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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1947 보스톤’ 강제규 감독

“1947년 마라톤 서윤복의 인간승리, 그 희망을 잇고 싶었죠”

  •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  |   입력 : 2023-09-19 18:54:26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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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이후 태극마크 가슴에 달고
- 美 한복판 달렸던 서윤복·남성룡
- 손기정 감독의 감동적인 이야기
- 역사적 사실 그대로 담으려 노력

- 스포츠 영화 조언 구하기 위해
- ‘국가대표’ 김용화 감독도 만나
- 하정우·임시완 캐스팅에 만족
- 국산영화 많이 응원해 주시길

영화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등을 연출하며 한국 영화 블록버스터 시대를 연 강제규 감독이 올 추석, 민족의 자긍심을 살릴 영화 ‘1947 보스톤’(개봉 27일)으로 찾아온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독립 정부 없이 미군정 아래 있던 1947년을 배경으로 불가능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렸던 마라토너들의 이야기가 스크린에 펼쳐진다.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강 감독은 “이 영화를 본, 2023년을 살아가는 관객들도 힘과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1947 보스톤’은 광복 후 혼란 속에서 처음으로 1947년 태극마크를 달고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출전한 손기정 감독과 서윤복 남승룡 선수의 도전을 그린 실화 바탕의 감동 스포츠 드라마다. 하정우 임시완 배성우가 각각 손기정 서윤복 남승룡 역을 맡아 열연했으며, 1947년 미군정 당시의 국내 모습, 마라톤이 열린 보스턴 모습을 담기 위해 210억여 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원래 2021년 설 연휴에 개봉하려 했지만 코로나19와 배성우의 음주운전 사건이 겹치면서 이제야 개봉하게 됐다.

강 감독은 “촬영은 2020년 1월에 마쳤는데 코로나19와 다른 일 때문에 개봉이 늦어졌다”며 “컴퓨터그래픽이나 사운드 등을 더 꼼꼼히 만질 수 있는 시간을 벌어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실화와 스포츠 영화

역사의 실존 인물인 손기정 서윤복 남승룡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1947 보스톤’을 연출한 강제규 감독. 그는 “역사적 사실 앞에서 더 겸손해지고, 겸허하게 최대한 사실을 그리려고 했다”고 밝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강 감독은 한국 영화사의 두 번째 천만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6.25 전쟁을, ‘마이웨이’에서는 일제강점기를 다뤘다. 두 영화 모두 잘 알려지지 않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고, 드라마틱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큰 감동을 줬다. ‘1947 보스톤’도 실화고, 우리에겐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강 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나 ‘마이웨이’처럼 역사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분들이 우리에게 분명히 거울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며 “그래서 ‘1947 보스톤’은 되도록 그분들의 원형에 근접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생각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2018년 처음 시나리오를 받은 강 감독은 1년 넘게 이정화 작가와 각색하며 역사적 사실과 세 분의 면모를 제대로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역사적 사실 앞에서 더 겸손해지고, 겸허하게 최대한의 사실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다시 한번 바른 시선으로, 바른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마음가짐을 전했다.

‘1947 보스톤’은 역사의 바탕 위에서 마라톤이라는 스포츠를 다룬 영화다. 특히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서윤복 선수가 우승하는 장면은 스포츠 영화만의 뭉클한 감동을 준다. 처음으로 스포츠 영화를 연출한 강 감독은 “연극영화과를 다니던 대학 시절 휴 허드슨 감독의 ‘불의 전차’를 봤다. 대부분 스포츠 영화는 매일 꼴찌 하다가 1등을 한다거나 인생 역전의 반전 드라마가 대부분인데 ‘불의 전차’는 거기에서 탈피해 있더라. 한계를 극복하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미학적으로 맨몸으로 달리는 마라톤 주자들의 동작 하나하나에서 뿜어 나오는 디테일이 굉장히 힘이 있고 매력적이었다”며 오래전부터 품은 스포츠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마라톤, 그리고 호주 촬영

‘1947 보스톤’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1947 보스톤’을 통해 동시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었던 강 감독은 영화 ‘국가대표’를 연출한 김용화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강 감독은 “‘국가대표’는 스키점프를 다루는데, 이 종목은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도대체 스키점프하는 것에서 긴장감과 극적 재미를 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하더라”며 김 감독의 당시 고민이 자신과 맞닿아 있었다고 전했다.

