려 범행" 인천 흉기난동범 최충락 주거지 압수수색
  10. 10이태원 참사 유족, 4주기 앞두고 진상규명 촉구…"책임자 처벌" 외치기도
  1. 1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2. 2득점은 킹, 리바운드는 롱…KCC 살릴 ‘믿을맨’ 찾았다
  3. 3자금 숨통 틔웠다…LIV골프 살아날까
  4. 4[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5. 5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6. 6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7. 7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8. 8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9. 9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10. 10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스타 만나려면 첫 3일·여유롭게 영화 즐기려면 둘째주 공략
얼굴에 담긴 이야기
코 성형과 마음 성형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일상 언어에서 찾은 삶의 방향 外
쉽게 따라 배우는 걷기명상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윤상건-Creature
박지은- little talk-Venice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경비원 /박필상
자화상 /최은지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팬덤의 힘 ‘극장판 치이카와’ 1위로…암살자(들) 근소한 차 2위
역사 왜곡 논란에도 ‘암살자(들)’ 정상…애니 ‘극장판 치이카와’ 예매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5일 (음 9월 5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4일 (음 9월 4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신라 말 고운 최치원이 비 오는 가을밤에 읊은 시
생육신 남효온이 가을 강변의 풍경을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