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기영 소설 무대화 위해 삼고초려
- 지역 이야기로 창작 작품 만들려면
- 중심에 반드시 지역예술인 있어야”
지난 19일 오후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무대. 옴팡밭에서 자식을 잃은 순이삼촌의 ‘광란의 아리아’가 울려퍼지자 객석에서 눈물이 터져나왔다. 제주 4·3을 소재로 한 창작 오페라 ‘순이삼촌’ 공연 장면이다. 이날 공연은 제주와 부산 문화예술인이 한 무대에 올라 지역 예술의 확장성을 보여줬다. 주연 순이삼촌 역을 맡은 강혜명 예술총감독을 공연 전날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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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 ‘순이삼촌’의 강혜명 예술총감독이 소설 ‘순이삼촌’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전민철 기자 |
2020년 초연한 오페라 ‘순이삼촌’은 현기영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제주4·3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제주 조천읍 북촌리 주민의 비극을 다룬다. 강 예술총감독은 원작 소설의 활자를 오페라 무대로 옮기기 위해 ‘삼고초려’했다. 그는 “예산 등 무대 규모가 확정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들고 무작정 현기영 작가를 찾아가 오페라로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며 “이후 다른 공연에도 초대해 무대를 보여드리며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강 예술감독이 10·19 여순사건을 조명한 창작 오페라 ‘1948 침묵’을 연출했다는 점도 원작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고 한다.
그가 제주 4·3을 오페라로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는 “기록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는 “제주 4·3과 관련된 많은 문화예술 작품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건 가해자 처벌 같은 것이 아니다. 단지 제주의 4월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많은 사람이 알고 기억해달라는 것”이라며 “관광지로 인기 있는 지금의 아름다운 제주에 사실 굉장한 희생과 비극이 있었고, 이후 지역사회에서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나갔는지 다양한 방법으로 알리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부산 공연은 제주와 부산 예술인이 함께해 의미가 깊다. 부산문화회관의 공연 제안 이후 부산오페라합창단, 부산소년소녀합창단, 부산청소년교향악단 등의 협업이 성사됐다. 공연이 다른 지역 무대에 선 건 서울과 경기 수원에 이어 부산이 세 번째지만, 그 지역 문화예술인과 한 무대에 오른 건 처음이다. 강 예술총감독은 “부산 예술인들이 제주 4·3에 관심을 갖고 이해하는 모습에 울컥했다. 지역 예술인 간 협업으로 ‘순이삼촌’이란 작품이 또 한 번 확장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 이야기로 창작 작품을 만들려면 그 중심에 반드시 지역 예술인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콘텐츠가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며 “100% 지역 예술인으로 채울 수 없는 현실도 있지만, 최대한 지역 예술인이 상생하고 무대 경험을 축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래와 테크닉만으로 따라갈 수 없는 지역민의 정서도 작품 전달에 큰 영향을 주는데, 이는 쉽게 배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강 예술총감독은 ‘1호 명예 북촌리민’이 됐다. 그는 “예술가로서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 근원적 질문의 뿌리는 항상 제주에 있다고 생각한다. ‘순이삼촌’이란 작품을 만나면서 4·3을 겪지 않은 세대가 4·3을 기억하도록 예술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 준 것 같아 무척 기뻤다”고 했다. 강 예술총감독은 오는 12월 임피제 신부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초연한다. 제주에서 처음으로 면양과 양돈사업을 시행해 제주 경제 발전을 이룩한 아일랜드 출신의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 이야기다. 제주 출신인 강 예술총감독은 2006년 데뷔 이후 프랑스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주역으로 활동했다. 2016년 동양인 최초로 이탈리아 타오르미나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에 주연으로 발탁돼 화제를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