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데믹시대 로케이션 재활성화
- 촬영지 홍보·경제성 맛본 도시들
- 제작비 돌려주면서까지 유치전
- 장기간 여러 장소서 촬영 선호
- 스태프 대거 머물며 지출 ‘윈윈’
- 숨은 관광지 발굴로도 이어져
- 부산 인센티브예산 상반기 소진
- OTT시대 관객 보는 눈 높아져
- 작품 퀄리티 따져 유치 집중을
부산영상위원회가 제공한 로케이션 지원을 받아 부산에서 영화를 촬영한 제작진은 부산에서 숙박·식비·인건비·미술비·운송비 등 여러 부문의 비용을 지출한다. 이렇게 영화제작사가 직접 지출한 비용은 ▷2020년 52억2919만3733원(85편) ▷2021년 65억368만1991원(142편) ▷2022년 62억291만6204원(141편)이다.
 |
| 부산의 도심(왼쪽 사진)과 바닷가에서 영화 촬영이 이뤄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 영화영상산업계에 큰 충격을 주면서 ‘영화영상도시 부산’도 새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제신문 DB
|
이에 비해 부산영상위원회가 운영하는 ‘인센티브’ 예산은 1년에 2억5000만 원이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일정한 비용을 들여 좋은 영화촬영을 유치하면 도시는 밑질 게 없다. 도시 이미지 등을 높이는 부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인센티브 제도(Production Incentive)는, 해당 도시에서 영화·영상을 촬영하면서 쓴 제작비의 일부를 해당 도시가 현금 형태로 제작자에게 환급해 주거나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적지 않은 도시가 적게는 15%, 많게는 절반가량 인센티브를 지원한다. 제작자로서는 비슷한 여건인 경우 인센티브 제도가 더 활성화된 곳을 택하는 건 당연하다.
■제작비 돌려주는 이유최소 촬영 일수와 제작비, 현지 스태프 고용 등 몇 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제작비 지출분을 일정하게 돌려받을 수 있어, 제작자에게 촬영 인센티브는 비용 절감을 돕는 강력한 요소다. 이와 같은 옵션을 다양하게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은 그 도시의 경쟁력이 된다.
지난해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 기획·제작으로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한 ㈜퍼펙트스톰 필름 강명찬 대표는 “해외의 경우 2000년대 초반부터 인센티브 제도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촬영을 유치했다. 영화와 콘텐츠 규모가 크고 장르가 다양화할수록 자국에서 촬영하도록 홍보를 더 많이 하더라”며 “제작비를 더 아낄 수 있다는 건 중요한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도시로서도 손해 볼 일은 없다. 해외의 규모 있는 영화 제작진 수십 명이 부산에 와서 한 달가량 머물며 촬영한다고 할 때, 장비 사용, 차량 렌트, 숙박비 식비 등을 모두 부산에서 지출하기 때문이다. 촬영 일수가 길수록 경제효과도 커진다. ‘반지의 제왕’을 찍은 뉴질랜드, ‘왕좌의 게임’을 찍은 스페인과 북아일랜드의 성공사례는 ‘고전’에 속한다. 2017년 봄 마블 스튜디오의 ‘블랙팬서’ 촬영이 보름간 부산에서 진행됐을 당시 현지 스태프를 포함한 3000여 명이 40억 원가량의 제작비를 부산에서 직접 지출했다.
영화나 시리즈물 배경으로 지역이 등장하면, 관광 효과도 따라온다. 해외 제작사들의 현지 촬영이 ‘숨은 관광지 발굴’로도 이어진다. 강명찬 대표의 경우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제작할 때 그리스 자킨토스 섬을 배경으로 촬영하기 위해 현지 시장을 만났다. 당시만 해도 그리스 관광지 대명사는 산토리니섬이었다. 현지 정부를 설득해 드라마가 촬영됐고, 이후 드라마 성공에 힘입어 자킨토스섬은 아시아 관광객이 대거 찾는 명소가 됐다.
강명찬 대표는 “우주가 배경인 영화나 알래스카가 배경인 영화는 대부분 아이슬란드에서 찍는다. 파리 등 유럽이 주 무대인 액션장르 영화 역시 실제 촬영지는 체코나 헝가리가 많다”며 “로케이션 촬영지로 인기 많은 나라를 살펴보면 자연풍광을 비롯한 각 나라의 다양한 강점을 바탕으로 인센티브나 홍보에 적극적인 나라들이다”고 설명했다.