해답은 역시 탄탄한 시나리오와 꼼꼼한 콘티에 있었다. 마지막 레이스를 벌이는 각 지점을 촘촘하게 설계해 극적 재미와 함께 독립 정부 없는 선수의 우승을 통해 민족적 자긍심을 갖게 했다. 물론 이 장면에서도 원칙은 실화가 바탕이 된다는 것이었다. 강 감독은 “영화적 상상을 하더라도 과도한 설정은 배치하지 말자고 했다. 예를 들어 마라톤 경기 중 반려견이 튀어나와 서윤복 선수가 넘어져서 페이스가 크게 흔들리고 다리에서 피가 흘렀는데, 피까지 보이면 오히려 과할 것 같아 일부러 피를 안 바르고 촬영했다”고 말했다. 또 실제로는 서윤복 선수의 마라톤화 끈이 풀려 레이스에 큰 지장을 받았는데, 이 또한 관객이 작위적인 설정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 영화에서는 뺐다.

강 감독은 직접 보스턴마라톤대회 코스를 두세 차례 돌아보며 주요 지점을 점검했다. 하지만 70여 년 전의 보스턴을 재현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너무 변해버린 집들과 수많은 자동차, 의상은 컴퓨터그래픽으로 만져야 했고, 촬영 시 주요 도로를 통제해야 한다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게다가 촬영 일정이 1월이라 겨울 날씨 또한 문젯거리였다.

“최종으로 호주 멜버른 근교를 찾아냈다. 그런데 입국했을 때 멜버른에 큰 산불이 나고 공기가 뿌옇게 변했다”며 아찔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다행히 촬영 일부터 하늘이 맑아지고 촬영 마칠 때까지 비가 한 번 온 것을 빼면 날씨가 좋았다. 정말 천운이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라토너 임시완

시나리오, 로케이션이 좋아도 결국 모든 것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정말 마라토너가 돼줄 배우가 필수였다. 특히 손기정 서윤복 남승룡은 사진으로도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인물이기에 캐스팅은 더욱 중요했다. 강 감독은 “캐스팅은 외적인 일치감이 첫 번째 원칙이었다. 실존 인물과 판이하게 다를 경우 관객들이 동화되기가 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하정우·임시완 배우의 일치율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했고, 캐스팅 1순위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엔딩크레디트에 등장하는 당시 사진을 보면 두 배우의 싱크로율이 꽤 높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외모가 닮았다고 해도 임시완에게는 직접 뛰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었다. 강 감독은 “서윤복 선수는 단신인 것을 빼면 한국의 마라토너 중에 가장 마라톤에 적합한 체격과 근육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임시완 배우에게 일단 같이 만들어보자고 했다”며 그때부터 시작된 마라토너가 되기 위한 혹독한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임시완은 마라토너에 맞는 체형과 근육 구조를 만들기 위해 촬영 3개월 전부터 준비를 했는데, 5개월간의 촬영기간을 포함하면 무려 8개월간 마라토너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실제 선수들의 훈련량 60~70%를 소화하고, 식단 관리를 하며 체지방을 6%까지 낮추는 강도 높은 준비 과정을 거쳤다. “국가대표 출신의 권은주 코치가 지도해 줬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마라토너로 변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마라토너의 자세와 동작이 나올 때는 빨리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며 열정을 불태운 임시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947 보스톤’은 추석 연휴 관객을 찾아간다. 아쉬운 것은 최근 극장가에 관객이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한국 영화산업의 한몫을 담당했던 강 감독은 “한국 영화 성장의 가장 큰 동력은 관객분들의 애정과 성원이었다. 한국 영화가 어려운 시기인데 이번 추석 때 가족과 함께 조금 소원해진 발걸음을 극장으로 옮겨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바람을 전하며 “그만큼 영화인들도 좋은 영화로 보답할 것이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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