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빈드라나트 타고르와 더불어 세계 2대 시성(詩聖). ‘제정론’을 통해 정교 분리론을 확립한 그는 1265년 이탈리아 피렌체(플로렌스)에서 태어났다. 글 쓰며 참전과 외교 활동, 정전을 벌였다. 단테 하면 떠오르는 여성. 9세(1274년)에 처음 만나 평생 연모한 베아트리체(포르티나리 가문)다.
1283년 ‘달콤한 새로운 문체’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인문학자 브루네토 라티니를 사부로 모셨다. 20세에 결혼해 서너 명 아이를 두었다. 24세 때 캄팔디노 전투에 기병으로 나가 싸웠다. 1290년 24세 베아트리체가 죽었다. 그녀를 향한 애모로 더욱 타올라 창작욕을 달궜다.
단테가 정치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30세 무렵이다. 1301년 ‘100인 평의회’ 위원이 돼 로마 교황청에 사절로 갔다. 37세 저자에게 피렌체 법정이 정치 보복을 가해 영구 추방령을 내렸다. 39세 때 ‘향연’ ‘속어론’을 썼다. 50세에 피렌체 정부가 사면을 내놨지만, 저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1321년 사절로 베네치아에 갔다가 돌아오던 중 열병에 걸려 56세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