미국 경영전략컨설팅회사 커니(KEARNEY)가 2022년 낸 ‘제작 인센티브(Production Incentives)’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인센티브 프로그램은 줄곧 확장돼 왔다. 이 보고서는 미국 각 주와 영국 호주 등의 인센티브 프로그램뿐 아니라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모로코 남아공 등 중동 및 아프리카 신흥 시장에서도 인센티브 프로그램이 도입되고 있다고 썼다.
■급변한 환경현재 국내 영화·콘텐츠 산업은 좀처럼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팬데믹 기간 사회적 거리두기로 영화관을 찾지 못한 관객은 OTT 플랫폼 속 콘텐츠를 즐겼다. 1만5000원 선으로 오른 영화티켓값은 더욱 부담스러워 ‘개싸라기 흥행’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 ‘개싸라기’는 개봉 첫째 주보다 2주 차에 관객이 더 많아지는 것을 뜻하는 영화계 은어다. 관객이 영화관에 가는 횟수 자체를 줄이다 보니 리뷰가 좋은, ‘검증된’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는 일이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팬데믹 기간 개봉 시기를 놓친 데다 검증된 작품을 원하는 관객의 높아진 눈높이를 따라가느라, 이미 제작을 끝내 놓고도 개봉 시기를 잡지 못한 ‘창고 영화’도 여전히 쌓여 있다.
전 세계 영화와 시리즈물을 OTT 플랫폼을 통해 안방에서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으니, 국내 시리즈물 촬영은 코로나19 이전보다 배 가까이 급증했다. 부산만 봐도 이런 현상은 두드러진다. 15일 부산영상위원회가 공개한 부산지역 로케이션 지원 통계(촬영 편수·일수)에 따르면, OTT 시리즈를 포함한 영상물 촬영 편수는 2020년 63편에서 ▷2021년 120편 ▷2022년 115편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촬영 일수는 ▷2020년 227일 ▷2021년 434일 ▷2022년 515일로 늘었다.
OTT 콘텐츠만 놓고 보면 ▷2020년 2편 ▷2021년 11편 ▷2022년 17편 ▷2023년 상반기 13편 등 해마다 늘어난 수치가 확인된다. 부산영상위원회는 “예전에는 5~7주간 3~5개 장소에서 촬영하는 형태가 많았다면, 촬영 편수는 줄어도 시리즈 콘텐츠의 경우 4개월간 80여 곳의 장소를 사용하는 등 장기간 촬영을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결국, 강점을 찾아야영화 속 배경과 실제 촬영지가 일치할 필요가 없으니, 도시의 매력이 다양할수록 촬영지로 인기가 높다. 부산은 산과 바다, 피란마을과 마천루가 공존하는 이색적인 도시로, 촬영을 유도할 요인이 많다. 다만 한정된 예산 등은 한계가 되고 있다. 부산영상위원회의 경우 올해 인센티브 총사업비 2억5000만 원(국내 작품 2억3000만 원, 해외 작품 2000만 원) 중 국내 작품 제작지원비가 상반기에 소진됐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최정화 대표는 “인센티브 제도는 작품 퀄리티를 유지하면서도 영화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게 해준다. 해당 지역에 머물며 제작진이 그 도시에서 필요한 소비를 하는 만큼 서로 ‘윈윈’인 제도”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현장의 인기와 호응에 비해, 몇 년째 규모가 비슷하거나 되레 축소·폐지한 지자체가 늘어나는 추세이며 시행방식에서도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인센티브 제도는 도시의 관광 수익 등을 증가시키는 마중물 역할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어떤 제작사가 부산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그 작품은 가까운 다른 도시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인센티브 등 특정 방식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다는 지적 또한 설득력이 있다. 관련 법과 세제상 문제로 당장 규모를 키우는 데는 한계도 있다. 그 대신 부산이 가진 다른 강력한 장점을 살리는 정책개발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많다. 소방·행정·경찰 등 관련 기관의 협력을 얻는 일 등은 외국에서는 비용이 너무 비싸거나 성사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세계 많은 도시가 다양한 무기를 들고 경쟁에 뛰어든 만큼 부산도 부산만의 강점을 살린 정책 전환이 이뤄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