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마도는 조선통신사가 바다를 건너 처음으로 도착한 일본 땅이자, 조선과 일본 간의 우호 관계에 크게 기여했던 일본의 유학자 아메노모리 호슈가 살았던 지역으로, 일본의 조선통신사 연고 도시 중 가장 먼저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한 고장이기도 하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단절된 국교를 회복하고자 일본 막부의 요청에 의해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공식사절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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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일 일본 대마도 이즈하라축제에서 재현한 조선통신사 행렬 모습. 부산문화재단 제공 |
해마다 8월 첫째 주 토요일과 일요일 대마도에서는 이즈하라항 축제가 열리는데 2002년부터 한국 측에서 이 축제에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을 위한 정사·부사·종사관과 취타대·무용단 등을 보내고 있다. 이즈하라항 축제는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어서 이 기간에는 많은 한국인 관광객이 몰려들어 배편을 구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올해는 이즈하라항 축제 참가를 위해 지난 1일, 212년 만에 ‘조선통신사선’이 대한해협을 건너 부산에서 대마도로 향했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차례 성신교린(誠信交隣)의 정신으로 조선과 일본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조선통신사의 의미를 알리는 ‘조선통신사선 13차 사행’이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2018년 재현한 조선통신사선은 길이 35m, 너비 9.3m, 높이 5m, 돛대 높이 22m이며 목재로 강원도 금강송 900그루가 쓰였다. 조선통신사선은 지난 5·6일 이틀간 대마도에서 펼쳐진 이즈하라항 축제에 참여하여 대마도 시민을 대상으로 선상 공연을 펼치고 선상 박물관을 운영했다.
지난 1일 선발대로 출발한 ‘조선통신사선팀’과 달리 나는 지난 5일 ‘본대’의 일원이자 부산문화재단의 담당자로서 대마도 출장길에 나서 축제 행렬에 참여하는 예술인, 유관기관 관계자 등 100여명의 대규모 인원을 인솔했다.
히타카츠항에서 약 2시간여를 차를 타고 이즈하라로 향하면서, 그 옛날 조선통신사가 사스나항을 통해 대마도로 들어오던 모습이 얼마나 장관이었을지 상상해 보기도 했다. 이 조용하고, 작은 섬에 몇백 명에 달하는 행렬이 당시 현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화려한 이벤트였을까. 실제로 조선통신사 기록물인 신유한의 ‘해유록’에서는 조선통신사를 보기 위한 모습을 ‘구경꾼들이 마치 고기비늘처럼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고 표현했다.
조선통신사 행렬을 향한 대마도 시민의 큰 관심과 호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코로나19 이후 이즈하라항 축제에서 한국 측이 참여한 행렬 재현은 4년 만인데, 염천 속에서도 행렬이 지나가는 거리를 대마도 시민이 가득 채웠다. 가마에 탄 정사·부사·종사관을 향해 대마도 시민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손을 번쩍 들어 흔들고, 활짝 웃으며 반겨주었다.
한 시민은 행렬이 끝나고 난 뒤 감격한 모습으로 다가와 “나는 한국· 일본 혼혈인데 내가 사는 대마도에서 역사적인 조선통신사 행렬을 볼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 이런 말 한마디와 순간들은 성신교린 정신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가 된다.
대마도에서 성황을 이룬 행렬을 보고 있으니 지난 5월 부산에서 개최했던 조선통신사 축제가 떠올랐다. 코로나19 이후 4년 만에 정상 규모로 준비했으나 비가 내려 프로그램 중 일부는 축소됐고 조선통신사 행렬은 취소됐다. 행렬 당일까지만 해도 진행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가 취소 결정에 얼마나 하늘이 원망스러웠던지. 서운한 마음이지만 국내 조선통신사 행렬은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에서 행렬이 취소돼 아쉬웠던 마음과 대마도에서 성황을 이뤄 뿌듯했던 마음을 모두 자양분 삼아 조선통신사 행사가 있는 곳이라면 언제나 어디서든지 성신교린의 정신을 펼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