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인 가운데 국내외에서 연이어 터지는 각종 뉴스를 접하면 그나마 남아있던 인류애가 급격히 감소되는 기분이다. 무덥고 무섭고 무례한 세상이다. 모르는 사람을 무작정 흉기로 해하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가. 그런 이유로 외출을 자제하고 모니터로 세상을 엿보던 중, 지난 4일 미국 시카고 음악축제 ‘롤라팔루자’의 뉴진스 공연실황을 목격했다. 세상에 미국 첫 진출 무대가 롤라팔루자라니, 롤라팔루자 무대에 선 한국의 걸그룹은 뉴진스가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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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진스의 롤라팔루자 공연 실황. |
국내에선 뉴진스를 통해 롤라팔루자를 알게 된 이가 많겠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X세대 아재 입장에선 감격스럽다. 1991년 시카고에서 시작한 롤라팔루자는 얼터너티브 록 밴드 ‘제인스 어딕션’의 보컬인 페리 패럴이 인종·장르 구분 없이 다양한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성대한 고별 공연을 제안하며 첫발을 뗀 세계적인 음악축제다.
옛날 옛적, 대학가 앞 음악감상실에서 레이지 어갠스트 더 머신, 비스티 보이즈, 펄잼 등등 당대 최고 인기 밴드가 참여한 롤라팔루자 공연 실황 영상을, 불법 복제했음이 분명한 흐린 화질에도 불구하고 홀린 듯 감상했던 순간이 아직 생생하다.
뙤약볕 아래 7만여 명 관객 앞에서 47분 동안 12곡을 안무와 함께 라이브로 훌륭하게 소화하는 소녀 5명의 체력과 실력에 우선 감탄했다. 마치 뉴진스의 ‘뉴진스’ 뮤직비디오에서 콜라보했던 미국 애니메이션 캐릭터 파워퍼프걸 같은 슈퍼히어로처럼 느껴진다. 관중석을 채운 다양한 인종과 연령층의 관객이 공연 내내 웅장하게 떼창하는 모습에 어쩔 수 없이 ‘라타타’ 하고 심장이 울린다.
만약 밤거리에서 마주쳤으면 서로 경계했을 듯한 인상의 흑인· 라티노 아저씨와 어쩌면 트럼프를 강력 지지하고 샷건을 종류별로 소장했을지도 모를 인상의 거구의 백인 아저씨들이 뉴진스의 율동을 따라 추며 ‘내가 힘들 때, 울 것 같을 때 기운도 이제 나지 않을 때 It’s you! 날 걱정하네’ 이런 가사를 목청껏 함께 외치는 모습을 보니 비록 예전의 마이클 잭슨이나 BTS처럼 인류를 향한 거창한 메시지는 없다 하더라도, 어쩌면 이것이 바로 세계평화의 현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바닥난 인류애가 조금은 충전된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